정응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65
한자 鄭應斗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면 궁촌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7년 11월 6일연표보기 - 정응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정응두, 민족의식 고취 활동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정응두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보령군 대천면 궁촌리
학교|수학지 대천공립보통학교 - 충청남도 보령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국내 항일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정응두(鄭應斗)[1917~?]는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면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한 인물이다.

[생애]

정응두는 7세부터 10세까지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교은리에 있는 김선원이 경영하는 서당에서 한문을 습득하였다. 이후 보령군 대천공립보통학교에서 6년의 과정을 수료한 후 서울 및 평양에서 사진 기술을 견습하였으며, 1937년 12월 18일 보령군 대천면 소재 조선일보 대천지국 기자로 고용되었다.

[항일민족의식]

정응두는 김선원의 집에서 면학하는 중에 김선원으로부터 항상 “한국의 문화가 번성할 때 우리들 조선인은 일본인을 오랑캐라고 멸시하였는데 오늘날은 그 오랑캐 일본에 병합되어 그들의 지배 아래에 놓이게 되었음이 매우 유감스럽다.”라는 말을 들었고, 어린 나이에도 김선원의 말이 지당한 말이라고 생각되어 오랫동안 총독부 정치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27년 12월 중순경에 대천면사무소로부터 구장을 통하여 종래의 음력설을 쇠는 것을 폐지하고 1938년부터는 양력설을 쇠게 한다는 내용을 듣고 이러한 변화는 조선의 오랜 관습인 음력 과세(過歲)의 좋은 풍속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더욱 총독부 정치에 강한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활동 사항]

정응두는 1938년 1월 1일 보령공립보통학교 졸업생들이 같은 학교 훈도(訓導) 김봉득(金奉得)의 근속 10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개최한 영년근속(永年勤續) 사은식에 참석하여 축사 도중 청중들에게 양력 과세(過歲)[설을 쇰]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일본을 오랑캐로 빗대어 말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의 의식에 따른 음력 과세를 주장함으로써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정응두는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옛날에는 중국을 대국이라고 부르며 그동안 중국의 문명을 받아들인 이후 그 문명의 하나인 음력 과세를 해 오고 있었는데, 오늘이 소위 설날이라 말하지만 그 실상은 옛날에 오랑캐라고 멸시하였던 일본과 악수하여 일본에 병합되어 오랑캐 일본의 정월을 이용하기에 이른 것이니 진실로 매우 유감이다.”라고 말하였다. 결국 정응두는 같은 해 2월 9일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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