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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의 전래와 천안 명물 호두과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016
한자 胡桃-傳來-天安名物胡桃菓子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호두나무 시배지 광덕사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40번지 지도보기
호두과자 점포 원조 학화 호도 과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구성동 56-1 지도보기

[개설]

호두나무는 고려 충렬왕영밀공(英密公) 유청신(柳淸臣)이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호두의 묘목과 종자를 가지고 돌아와 고향인 천안시 광덕에 심으면서 전파되었다고 알려진 것이 1935년부터이지만 아직 정확한 근거는 찾지 못하고 있다. 호두과자는 1934년 대흥동 천안역 앞에서 제과점을 경영하던 조귀금(趙貴金)·심복순(沈福順) 부부가 호두를 첨가한 실제 크기의 호두 모양 과자를 개발하면서 천안의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

[호두나무에 얽힌 이야기]

우리나라에 호두나무를 처음 심은 시배지(始培地)라고 알려진 천안 광덕사(廣德寺)와 살아 있는 호두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된 호두나무인 광덕사 호두나무는 현재 천안의 대표적인 자랑거리이다. 광덕사에는 호두나무 전래비도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두나무도 있다. 이 나무는 1998년 12월 23일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되었는데, 국가 지정 문화재 정식 명칭은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이다. 문화재청에서는 호두나무의 원산지를 중국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대체로 학계에서는 실크로드를 통하여 페르시아[현재의 이란을 중심으로 한 서남아시아]에서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본다.

중국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인 기원전 126년 장건(張騫)이 서역 순례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석류 등과 함께 호두를 가지고 왔다. 처음에는 그 과실의 이름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이름을 지어야 했는데, 외지에서 가져왔고 과실 모양이 복숭아와 같다 하여 오랑캐 호(胡) 자와 복숭아 도(桃) 자를 따서 호도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 들여올 때도 그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高麗史)』에 실린 「한림별곡(翰林別曲)」을 보면 「당당당 당추자(唐唐唐 唐楸子)」라는 내용이 있다. 조선 전기인 1415년(태종 15) 기록에도 당추자라는 말이 나온다.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추자[가래나무 열매]와 비슷한 과실이라며 호두를 당추자라고 한 것이다.

1935년부터 알려진 것에 따르면, 고려 후기인 1290년(충렬왕 16)에 유청신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두나무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의 나무는 400여 년 전 나무로, 그때 심은 것인지는 정확한 근거 자료를 찾지 못하여 알 수 없다. 다만 문화재청의 설명을 따르면, 광덕 마을에서는 이것이 우리나라 호두나무 중에 가장 오래된 나무라 하여 천연기념물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이곳을 호두나무 시배지라 부르고 있다.

옛 기록에 호두나무는 호도, 우리나라 재래종인 가래나무는 추자로 기록되어 있으나 엄밀히 구분하여 사용한 것 같지는 않다. 굳이 지역으로 보자면 중부 이남에는 호두나무가, 중부 이북의 추운 지방에는 가래나무가 잘 자란다. 『고려사』에는 1101년(숙종 6)에 “지금의 평안도 평로진(平虜鎭) 관내의 추자밭을 백성들이 경작하도록 나누어 주었다.”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추자밭은 가래나무밭이었다. 또한 『세종실록(世宗實錄)』을 보면 “천안의 토산물은 오곡과 조, 팥, 참깨, 뽕나무, 추자이다.”라고 했는데, 이때의 추자는 호두나무로 봐야 할 것이다.

[최적의 호두 재배지 광덕]

10월에 익는 열매인 호두는 껍데기를 깨면 네 개의 방에 속살이 차곡차곡 들어가 있는데 성분은 지방 50~60%, 단백질 14%, 탄수화물 8~15%, 그 밖에 10% 내외의 무기질·당분·망간·마그네슘·칼슘·철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의학에서는 감기나 불면증, 자양·강장, 변비, 기억력 증진에 복용하며,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호두는 신경쇠약증 효능이 있으며 고질적인 부스럼에는 호두 일곱 개를 태워 가루로 만들어 먹으면 좋다.”라고 전하고 있다.

호두나무가 처음 전래되었다는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일대에는 유청신의 후손과 지역민의 노력으로 현재 26만여 그루의 호두나무가 재배되고 있다. 호두나무의 특성상 이곳 광덕의 토양과 기후가 최적의 재배지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호두를 재배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중국·터키·이란 등이다. 우리나라는 경기도를 기준으로 그 남쪽 지역 중 표고 400m 아래에서 잘 자란다. 천안시 광덕면의 호두는 껍데기가 얇고 알이 꽉 차서 우리나라 호두 중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으며 천안의 대표 특산물로 손꼽히고 있다.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광덕사 대웅전 정면에 있는 보화루(普化樓) 입구에 서 있다. 20여m의 높이에 둘레가 약 3m 정도 되는 고목으로, 오랜 세월 지역민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살아온 나무이다. 특히 이 호두나무는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커서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 간식 호두과자]

천안의 명물인 호두로 만든 호두과자는 현재 여러 곳에서 생산되고 있지만 향토 지적 재산(鄕土知的財産)으로서 천안의 자긍심이며 천안의 자랑거리로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호두에는 많은 양의 지방과 질 좋은 단백질, 그리고 비타민 B1, 인, 칼슘이 들어 있다. 천안 주변에서 생산되는 흰 팥은 향미가 매우 독특한데, 이것의 껍질을 여러 번 벗기고 곱게 앙금을 내어 사용한다.

호두과자는 고소하고 은은한 호두의 향과 맛이 두드러지는 식품이다. 과거에는 철도 이용객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애용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국민 간식으로 인정받아 왔다. 최근에는 고속 도로와 국도 등 천안과 연결되는 곳곳의 통로 주변에서 천안의 대표하는 특산물로서 천안의 맛을 알리고 있다.

천안 호두과자는 할머니 호두과자로 불리기도 하는 원조 학화 호도 과자의 본포에서 출발한다. 1934년 당시 주위 사람들한테서 제과 기술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던 조귀금과 그의 처 심복순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두 사람은 예로부터 차와 과자를 즐기던 조상의 풍속을 생각하고 이를 우리 생활 속에 되살려 보고자 하는 뜻에서, 여러 종류의 재료 중 특히 천안의 유서 깊은 특산물인 호두가 영양분이 풍부하고 맛이 좋으며 열매의 형상도 독특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과자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것이 오늘날 호두과자의 탄생 유래가 되었다. 이처럼 호두과자는 단순히 호두와 같은 견과류를 이용한 간식으로 탄생된 것이 아니라 깊은 역사와 기능인의 장인 정신이 만들어 낸 특별한 과자이다.

호두과자를 완성하는 데에는 하루 반나절 정도 걸린다. 호두과자에는 인공적인 감미료나 방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으며, 물을 넣지 않고 설탕과 달걀을 섞어서 만드는 순도 높은 과자여서 굽고 나서 열흘 넘게 지나더라도 쉬거나 상하는 법이 거의 없다. 물론 딱딱하게 굳어지기는 하지만, 오히려 진짜 호두처럼 딱딱해지면 색다른 식감과 맛을 제공한다. 특히 우유에 잠시 불려서 우유와 함께 먹으면 아침 식사를 대신하여도 좋을 정도로 맛과 영양에서 손색이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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