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A03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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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병구 |
문경 주흘산 밑에서 18살 되던 해 섣달 초이렛날(음력 11월 10일) 시집을 오는데 엄청 눈이 많이 왔단다. 새색시가 가마를 타고 새재를 지나 야문(동화원과 지릅재를 연결하는 고개로 성문이 있다)을 거쳐 미륵리로 오는데 가마꾼들이 술에 취해 자꾸 가마를 메다 꽂았단다. 그래서 가마 밑구녁이 빠지기도 하여 배행(陪行: 떠나는 사람을 일정한 곳까지 따라 감)하는 아저씨가 걸어가자고 화를 내기도 했단다. 그렇게 경북 문경 주흘산 밑에서 충북 월악산 밑 미륵리로 시집 온 이한수 할머니.
막상 시집 와보니 먹을 것조차 변변치 못했고 ‘아저씨’는 이듬 해 군대가고, 큰집에도 먹을 것이 없어 2월만 되면 나물 뜯어다 먹고 살고, 그렇게 7~8년 살다가 분가하여 애를 업고 나물, 도라지, 더덕을 캐어 팔아 조금씩 모았다고 한다.
“나물을 뜯어다 때를 이어 먹고 살고 농사짓고 누에치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미륵리가 어느새 관광지가 되어 나물을 뜯어다 판다는 얘기에 세계사 앞 공터에서 함지박에 나물을 놓고 팔았다. 그 때 어느 기관에서 나오는지는 모르지만 “단속 나온다” 는 소리가 들리면 황급히 숨기도 하고 나물을 절집에 감춰 놨다가 단속원이 간 다음 다시 꺼내 팔기도 했었다. “그 짓을 얼마나 했는지 … 거기선 그래도 잘됐는데” 국립공원이 된 이후 거기서 쫓아내서 충주시에서 1997년에 지어 준 토산품 판매장으로 들어 왔다. 처음 2~3년간은 그런대로 장사가 잘되었다. 이후 토산품점은 경기가 ‘팍’ 죽었다. 원칙적으로 국립공원 내에서는 산나물 채취가 엄격하게 규제되지만, 토착 거주인들이 예전부터 뜯어 오던 약간의 나물은 서로 간 양해가 되는 모양이다. 요즘 토산품점에서는 나물, 더덕, 오미자, 잡곡, 약초 같은 것을 판다.
“봄에 꽃피면 좀 있고 가장 잘되는 시기는 학생들 방학 중인 여름이여. 가을 단풍 때 쫌 있고, 요즘? 겨울에는 하루 한 사람도 상대 못 혀. 토산품점 이거 시(市) 건물인데 임대료도 내기 힘들어. 그저 나이가 많아서 딴 일을 못하니까 마지못해 하는 거여. 칡동동주, 도토리묵은 맛있으니께 그런대로 잘 팔리지” 라면서 할머니는 그래도 말에 생기가 있고 웃음이 있었다. 4남매를 키워 각기 제 밥벌이는 한다고 은근히 뿌듯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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