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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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훈이다. 강대선은 1919년 5월 고창군의 신창학교에서 군자금 모집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대한독립애국단 단원 김영식(金永植)에게 군자금을 수합해야 하는 취지를 듣고, 동향의 부호 강대직(姜大直)을 상대로 자금 수합 활동을 펴는 한편, 같은 해 8월에 서울로 올라가 정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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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호는 이온재(而溫齋)이다.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으로, 경상좌수사를 역임한 물기재(勿欺齋) 강응환(姜膺煥)의 6세손이다. 1886년(고종 23)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서 태어났다. 강대직은 1914년 독립의군부 종사관의 칙지(勅旨)를 받고, 이때부터 비밀 결사 독립운동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주로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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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상갑리 353번지[갑평1길 75]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항천(姜恒泉)이고 호는 늘샘이다. 강수원은 1939년 3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1941년 12월에 전수대학(專修大學)을 졸업하였다. 1940년 11월에 동경 유학생인 임병학(林炳學)·강영석(姜永錫) 등과 함께 조선대학동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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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1년 2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281번지[왕림1길 64]에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익문(姜益文)이다. 강영문은 1913년 9월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한 임병찬(林秉瓚)·이인순(李寅淳) 등이 서울에 중앙순무총장(中央巡撫總將)을 두고 전국 각 도·군에 산하 조직을 설치하여 국권 회복 운동을 벌이자 참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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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정여(貞汝), 호는 수남(秀南)이다. 1856년 1월 1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고석진은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906년 최익현이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거를 일으킬 때 참모로서 최제학(崔濟學)·최학령(崔鶴齡)·이용길(李容吉) 등과 함께 각 지방을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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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의경(義卿), 호는 만취(晩翠)이다. 1863년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송암리 379번지[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송암리 379번지[송암1길 9-6]]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시청(高時淸)이다. 고순진은 일찍이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외부주사(外部主事)가 되었다. 19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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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계문(季文), 호는 송천(松川)이다. 1875년 11월 2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시필(高時必)이다. 고예진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형제들인 고용진(高龍鎭), 고석진(高石鎭)이 최익현(崔益鉉)과 거사할 것을 계획하자 가담하였다. 19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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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호는 송재(松齋), 이명(異名)은 고운서(高雲瑞)이다. 1850년 10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고시필(高時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용진은 1878년 아우 고석진(高石鎭), 고예진(高禮鎭)과 함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 들어갔다. 1906년 4월 전라북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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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희제(希齊), 이명(異名)은 자성(子聖)이다. 1875년 12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554번지[가평1길 51-3]에서 태어났다. 고제천은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태인[현 정읍]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숙부인 고석진(高石鎭)을 쫓아 의병으로 참여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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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치범(致範), 호는 죽계(竹溪), 이명(異名)은 고제만(高濟萬)이다. 1860년 8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월산리 165번지에서 태어났다. 고치범은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1906년 4월 16일 최익현(崔益鉉) 의진(義陣)에 합류, 태인 의거 때 최제학(崔濟學), 최학령(崔學領)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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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916년 6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349번지에서 김영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방수는 고창고등보통학교를 다닐 때 잠시 연극을 했다가, 1942년 6월부터 다음 해 8월경까지 연극배우로 활동하였다. 당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민족극(民族劇)을 준비하였으며, 전라도의 고창과 장성 일대에서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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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묵은 188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 12월부터 이대국(李大局)이 이끄는 의병진(義兵陣)에 가담하였다. 같은 해 12월 10일경 50여 명의 군사들과 함께 전라북도 무장군 장자산면 해룡리에 이르러 이장 강춘일(姜春鎰)을 다른 민가에 불러내어 총을 제시하면서, “우리는 의병인 바 군수금을 내라.”고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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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일우(一愚)이다. 188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81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역임한 김준희(金俊禧)이다. 김승옥은 18세 되던 1907년에 고창 지역에 있는 한문 사숙(私塾)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고창면사무소 면서기로 근무하다 고종 황제의 국상을 맞아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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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수는 1914년 5월 9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중산리 927번지[중산길 22-3]에서 태어났다. 1940년 12월 17일 전라북도 정읍에서 비밀 결사 단체인 구국결사단(救國決死團)을 조직한 뒤 40여 명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전라북도 김제군[현 전라북도 김제시]의 일본 헌병대와 경찰서를 습격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다 체포되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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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896년 7월 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219번지에서 김양현(金亮鉉)의 2남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영완은 1919년 고종의 국장일을 앞두고 인산(因山)에 참여하고자 서울에 올라갔다가 3·1운동에 참가한 후 귀향하였다. 이후 뜻을 같이한 이용욱(李用郁), 김용표(金容杓), 김상수(金相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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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순명(舜命), 호는 후석(後石)이다. 1882년 5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장두리에서 김기락(金箕洛)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재관은 지은(智隱) 최전구(崔銓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8년 동문인 정휴직(鄭休直)·정건도(鄭建燾)·정휴익(鄭休益)·이병중(李秉重) 등과 함께 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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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8년 8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지석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김재덕(金在德)이다. 김재영은 1938년 4월경 전라북도 정읍에서 정창묵(鄭昌默)·정휴규(鄭休圭)·정공일(鄭公一) 등과 함께 독립을 목적으로 비밀 결사 조직인 신인동맹(神人同盟)을 조직하고 동지 규합과 하부 조직 결성 및 자금 조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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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창규는 189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고창면 읍내리[현 고창읍 읍내리]에서 김승옥(金升玉)·오동균(吳東均) 등이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3월 19일 장날을 기해 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자 이에 찬동하고, 「독립선언문」·「국민휘보(國民彙報)」·「조선독립가(朝鮮獨立歌)」 등을 교부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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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원,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명중(明仲), 호는 호정(壺亭)이다. 1850년(철종 1) 9월 2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에서 태어났다. 노병희(魯炳熹)는 1888년(고종 25)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한학(漢學)을 수학하였다. 1903년(고종 40) 전의(典醫)가 되었다. 1905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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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경희(景羲), 호는 성재(誠齋)이다. 1894년 11월 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 31번지에서 태어났다. 노진룡은 1920년 상해임시정부 산하의 전라북도 감독부를 조직하여 총지휘 감독이 되었다. 당시 감독부에는 부감독 오의균(吳毅均), 재무 황종관(黃鍾寬)·이휴열(李休烈), 고문 강대직(姜大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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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석권은 1925년 1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 327번지에서 태어났다. 중국의 한구(漢口)에서 중국군 공작원에 포섭되어 제9전구정진(第九戰九挺進) 제5선대(第五線隊)인 호북야성(湖北野城)에 편입되어 일본군을 상대로 공작 활동을 하였다. 이후 광복군 제1지대에 입대하여 한국과 미국의 합동 기갑반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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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관은 1899년 7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에서 태어났다. 1926년 음력 5월 28일 오석완(吳錫完)으로부터 권총 및 탄환을 전해 받았다. 1928년 음력 4월경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마련된 이리동척회사(裡里東拓會社) 습격 계획에 참가하였다. 이 계획은 평안북도 의주 출신의 조인현(趙仁賢)[일명 오해룡(吳海龍)]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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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수원(水原)이고, 호는 근촌(芹村)이다. 1889년 1월 28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에서 백도진(白道鎭)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백관수는 어려서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한문을 익혔고,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일본에 건너가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1919년 2월 도쿄[東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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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7년 8월 3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신평리 673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송한근(宋漢根)이다. 송한룡은 1944년 5월 초 신림면 신평리에 있는 장일선(張日善)의 전답에서 작업 중 주민들에게 “2차 대전에서 일제는 패망하고 왜놈들은 모두 죽여 마땅하다.”는 반일 시국담(時局談)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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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신용수는 1888년 10월 28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60번지[외사길 26]에서 태어났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6년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아버지를 따라 의진(義陣)에 들어갔다. 1908년 2월 박도경(朴道京) 의병장이 남포(藍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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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거창(居昌)이며, 자는 덕현(德賢), 호는 봉암(鳳岩)이다. 1864년 11월 4일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신종주는 1906년 12월 5일 최전구(崔銓九)와 함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을 찾아간 뒤, 최익현에게 의병을 일으킬 뜻이 있음을 알고 가산(家産)을 털어서 군자금 5백 원을 마련하여 최전구를 통해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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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6년 9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377번지에서 오연문(吳然汶)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사촌형인 오의균(吳毅均)도 독립운동가이다. 오동균은 어려서 사촌형 오의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오동균은 김승옥(金升玉)과 함께 「독립선언문」과 「국민휘보(國民彙報)」, 「조선독립가(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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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의균은 1883년 2월 18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11월 고창에서 노진룡(魯鎭龍) 등과 함께 상해임시정부 산하의 전라북도 감독부 부감독에 임명되어, 감독인 노진룡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인원 파송 및 군자금 모금, 밀송 등의 상해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펴 나갔다. 1927년 1월에는 농촌 개발과 문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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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원용학은 1918년 8월 29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신송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東京]의 릿쿄대학[立敎大學] 예과(豫科)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1년 6월경 원용학은 주오대학[中央大学] 학생 배종윤(裴宗潤), 요코하마[横濱]전문학교(專門學校) 학생 강상호(姜相湖) 등과 자주 만나서 창씨제도와 조선어 폐지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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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금동은 1909년 9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것을 전해들은 유금동은, 고창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20일 동급생 유일석(柳日錫)·윤정하(尹鼎夏) 등과 함께 동교생들의 동조 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러고는 곧 무기 휴학을 단행하면서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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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유장렬은 1878년 12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에서 태어났다. 의병장 이석용(李錫庸) 휘하의 부장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가 1912년 항일 비밀 결사 단체인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에 가입,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에게 국권 반환 요구서 및 일본군 철병 요구서를 제출하였다. 1914년 한훈(韓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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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판술은 1905년 10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월산리에서 태어났다. 흥덕보통학교 재학 중인 1920년 3월 10일 밤, 유판술은 3·1운동 1주년을 맞아 이종철(李鍾哲)·이대성(李大成) 등과 함께 이종주(李鍾株)의 집에 모여 태극기 12매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만들고, 깃발 뒷면에는 “이를 파기하는 자는 참살하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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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이명(異名)은 유복일(柳福日)이다. 1893년 10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유희영은 1919년 8월 강대선(姜大宣)의 권유로 대한독립애국단에 가입하여 외교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조직으로, 서울에 본부를 두고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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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석렬은 1884년 1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 272번지[신성칠성길 53-23]에서 태어났다. 1919년 고창 지역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적극 참여하였다. 같은 해 11월 상해임시정부의 연통제(聯通制) 전라북도 감독부 고문으로 임명되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한 뒤 상해임시정부에 송금하는 등 활동하였다. 한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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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4년 10월 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이용욱(李庸郁)이다. 이용욱은 1919년 3월, 광무황제(光武皇帝)[고종]의 국장 참관 차 상경하여 서울의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귀향한 김영완(金永玩)을 만나 서울의 정황을 듣고, 김용표(金容杓)·김상수(金相洙)·이준구(李準求)·김진호(金辰鎬)·박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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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의신은 1922년에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평지리 346번지에서 태어났다. 상해임시정부 국무위원인 숙부 이동녕(李東寧)을 찾아 중국으로 건너간 뒤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44년 3월 15일 중경(重慶)에 있는 광복군 제1지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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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이명(異名)은 이종규(李鍾奎)이다. 1901년 3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월산리 351번지에서 태어났다. 이종주는 1920년 3월 10일 밤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이종철(李鍾哲)·이대성(李大成)·유판술(劉判述) 등과 함께 성내면사무소에 숨어 들어가 등사기를 훔쳐 「독립선언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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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1896년 2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양계리 363번지[내토1길 56-1]에서 출생하였다. 이종택은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면사무소의 등사기를 탈취하여 「독립선언문」과 취지서 등을 복사하여 살포하였다. 같은 해 11월 상해임시정부의 연통제(聯通制)에 따라 조직된 전라북도 감독부 고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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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신평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이판오(李判五)이다. 이화백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고 ‘근로보국대’라 하여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하자, 고향에서 “일제는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왜놈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는 등 일제에 반대하는 시국담을 펴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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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공일은 1890년 10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덕천리에서 태어났다. 1938년 4월경 전라북도 정읍에서 정창묵(鄭昌默)·정휴규(鄭休圭) 등과 함께 독립을 목적으로 비밀 결사 조직인 신인동맹(神人同盟)을 조직하고 동지 규합과 하부 조직 결성 및 자금 조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인동맹은 보천교도(普天敎徒)들이 독립운동을 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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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창묵은 1884년 5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광대리에서 태어났다. 1938년 4월경 전라북도 정읍에서 정공일(鄭公一)·정휴규(鄭休圭) 등과 함께 독립을 목적으로 비밀 결사 조직인 신인동맹(神人同盟)을 조직하고 동지 규합과 하부 조직 결성 및 자금 조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평소 항일 의식이 투철했던 정창묵은 신인동맹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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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휴규는 1904년 4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춘산리 602번지[입암길 33-19]에서 태어났다. 1938년 4월경 전라북도 정읍에서 정공일(鄭公一)·정창묵(鄭昌默) 등과 함께 독립을 목적으로 비밀 결사 조직인 신인동맹(神人同盟)을 조직하고 동지 규합과 하부 조직 결성 및 자금 조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평소 항일 의식이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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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우서(禹敍), 호는 지은(智隱)이다. 1850년 6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학천리 169번지에서 태어났다. 최전구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국권이 상실되자 이에 분격하여 이듬해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태인[현 정읍 지역]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가담하였다. 이후 최익현 의병대가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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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영구는 1918년 9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 355번지[조동길 35]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인 1933년경에 비밀 결사 조직이자 사상연구단체인 반제동맹(反帝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35년 2월 동맹 휴학을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 두 학생의 복교를 요구하면서 교실에서 농성을 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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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황종관은 1868년 8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대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한국이 일본의 준식민지로 전락하자, 1906년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이 고예진(高禮鎭) 등 30여 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상대로 투쟁할 것을 맹약하고 전라남도 태인의 종석산(鍾石山)에서 거의(擧義) 절차와...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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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강대영은 1875년 5월 13일 전라북도 흥덕 부안 검곡[현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검산리]에서 태어났다. 1909년 2월 15일 김영백(金永伯) 의병장으로부터 130여 명의 의병과 총기 70여 정 및 도검 5자루를 인계받아 의진(義陣)을 편성하였다. 이후 의병장으로서 고창의 반등산, 흥덕의 수강산 등지에서 군사들을 훈련시킨 후 진군하던 중 체포되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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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1851년 3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150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종팔(姜鍾八) 혹은 강종서(姜宗瑞)이다. 강종회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경복궁위장(景福宮衛將)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기병(起兵)하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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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복경(復京), 호는 인산(仁山)이다. 1887년 3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에서 태어났다. 고제남은 족숙(族叔)인 고석진(高石鎭)의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남달리 지용(智勇)이 뛰어났다고 한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7년 당시 19세의 나이로 김영백(金永伯) 부대의 좌익장(左翼將)으로 활동했으며,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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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김공삼은 186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8월 말[음력] 의병장 기삼연(奇參衍)의 휘하에서 활동하며 고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하였다. 1908년 1월[음력] 기삼연이 체포된 후 의병장이 되어 무기를 인수받고 부하 200명을 지휘하였다. 이후 전라도의 장성·영광·무장·고창·부안 등지에서 접전을 벌여 일본인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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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김대옥은 187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읍내면 율계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율계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12월에서 1908년 3월까지 박도경(朴道京)이 이끄는 의병진(義兵陣)에 가담하여 전라남도 장성군과 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박도경 의진은 30명이 총 15정을 휴대하고 의병 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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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김상오(金相五)는 1885년(고종 22) 무장군 군내면 성내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에서 태어났다. 25세 되던 1909년 이대국(李大局)의 휘하에서 선봉장 서응오(徐應五) 등 동지 25명과 함께 각기 총을 휴대하고 무장군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그는 의병 활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비상수단으로 그 해 음력 정월 9일 밤 무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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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김재화는 1878년 8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서 태어났다. 1908년 2월 고창 지역에서 해산 군인과 포군 등을 중심으로 의병을 규합하였고, 이어 4월에 김봉서(金鳳瑞)를 중군장, 이경엽(李景曄)을 호군장, 박내홍(朴乃弘)을 전부장(前部將) 등으로 선임하여 진용을 갖추었다. 이후 전라도 고창·흥덕·정읍 등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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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김종구는 정대홍(鄭大洪)이 이끄는 의진(義陣)에 들어간 뒤 1909년 3월에 총 30정, 칼 1자루를 휴대하고 전라북도 무장군 탁곡면 흥룡리[현 아산면]에 사는 성명 미상(未詳)의 양반 집에 들어가서, “우리는 의병인 바 군용금을 차출하라.”고 협박하여 엽전 250냥을 탈취하였다.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고창군 산내면 운곡리[현 아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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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화옥(化玉), 호는 경화(京和), 이명(異名)은 경래(慶來)이다. 도경(道京)은 아명이다. 1874년 3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30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박준식(朴準植)이다. 박도경은 한미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언변과 기개가 뛰어났다고 한다. 1905년 을시조약이 체결되자 고창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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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수원(水原)이고, 자는 사순(泗淳), 호는 갑운(甲雲)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에서 백우진(白宇鎭)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백인수는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고 올곧은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1905년 10월 5일 을사조약을 결사반대하며 백성기(白性基)와 함께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8월 29일 합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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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자는 응호(應鎬), 본명은 채열(彩烈), 초명은 종채(鍾採), 별명은 응오(應五) 또는 종주(鍾珠)이다. 1881년 10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백양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서상필(徐相苾)이며,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서종채는 어려서부터 의절(儀節)과 재덕(才德)을 겸비하였고, 특히 의술에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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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신화산은 반일 의병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목적을 가지고 1907년 고창군 무송(茂松)에서 의병을 일으킨 뒤에 훗날 200여 병사들을 이끌고 전해산(全海山) 의진(義陣)과 동맹하였다. 전해산 의병장은 1908년 8월 21일 선봉장 정원집(鄭元執)과 함께 거병하여 전라남도 나주와 영광 일대를 중심으로 1909년 3월까지 일제에 대항하여 무장 투쟁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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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자는 응천(應天), 호는 강재(剛齋), 이명(異名)은 경환(京煥)·길환(吉煥)이다. 1863년 11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 479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시만(吳時晩)이다. 오장환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이 자행되자 기삼연(奇參衍)·전해산(全海山) 등과 전라도 장성·고창·영광에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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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이명(異名)은 이철형(李喆衡)이다. 1873년 1월 19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에서 태어났다. 이철형은 1907년 8월 전라남도 장성에서 기삼연(奇參衍)이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할 때 참여하여 중군장에 선임되어 국민들의 항일 분기를 촉구하는 내용의 격고문을 각지에 발송하였다. 한편, 전라남도 영광에서 일본군 10여 명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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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낙언(樂彦). 호는 일광(一狂)이다. 1872년 3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453번지에서 태어났다. 정시해는 기우만(奇宇萬)과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양친 상을 당하여 6년 동안 계속하여 시묘살이를 했다. 1905년 을사 보호 조약에 분개하여 영남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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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이명(異名)은 추현(楸賢)이다. 187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국권이 피탈되고, 1907년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으로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최경현은 36세의 나이로 의병을 일으켜서, 1909년 무렵 약 2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고창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