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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골 열두마을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D010102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제연

[열두마을은 열두개가 아니다.]

갑사에서 시작되는 대장골 골짜기는 ‘익구곡’이라고도 불리우며 그 면적이 중장 1,2,3리를 거쳐 하대 1,2,3리에까지 이른다. 이 대장골 골짜기에 자리한 여러 마을을 일컬어 ‘열두대징이’라 하였다.

열두마을의 지명은 조금 다르게 전하기도 하지만 중장리하대리의 주요 마을을 일컫는 것은 분명하다. 열두마을을 갑사 입구에서 골짜기 끝의 순서로 보면, 갑산소 → 삼거리 → 상장 → 구억대쟁이 → 농바우 → 오미 → 대찬이 → 갑솔 → 안터 → 신대장 → 샛계 → 방아들 → 마룻골[종곡] → 서당동 등이 있다. 마을 숫자를 보면 반드시 열두개의 마을은 아니었는데, 굳이 열두마을이라 한것은 ‘12’라는 숫자의 의미와 상관있다. 12는 12간지, 12달 등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숫자였다.

이중에서 하대2리 마룻골이 열두동네의 형님마을로 통한다. 마룻골이란 한자로 ‘종곡(宗谷)’ 즉 가장 중심 또는 무엇의 근원이 되는 골짜기란 뜻이니, ‘형님마을’이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주민들은 동네이름을 ‘대장골’, ‘대정골’, ‘대징이골’ 등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한자표기도 ‘장(壯)’, ‘장(墻)’, ‘장(檣)’, ‘정(井)’ 등으로 서로 다르다. 글자가 다른것처럼 지명전설도 여기에 따라 다양하게 남아있다. 예컨대 대장군이 나온다거나, 큰 우물이 생긴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대장군 출생설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지만, 큰 우물은 바로 ‘계룡저수지’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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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저수지

[배가 고개를 넘고 산을 넘으면 천지가 개벽한다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돛대’라는 뜻의 ‘장(檣)’이다. 대장골의 지형을 풍수지리상 배의 형국이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대1리에 바로 배의 돛대라고 알려진 선돌이 2기 세워져 있는 것이다. 하대1리 사람들은 마을 지형이 배와 같아서 세운 돛대라며 선돌 2기를 예로부터 위해왔다.

하대리중장리에는 이 외에도 배와 관련한 여러 가지 지명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계룡저수지에 수몰되었다는 배머리 바위, 중장리의 배살미마을, 갑사 신바위에 배 고리가 달렸다는 전설 등이 그것이다. 계룡산 산 속에는 배너미재라 부르는 고개도 있다. 주민들은 대추를 실은 배가 이곳을 넘어 중장리를 지나다 중장리하대리 사이에서 엎어지는 바람에 그곳에 대추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다는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도 이건 정말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배가 엎어진 자리는 계룡저수지로 수몰되었다. 또한, 동네가 배의 모양과 같으니 울 안에 샘을 파지 말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논 구석에 샘을 파 물을 퍼 날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 가까운 계룡면기산리봉명리 사이의 ‘무너미고개’ 에도 물이 고개를 넘어 배가 지나가면 천지가 개벽한다는 전설이 있어 이 일대의 물과 배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대장골의 지명을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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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미고개

도저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물과 배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들이 현실로 이루어졌을 때 천지가 개벽한다는 믿음은 계룡산에 정도령이 도읍을 정하여 백성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 800년 도읍지를 연다는 정감록의 예언과 맞닿으며 여러 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조선시대 계룡산에 신도가 건설되다 중단된 역사적 사건, 그리고 20세기에 들어 대도시가 된 대전, 계룡대 삼군본부의 이전, 대전에의 정부종합청사 건설,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건설 등을 보면 예언이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나 되는 열두마을]

대장골 열두마을은 하나의 두레 권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지금은 중장리하대리가 갈라져 있고, 중장리하대리 안에서도 1,2,3리로 구분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항상 함께 어울리는 한마을이었다. 열두마을에서는 각각 두레가 있어서, 열두두레라 하였는데, 농사철이 시작되는 초벌매기때에 모두 모여 회의를 열었다. 모이는 장소는 하대2리의 마룻골, 수구매기 정자나무 아래에서였다. 열두마을 두레는 가장 형님두레인 마룻골 두레에 기세배를 하고, 각자의 마을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열두마을 두레가 아침에 마룻골에 모였다가 영기를 앞세우고 일을 나간다. 영기는 총각좌상과 총각부좌상이 들고 다녔다. 풍물을 치며 들에 나가면 영기는 꽂아두고 일꾼들이 논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풍장치는 사람들은 악기를 들고 앞으로 나와 흥을 돋운다.

각 마을의 두레는 다른 동네로 이동중 만나면 종종 두레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서로 자기마을을 형님으로 모시라며 옥신각신하다가 큰 싸움이 벌어지면 동네 어른이 평결을 내렸다. 칠석날에도 열두두레가 마룻골에 모여 한바탕 놀았는데, 각자의 마을에서 떡과 술을 빚어왔다. 이날 만약 참석을 못할 경우에는 반드시 합당한 이유를 대야했다.

두레의 전통은 해방 후 점점 약화되더니 경지정리가 되고 기계모가 들어오면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마을 앞들에서 두레 깃발이 펄럭이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때의 모습을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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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장마을 앞의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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