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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던 시기 구미 지역의 역사. 구미시의 ‘구미’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 상구미면·하구미면에서 비롯되어 1914년 상구미면·하구미면이 개칭된 상고면·하고면이 구미면으로 통합·개칭된 데서 비롯되었다. 독립된 지방행정구역으로서의 구미시는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구미시로 승격되면서 성립되었고, 1995년에 선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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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도리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화엄석탑(華嚴石塔)이라 부르는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같은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로 조성되었다. 해평면 송곡리 도리사 극락전 앞뜰에 위치한다. 지대석은 10장의 장대석으로 결구(結構)되었는데, 상면에 각형일단(角形一段)의 받침을 각출하여 기단부를 받치고 있다. 기단부 네 모퉁이에 방주(方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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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금강선원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여래입상. 구미시 황상동의 속칭 석현(石峴)이라 불리는 고갯길 왼쪽으로 솟아 있는 암벽의 앞면에 조각된 마애여래입상이다. 높이는 약 7m이며, 다리 밑에는 연화(蓮華)를 새긴 대(臺)를 갖추었고, 머리 위는 별석(別石)으로 갓 모양을 갖추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일부가 파괴되어 원래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머리카락은 아래로 내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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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금강사에 소장된 고려시대 다라니 3점과 조선시대 목판본 불경류 3책. 금강사에 소장된 다라니는 모두 3점이다.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 1점은 인출 시기가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로 추정된다. 『일체여래심비밀전신사리보협인다라니(一切如來心秘密全身舍利寶篋印陀羅尼)』 1점은 1152년(의종 6)에 해진사(海眞寺) 범학대사(梵學大師) 도휘(道輝)가 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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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김균은 해평김씨의 시조인 장렬공 김훤술의 9세손이며, 관직은 밀직부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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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순충공(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12세손이며, 대장군 김창서(金昌緖)의 5세손이며, 아버지는 승사랑 김지탁(金之卓)이다. 김남보는 고려시대 과거에 급제하여 판도판서시호위대장군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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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김득충은 선산김씨의 시조인 순충공 김선궁의 9세손이며, 고려조에 등제하여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 평장사, 수문관태학사, 판이부사, 감수국사, 상주국태자태사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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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열녀. 김효충(金孝忠)의 처 한씨(韓氏)는 남편이 역병으로 죽자 역병이 옮길 것을 두려워하여 가족들이 피신하고 친척들도 오지 않았기에 홀로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르고 3년상을 마쳤다. 부친이 후사(後嗣)가 없음을 가련하게 생각하여 개가(改嫁)를 권하자 머리카락을 자르고 자결하려 하여 다시 권할 수 없었다. 이후 열행(烈行)이 인정되어 열녀에 정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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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있는 고려시대 토성 터. 선산읍 동부리 남쪽 구릉과 동쪽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300m 정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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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있는 고려시대 읍성 터. 비봉산 능선에는 성벽이 남아 있으나 평지에는 성벽의 흔적을 전혀 확인할 수 없어 비봉산성과 읍성의 관련성을 유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읍성조」에 따르면 “고려 후기에 이득진이 쌓았는데, 토축으로 둘레가 2,740자이고, 내부는 9천(泉) 3지(池)로 퇴락한 지 오래이며, 조선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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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동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사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문헌에 자료에 나와 있지 않아 사명을 알 수 없는 절터로, 마을 주민의 전언에 의한 정보가 전부이다. 고려시대 전후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미시 도개면 동산리 동정마을 동북편에 위치한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는 곳에서 토기편과 자기편이 소량 확인된다. 도개면 일대의 사지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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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미륵입상. 석조미륵입상은 돌로 만든 서 있는 모습의 미륵 부처라는 뜻으로 원래는 석가모니 부처인 여래불로 추정되는데, 주민들의 민간신앙에 따라 모셔지면서 미륵불이라 불리고 있고, 마을 이름도 ‘미륵댕이’라고 한다. 미륵당 석조미륵입상은 원래 장천면 오로리 고갯길에 있었으나 중앙고속도로 건설 공사로 인해 현 위치로 옮겼다. 높이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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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고려시대 화엄종단 사원에서 시작된 사찰로 추측된다. 이후 조선 성종 때까지 화옹, 해유, 성관, 학의 등 화엄승 제자들이 계속 주지한 법손 사원이며 조선 후기까지 사원이 중창되어 이어져 왔다. 수다사 연혁은 『수다사약전(水多寺略傳)』에 따르면 830년(흥덕왕 5) 진감선사(眞鑑禪師)가 연악산 상봉에 백련 한 송이가 피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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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수다사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 연악산(淵岳山)에는 골짜기마다 중암(中庵), 굴암(窟庵), 전강대(全剛臺) 등 많은 암자 터가 유존하며, 그중에서도 명월당 사지가 제일 큰 절터라고 하는데, 구한말에 폐사되었다. 석탑의 현 상태가 기단이 없고, 탑신 부재도 결실되었으며, 잔존하는 부재도 심하게 파손된 점으로 보아 지금의 이곳이 원래 위치가 아닌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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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 대원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 한 돌에 광배(光背)와 좌상을 같이 조각하였다. 불두는 마멸이 심한 편으로 상단이 파괴된 것을 마을 주민들이 시멘트로 접합시켜 놓았다. 육계는 높고 두툼하며 상호는 원만하나 눈, 코, 입 등에 마멸과 파손이 심한 상태이다. 어깨 폭은 좁으며 상반신은 전체적인 비례가 길게 표현되어 있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이며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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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 보원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좌상. 앙련의 연화 대좌 위에 조성되어 있는 석불좌상이다. 육계는 높지 않은 편이며 상호는 둥글고 단아하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있다. 법의는 통견(通肩)이며, 결가부좌한 좌상으로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에 자연스레 놓았으며, 왼손은 배꼽 아래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석불 전체에 호분을 칠하여 고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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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월림리에 있는 고려시대 고분군. 도개면 면소재지에서 상주 방면으로 국도 25호선을 따라 가면 신곡교가 나오고, 이를 지나면 월림2리 임호마을이 나타난다. 월림리 고분군은 이 마을의 뒤편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다. 2002년 지표조사로 고분군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으며, 정식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유물은 없다.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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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윤신준은 본관은 해평(海平)이며 해평윤씨의 원조(遠祖)가 되는 인물로, 고려 인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르고 해징부원군(海澄府院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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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봉어 장세림(張世林)이다. 선의랑(宣議郞) 위위시주부동정(衛尉寺注簿同正)을 역임하였다. 위위시는 의장(儀仗)에 쓰이는 예기(禮器)와 병기(兵器) 등을 관장하였으며, 위위시주부는 종7품에 해당한다. 동정(同正)은 산직(散職)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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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적림리 원터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 적림리 석불입상은 원래 산동지서(山東支署) 오른쪽 논 가운데에 하단부가 매몰된 채 서 있었는데, 적원사의 주지인 박영호에 의하면 1972년에 미신타파운동이 일어나자 마을사람들이 이 불상을 깨부수려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박영호가 불상을 자신의 집으로 모시게 되었고, 불상을 모신 뒤 참배객들이 자꾸 모여들자 적원사(積元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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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 옥성초등학교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 주아리 탑곡 삼층석탑은 현재 옥성초등학교 교정 화단 중앙에 있으나 이곳이 원위치는 아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석탑은 원래 동네 남쪽 형제봉 탑곡(塔谷)에 있었던 것을 옥성면사무소로 이건하였고, 그 후 다시 옥성지서로 옮겼다가 1964년 11월 1일에 현 위치로 이건한 것이다. 원 소재지에는 아직도 석탑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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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태봉 2리 아랫 득익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사지. 『고려사(高麗史)』나 『문종실록(文宗實錄)』에 따르면 고려 후기에는 해인사(海印寺)에 보관 중이던 역대 실록과 경사를 득익사로 옮겼다가 다시 충주 개천사(開天寺)로 옮긴 적이 있고, 조선 전기 문종대에도 이곳에 보관 중인 『대장경』 3,800권을 왜의 사신 종금(宗金)에게 내린 일이 있었다. 이로 보아 득익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