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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복천변 시장 독립 만세 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529
한자 同福川邊市場獨立萬歲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천변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3월 20일연표보기 - 동복 천변 시장 독립 만세 운동 발생
발생|시작 장소 동복 천변 시장 독립 만세 운동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천변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 운동
관련 인물/단체 오재인|동복 공립 보통 학교

[정의]

1919년 3월 20일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천변리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

[개설]

화순 지역에서는 1919년 3월 13일 능주 장터에서 첫 만세 시위가 일어난 뒤 3월 15일에 화순읍 남쪽의 갱무산 정상에서 두 번째 만세 시위가 있었다. 동복천변 시장독립 만세 운동은 세 번째 발생한 시위로 동복 보통 학교 학생들이 주도하고 장터에 있던 성인들이 참여했다.

[경과]

동복 보통 학교는 일찍이 대한 제국 시절인 1908년에 동복 동진 학교로 시작되었으나, 1909년에 공립 학교로 전환했다. 설립 때부터 옛 동복현의 유력한 성씨인 동복 오씨들이 참여했고 학생들도 상당수 동복 오씨 집안의 자제들이었다.

만세 운동을 준비한 학생들도 다수가 동복 오씨였다. 당시 16세였던 오재인을 비롯하여 17세인 오덕기, 16세인 오재효, 14세인 정창문, 13세인 오연복 등이 참여하였다. 오재인·오덕기·오재효·정창문·오연복 등은 3월 13일 능주 장터의 만세 시위 등 화순 지역의 만세 운동 동향과 이웃한 광주의 만세 시위 등을 소문을 통해 들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학교 뒤에서 모임을 갖고 3월 20일을 시위 결행의 날로 정했다.

3월 20일 오전에 교문을 나선 학생들은 화순군 동복면 천변리의 장터로 나갔다. 때마침 장터에는 고종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백립(白笠)을 쓰고 흰 도포 차림을 한 노인들이 있는데 학생들이 ‘독립 만세’를 고창하자 노인들도 이에 동참했고 장터 일원의 몇몇 아낙네들도 여기에 참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참가자는 대략 수 십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

당시 동복면에는 헌병 분견소가 있었고 만세 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곧 시장을 덮쳤다. 현장에서 오재인·오재효·조성순이 체포되었고 다른 참가자들은 일단 현장을 피해 화를 입지 않았다. 체포된 학생들은 헌병 분견소에 억류되어 있었는데 사건 발생 3일 후에 동복 보통 학교의 일본인 교장이 분견소로 찾아와 용서를 구하면서 풀려났다고 한다. 한편 동복면에서는 기독교 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만세 운동도 있었다고 전하는데 아직 이를 입증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

[의의와 평가]

동복 천변 시장 만세 운동동복면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 중 가장 큰 규모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만세 운동이 곧바로 반향을 일으키지는 않았고 실제 참가자 수도 많지 않았다. 시위가 일어난 3월 20일이 동복 장날이었다는 주장이 있고 이를 통해 참가자 규모를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장날은 음력을 기준으로 개시됐는데 동복 장날은 2일과 7일이었다. 3월 20일은 양력 날짜이며 음력으로 환산하면 2월 19일이다. 따라서 동복 천변 시장 만세 운동이 장날에 맞춰 일어났다는 기존의 주장은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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