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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신 유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840
한자 鄭日新遺集
이칭/별칭 일신집,일신재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27년연표보기 - 『정일신 유집』 간행
소장처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 60-1]
성격 시문집
저자 정의림
간행자 박준기(朴準基)|홍승환(洪承渙)|정병해(鄭炳海)
권책 21권 12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사주쌍변(四周雙邊)|22.5×14.7㎝[반곽]
어미 내향 2엽|화문 어미
판심제 일신재집(日新齋集)

[정의]

조선 후기 화순군 능주면 출신인 한문학자 정의림의 시문집.

[저자]

정의림(鄭義林)[1845~1910]은 본관이 광산(光山)으로 능주(綾州) 대덕(大德)에서 태어났다. 호는 일신재(日新齋)로 정제현(鄭濟玄)의 아들이다.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천문·지리·역학·복서 등에 뛰어났다. 『정일신 유집(鄭日新遺集)』이 있다.

[형태/서지]

목활자본이다.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반곽 치수는 22.5×14.7㎝이며, 10행 20자이다. 내향 2엽(內向二葉)의 화문 어미이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편찬/간행 경위]

『정일신 유집』은 21권 12책으로 문인 박준기(朴準基), 홍승환(洪承渙) 등과 족인(族人) 정병해(鄭炳海) 등이 유고를 모아 1927년 간행하였다.

[구성/내용]

권1은 시 175제가 수록되어 있다. 대체로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사우들을 만나고 지은 교제시가 대부분이며, 뒷부분은 만시가 많다. 정재규와 교분으로 지은 시가 많으며, 1902년에는 단성의 신안 정사를 방문하고 최익현(崔益鉉), 기우만(奇宇萬), 정재규(鄭載圭), 최숙민(崔琡民) 등과 칠불사(七佛寺)에서 함께 지은 시가 남아 있다. 대표적인 시로는 「서석창수운(瑞石唱酬韻)」 10수를 들 수 있다. 정의림은 이 시의 서문에서 1887년 8월 17일부터 8월 23일까지 7일간 친구나 문인들과 함께 화순에서 무등산의 광석대(廣石臺), 상봉(上峯), 증심사(澄心寺)를 거쳐 다시 화순의 만연사선정암(萬淵寺禪定庵), 능주의 영벽정(映碧亭)과 동귀봉(東歸峯)을 다녀오면서 지은 것이라고 하였다.

권2부터 권10까지는 354명에게 보낸 서간문이다. 권 2에는 그의 스승인 기정진(奇正鎭)과 그를 가르쳤던 박영주(朴永主), 부여의 족대부(族大父) 정구석(鄭龜錫)을 비롯해서 김평묵(金平黙), 임헌회(任憲晦), 유중교(柳重敎), 최익현(崔益鉉), 민주현(閔冑顯), 민종렬(閔種烈) 등 저명한 학자 및 정치가 등에게 보낸 서간문도 들어 있다. 기정진에게는 성리학이나 예학에 관하여 물었는데 답변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김평묵유중교, 최익현화서 이항로의 제자들에게는 이단사설(異端邪說)을 배척하고 화서노사의 주리설을 굳게 따르자고 주장하였다.

권3은 주로 김석구(金錫龜), 최숙민(崔琡民), 정시림(鄭時林), 정재규(鄭載圭), 기우만(奇宇萬), 김현옥(金顯玉) 등 기정진의 문인에게 보낸 편지이며, 유기일(柳基一)이항로의 문인에게 보낸 편지도 들어 있다. 정재규와의 편지는 영남과 호남을 대표하는 기정진의 두 문인 간에 심주리설(心主理說)에 대한 논쟁을 전개하는 내용이다.

권4부터 권10까지는 주로 후배나 문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특히 권6의 양회락(梁會洛)과는 11통의 편지, 권8의 황철원(黃澈源)에게는 18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주 내용은 정재규와 마찬가지로 심주리설(心主理說)에 관한 논쟁이다.

권11부터 권13 중간부분까지는 잡저인데 모두 86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11의 「변전우소저노사선생납량사의기의(辨田愚所箸蘆沙先生納凉私議記疑)」, 「변전우소저노사선생외필변(辨田愚所著蘆沙先生猥筆辨)」은 1902년 전우(田愚)기정진의 「외필(猥筆)」과 「납량사의(納凉私議)」에 대해 비판한 것에 대해 재비판한 것으로 기정진의 학설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권12의 「서시제동지(書示諸同志)」, 「통고영남열읍장보문(通告嶺南列邑章甫文)」, 「통고호남열읍장보문(通告湖南列邑章甫文)」, 권13의 「절작변무문(節酌辨誣文)」은 1902년 영남 노론들이 기정진의 「외필(猥筆)」이 이이(李珥)를 비판한 것으로 문제삼아 기정진의 문집 목판본을 훼판하려고 하였을 때, 정의림기정진의 학설이 태극의 주재의 의리를 밝힌 것이며, 이이의 학설은 근본적으로 주리(主理)라는 것을 널리 알려 기정진을 옹호한 글들이다. 그 밖의 다른 글은 주로 문인들과 헤어지면서 지어준 글이나 자설이 대부분이다.

권13권 후반부는 34편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문집이나 족보 서문이 많다. 「영귀회안서(詠歸會案序)」는 1887년 벗들과 함께 일주일간 무등산 일대를 다녀오면서 서로 학문과 도의를 강마하자고 만들었던 영귀회의 내력을 적은 글이다.

권14는 기(記)인데 71편이 수록되어 있다. 「영귀정(詠歸亭)」은 영귀회에서 정의림 말년의 강학처인 영귀정을 만든 경위와 취지가 실린 기문이다. 「일휴당선생최공정려중수기(日休堂先生崔公旌閭重修記)」는 1593년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화순 출신의 의병장 최경회(崔慶會) 장군의 정려 중수기이며, 「양건당황공정려중수기(兩蹇堂黃公旌閭重修記)」는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강진 출신의 황대중(黃大中) 장군의 정려 중수기이다.

권15는 14편의 발(跋), 14편의 명(銘), 3편의 사(辭), 3편의 찬(贊), 3편의 상량문, 4편의 축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 「노사선생답문류편발(蘆沙先生答問類編跋)」은 기정진과 문인들 간의 문답내용을 기정진의 문인들이 수년간에 걸쳐 성리학, 경서, 예학, 역사 등으로 항목별로 편집한 『답문류편(答問類編)』의 서문이다. 또한 「제황경함암간우록후(題黃景涵巖間偶錄後)」는 황철원이 성리학에 대해 논한 글에 정의림이 단락별로 평가를 해준 글이다. 명(銘)이나 사(辭)는 주로 후배나 문인들의 자(字)에 대한 글이다.

권16은 제문 40편, 비(碑) 1편, 묘갈명 9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문은 그의 스승인 기정진(奇正鎭)과 그를 가르쳤던 박영주(朴永主), 정구석(鄭龜錫)를 비롯해서 김평묵(金平黙), 최익현(崔益鉉) 등 기호지방의 저명한 학자, 조성가(趙性家), 김석구(金錫龜), 최숙민(崔琡民), 정시림(鄭時林), 민주현(閔冑顯), 정재규(鄭載圭), 기우만(奇宇萬), 김현옥(金顯玉), 김한섭(金漢燮) 등 동문 선후배 또는 교유 인물들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묘갈명은 권 17의 묘지명이나 묘표와 함께 주로 능주나 화순 일대의 인물들에 관한 묘도문자이다.

권17은 묘지명 35편, 묘표 12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18과 권19의 전반은 40편의 행장이 수록되어 있다. 정의림의 조부, 백부, 부친과 모친 등의 행장을 비롯해서 능주나 화순 일대의 인물들에 대한 행장이다. 권19의 후반은 전(傳) 13편이 수록되어 있고, 권20과 21은 48편의 유사(遺事)가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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