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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리 진주 김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870
한자 道莊里晉州金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집필자 최성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636년 - 진주 김씨 김철완 도장리 매산등 입향
성격 집성촌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진주 김씨 집성촌.

[명칭 유래]

도장 마을의 뜻은 도당굿을 하여 도장리라 하였다는 설과 해망산의 씩씩한 기상을 받아 후손들이 항상 도와 의를 숭상하고 마을 밖으로 웅장하게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장리라 했다고 전한다. 또한 도장 마을을 가려면 모퉁이를 돌아가므로 돌쟁이, 독쟁이라 한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도장이라 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진주 김씨 김철완(金鐵完)[1606~?]을 입향조로 하여 세대를 이어오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진주 김씨 집성촌이다. 1636년(인조 14) 무렵 김철완병자호란을 피하여 나주 왕곡 신포리에서 도장리 매산등으로 입향 정착하였다.

백파정(白波亭) 김재탁(金再鐸)[1776~1846]은 자가 맹경(孟警)으로, 1827년(순조 27)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효행과 학행을 행하였다. 해석(海石) 김용상(金鏞相)[1858~1919]은 어린 나이에 스스로 학문을 터득하여 모든 경서를 통달하였고 장래의 일을 예측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자 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한일늑약 후 서울로 올라가 이낙정(李樂正) 등과 함께 독립 자금을 모으는 활동을 수행하다가 1914년 러시아 국경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경성으로 압송되었다.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후 고향에 내려와 옥중에 있는 동지들과 망명한 동지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은 후 1919년 운명했다. 2003년 대통령 표창이 있었다.

송정 김영하(金榮夏)[1878~1920]는 전라 광복단 단원으로 해외 및 재경 광복단 자금 조달을 하다가 1918년 피체되어 광주 법원에서 10년을 선고 받고 대구 복시 법원에 이감되었고 1921년 옥사하였다. 1980년 8월 건국 포장이 추서되고 1990년 12월 건국 훈장이 추서되었다.김정규(金禎奎)[1906~1985]는 1956년부터 1959년까지 도암 면장을 역임했다.

[자연환경]

도장 마을은 동북쪽으로 고당산, 동쪽으로 해망산이 자리하고 있다. 독무지기와 아내미는 북쪽으로 작은 구릉산을 두고 나란히 연결되어 있으며 대밑에는 정천천 건너 서편 덕사봉 아래에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30가구 55명이 진주 김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923년 진주 김씨 문중에서 추모 건립한 김재탁백파정, 1934년에 김성옥(金聲玉)을 위해 세운 농은거사 김공 거이정(居易亭) 유허비, 1991년에 건립한 태암 진주 김공 실적비, 1980년에 김덕기(金德基), 김상기(金庠基), 김봉기(金鳳基) 3형제의 지극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진주 김씨 삼효자 기적비, 2008년에 건립한 항일 애국지사 김용상 김영하 선생 충혼탑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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