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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264
한자 孔基南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희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7년연표보기 - 공기남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0년 - 공기남 전라도 창극단 입단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공기남 대한 국악원 창극단 입단
몰년 시기/일시 1971년연표보기 - 공기남 사망
출생지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
성격 인물
성별
대표 경력 국악인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 출신의 국악인.

[활동 사항]

공기남(孔基南)[1917~1971]은 선천적인 음성과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특유의 소질을 가지고 동편과 서편 소리를 두루 섭렵하였다. 16세 때 아버지 공창식(孔昌植)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19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판소리 명창 박동실(朴東實)에게 판소리를 배운 후 5마당 소리를 두루 잘했으며, 특히 춘향가를 잘했다. 그리고 창극 또한 능하여 방자역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1940년 전라도 창극단을 거쳐 1939년 박석기가 창단한 화랑 창극단의 조상선·한주환·김여란 등과 함께 춘향전을 비롯해 창작 사극 「봉덕사(奉德寺)의 종소리」와 김원학의 창작 창극 「팔담 춘몽(八潭春夢)」의 공연 때 김소희·임소향·박동진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45년 8·15광복 직후 대한 국악원의 창극단에서 정남희·박동실·강장원 등과 함께 활동했다. 1945년 8·15광복 직후 광주에 사는 박동실·오태석·조몽실 등과 함께 광주 성악 연구회를 조직하고 대춘향전을 창단 작품으로 공연하였다. 1948년 초 창단된 국극 협회의 대표인 박동실이 무대에 올린 「고구려의 혼(魂)」 공연 때 그는 성원목·김득수·박후성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 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좌익 음악인의 체포령이 내려지자 월북했다. 1950년 7월 의용군에 입대했으며, 평양 국립 예술극장 민족 성악 배우, 1960년 공훈 배우가 되었다. 1951년부터 1962년까지 국립 민족 예술단 창극 가수, 1963년부터 황해 북도 예술단에서 일했으며, 「춘향전」의 방자역과 이도령역, 「선화 공주」의 서동역, 「흥부전」의 놀부역 등을 맡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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