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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관광 마을로 고향의 미래를 꿈꾸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A030302
분야 생활·민속/민속,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미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근대 1961년 - 하태명 출생
현대 1980년 - 하태명씨, 대학에 입학하다.
현대 1989년 - 하태명씨 혼인
현대 2010년 - 하태명씨 귀향
마을지 하태명 집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194-1번지

[살만한 농촌에서의 농사 짓기를 꿈꾸다]

하태명 씨는 1961년 이곳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서 출생했다. 그러나 진양 하씨 집성촌인 야사 마을에서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마을을 떠나 지금껏 도시에서 살아왔다. 대학도 광주에서 나왔고, 졸업 후에는 타 도시에서 결혼도 했고 직장생활도 했다. 그러던 그가 삼년 전에 돌연 도시에서의 생활을 모두 접고 고향인 이곳 야사리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데, 정말로 순수하게 농사짓기 위해서 들어왔다니까요.”

그가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살겠다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단순히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왔다는 그의 말 속에는 그러나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그가 말하는 ‘농사 짓기’에는 ‘살만한 농촌에서의 농사 짓기’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살만하다’는 말 속에 농사짓기와 더불어 또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그 또 다른 무엇을 위해 그는 도시의 편리함을 뒤로하고 고향마을로 거침없는 도전을 선택한 것이다.

[대학생 농사꾼으로 학비를 벌다]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하태명 씨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외지 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생활상의 곤란을 겪어야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는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다녀야만 했단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해는 1980년이다. 소위 운동권으로 대변되는 80년대의 대표적인 학번인 것이다. 당시의 젊은 대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했던 시대적 아픔을 그도 갖고 있지만, 그러나 가난한 대학생에게는 그마저도 사치였다고 한다. 스스로 대학의 학비를 벌어야만 했기에 중간에 한번씩 휴학을 하고는 고향마을로 내려와 농사를 지었고, 그것으로 다시 복학해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때 농사를 짓느라 까맣게 타진 얼굴 덕분에 여학생들은 모두 자신을 아저씨라고 불렀다고 하면서, 잠시 추억에 잠긴 하태명씨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농사를 지어가며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하태명씨는 취업을 했고 대학교 후배였던 부인과 결혼도 했다. 그리고 1남 1녀의 자녀도 두었다. 그렇게 도시인으로 살아온 그가 돌연 고향인 야사리로 들어온 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 관광 마을 만들기로 마을의 미래를 꿈꾸는 젊은 일꾼]

하태명 씨가 도시를 떠나 고향인 야사 마을에 농사지으러 들어온 지 올해로 딱 삼년 째다. 그는 귀향한 다음 해인 2011년에 화순군수로부터 표창을 받는다. 표창의 내용은 ‘화순군민의 날 행사에 선수들과 주민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묵묵히 봉사하고 헌신한 공로’이다. 지역을 위해 마을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그의 노력을 인정받은 결과이다.

2012년 마을에서는 그에게 마을일을 할 젊은 일꾼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마을 사무장’ 직을 맡겼다. 그리고 ‘마을 사무장’의 직책을 맡고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일은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녹색 농촌 체험 마을 신규 조성 사업 계획서’를 작성한 것이다.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하태명 씨는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계획서를 작성하면서 그는 야사 마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마을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주민 동의서와 토지사용 승낙서 등을 받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제는 지방자치가 되면서 국가에서 농촌을 육성해주려고 하지 않아요? 해서 나도 거기에 발을 맞춰야 되지 않겠느냐 합니다. 우리 마을이 예전부터 뽕, 잠업 계통을 중심에 두고 있는데 이것은 힘든 노동력을 요구해요. 그런데 마을 노인들이 힘들어서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우리 동네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생각은, 고령화 사회가 되어도 마을에 수입이 창출되고, 청년 인구가 마을로 유입이 되려면 문화 관광 쪽으로 많이 가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요. 여기 특산물하고 연계하면 마을이 좀 살기 좋아지지 않겠느냐 합니다.”

그는 현재 야사 마을에 있는 실학 정신의 산물인 하백원 선생의 규남 박물관과 잠업 체험장,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등을 활용하면 충분히 문화 관광 마을로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 적벽과 같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받쳐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태명 씨의 계획대로 될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야사 마을의 젊은 일꾼이라는 것이고, 그가 꾸는 꿈이 야사 마을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보제공]

  • •  하태명(남, 1961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사무장, 규남 하백원 선생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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