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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헌에 소개된 화순의 검은 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B010101
한자 古文獻-和順-黑土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복암리 구암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동여도에 보이는 흑토재 지명 1857년 - 고 지도인 동여도에 흑토재(黑土岾) 지명이 보인다.
고문헌에 보이는 흑토재 지명과 그 유래 1530년, 1656년 -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동국여지지(1656년), 동여도(1857년) 같은 고 문헌에 흑토재(黑土岾) 지명과 그 유래가 보인다.
고문헌에 보이는 흑토재 지명 1757년~1765년, 1863년, 1895년 - 고 문헌인 여지도서(1757~1765), 대동지지(1863년), 호남읍지(1895)에서는 흑토재 위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흑토재 일대 채광권 취득 1905년 4월 5일 - 박현경이 화순 흑토재를 발견하고 그 일대의 채광권을 얻어, 탄광 사업을 시작한다.
마을지 흑토재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충의로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천운 마을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화순오동사원아파트(화순광업소 사택)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천운길 17
마을지 화순천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마을지 경석더미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고문헌에 소개된 화순의 검은 흙]

전라남도에 석탄 산지가 있다면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한다. 전라남도 지역은 녹색과 황금 들녘의 전원 풍경이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녹색의 땅 전라남도에 검은 탄광 마을이 존재한다.

고생대 석탄기층의 평안계 사동통이 분포하여 전라남도 유일의 화순 탄광을 형성한 것이다. 화순 탄광의 탄층은 지질적으로 고생대의 구 사동퉁(寺洞統)에 대비되는 오산리층·화순층 사이에 있는데, 불규칙하여 50∼80°의 급경사를 이루고 탄너비는 평균 2∼3m 정도가 많다.

고문헌에 등장하는 지명에서 이러한 화순 탄광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옛 지도인 『동여도』[1857년]를 보면 화순에 ‘黑土岾[흑토재]’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옛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권 40에 ‘黑土岾在縣東二十五里其地産黑土故'라고, 『동국여지지』[1656년] 권 5에도 ‘黑土岾在縣東二十五里其地産黑土故名’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흑토재’가 현[화순현으로 화순읍] 동쪽 25리에 있으며, 그 내력은 검은 흙’이라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여지도서』[1757~1765], 『대동지지』[1863년], 『호남읍지』[1895년]에서도 흑토재 위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흑토재 검은 흙은 바로 석탄이다. 하지만 1904년이 되어서야 검은 흙이 유용한 석탄으로 인지된다. 『동국여지지』는 실학자 유형원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찬(私撰) 전국 지리지이다. 국토에 대한 사실적 실천적 실학사상을 담아내었다. 그렇기에 350년 후에 그 뜻이 전해져 흑토재 검은 흙이 유용한 자원으로 개발되기 시작된 것이다.

[현 동쪽 25리 흑토재를 찾아서]

고문헌에 소개된 현 동쪽 25리는 화순읍 동쪽 10㎞를 뜻한다. 화순읍에서 국도 22호선을 타고 동쪽으로 달리다, 동면 용포 교차로에서 옛 도로인 충의로로 갈아타면 전라남도의 색다른 촌락 풍경과 만나게 된다. 검은 먼지를 뒤집어 쓴 폐가와 시커먼 경석더미, 탁한 하천이 탄광 마을임이 실감나게 한다.

천운 마을을 지나자, 오른쪽 화순천 너머로 ‘안전 제일’ 표지가 붙은 탄광 설비가 보인다. 이어 충의로 좌측으로 아파트도 보인다. 면 단위에서는 보기 드문 경관이다. 천운 마을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 고갯길로 접어들면 왼편에 넘은골 이정표가 나온다. 넘은골로 들어가는 오른 쪽 구릉의 경석더미 일대가 바로 흑토재이다. 전라남도 유일의 탄광인 화순 탄광 시발지이다.

[검은 흙이 황금이 되다]

흑토재는 화순의 토호 박현경에 의해 전라남도 유일의 석탄 산지로 개발되기 시작한다. 박현경은 1904년에 검은 흙이 유용한 석탄임을 알게 되고, 1905년 4월 5일에는 채굴권을 등록했다고 한다. 채굴이 시작될 때에는 석탄의 양이 많아 굴을 뚫지 않고 지상에서 석탄을 주웠다고 한다.

“현재는 지하로 3㎞나 파고 들어가야 석탄을 캘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냥 주우러 다녔다는데... 그렇게 널려 있었는데, 지금은 다 캐서 노출된 것이 없어요.”(최병철)

고 문헌에 등장하는 지명이 불씨가 되어, 화순의 산간 오지는 강아지도 만 원권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의 호황을 누린 것이다.

[정보제공]

  • •  최병철(남, 1953년생,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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