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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마을의 문화 공간, 천운 극장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B010203
한자 炭鑛-劇場-文化館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복암리 구암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화순 광업소 극장인 문화관 건립 1961년 - 화순 광업소는 1961년에 문화 공연과 행사를 할 수 있는 문화관을 천운 마을에 건립한다. 주말에 영화와 공연을 상영했다. 마을사람들은 천운(장)극장이라고 한다.
화순 광업소 문화관을 예비군 교육장으로 사용 1983년~1992년 - 1983년~1992년에는 화순 광업소 문화관을 예비 교육장으로 사용하였다.
화순 광업소 석탄회관 건립과 문화관 폐쇄 1992년 - 화순 광업소는 1992년에 석탄회관 건립과 함께 문화관을 폐쇄하여, 현재는 문화관 터만 남아 있다.
마을지 천운 마을 표지석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천운 마을 버스 승강장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화순 광업소 문화관 터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화순 광업소 영빈관 터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빈 터만 남은 200석 규모의 천운 극장]

화순에서 충의로를 따라 동면으로 진입하면 천운 마을이다. 충의로 길가의 퇴색한 건물들과는 달리 천운 마을 표지석, 버스 정류장이 깔끔하고 조경도 잘 되어 있다. 천운 마을 회관 앞 양쪽으로는 너른 터가 펼쳐져 있다. 빈 터는 1980년대까지 번창했던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천운[장] 극장]과 천운장이 있었던 자리이다. 천운 마을에서 오동 마을로 연결된 길을 중심으로 오른편 공터에 극장이 있었고 왼편에 천운장이 있었다.

대한 석탄 공사는 각 광업소에 문화 공연과 행사를 할 수 있는 문화관을 설치했다. 강원도 삼척의 도계 광업소를 시작으로[1955년] 모든 광업소에 건립하였다. 광업소는 대개 오지에 위치하는데, 교통까지 불편하던 시절에는 고된 탄광 일로 지친 이들이 도시까지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문화관 건립은 광업소 근로자와 가족, 그리고 인근 마을 주민을 위한 광업소 측 배려였다. 탄광 개발로 인해 직, 간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인근 주민들에게도 보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화순 광업소에서는 1961년에 천운 마을에 문화관을 건립한다.이 문화관을 주민들은 천운[장] 극장이라고 부른다. 문화관 건물은 일본식 주택의 외관을 띠고 있었고 안은 천장이 높았다고 한다. 200여명이 앉을 수 있었고 주말이면 영화 상영이나 공연을 했다. 탄광 직원들 뿐 아니라 일반 주민도 이용할 수 있었다.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천운 극장]은 탄광 마을과 함께 추억 속으로]

우리나라 석탄 산업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초고속으로 성장한다. 화순 탄광도 마찬가지다. 근로자 복지를 위해 문화관이 설립된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1967년의 기습 한파로 연탄 파동이 일어난다. 정부는 석탄 대신 석유 중심의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하게 되고, 석탄 산업은 위축된다. 당시 극장 흥행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 후 석탄 산업 육성제도가 마련되고, 세계적인 석유 파동까지 일어나면서 석탄 산업은 다시 활기를 찾는다. 화순 탄광은 1970년대 중반부터 안정을 찾더니 1989년에는 절정기를 맞는다. 당연히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천운[장] 극장]도 활기를 찾는다. 주말이면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축제 분위기로 들떴다.

현지 주민들은, 온 마을의 축제였던 공연이나 영화 관람이 큰 감동이었다고 한다. 특히 오동리라는 지명에 걸맞게 오동나무 길을 오가며 즐기던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천운 극장] 추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당시 산 넘어 마을인 서성리에 거주했던 조효순 부녀회장은 처녀 시절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엄청 봤네. 우리는 이 너머가 친정이었거든 우리 친구들하고 남자들하고, 우리 오빠친구들하고 밤에 산을 넘어와 갖고 영화보고 가고 그랬어. 복숭밭이 저쪽에가 있었잖아요. 극장 보고 가면서 복숭 사갖고 가서 먹어.”(조효순)

하지만 석탄 산업은 1989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사람들이 하나 둘 마을을 떠나고 30여년 간 주민과 함께 해 온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천운 극장]도 막을 내리게 된다.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천운 극장]은 1983년부터 1992년까지는 예비군교육장으로 사용되었다. 선거가 있을 때는 투표소로도 사용되었다.

“극장에서 안전교육도 하고 투표도 하고 했는데, 국회의원 선거도 하고, 대통령 선거도 했어요. 철거한지 한 18년 됐어요.”(최병철)

화순 광업소 측은 1990년에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천운[장] 극장]을 폐쇄하고 석탄 회관을 건립한다. 1994년에 석탄 회관 건물은 해체되고 그 자리는 아직까지도 빈터로 남아있다. 그래도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천운 극장]이 만들어준 사람들의 옛 추억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정보제공]

  • •  조효순(여, 1953년생,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부녀회장)
  • •  최병철(남, 1953년생,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이장)
[참고문헌]
  • 대한 석탄 공사(http://www.kocoa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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