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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경쟁률이 10대 1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B020301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동마을|복암리 구암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라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화순 광업소 전성기 1988년 - 화순 광업소 석탄 산업 종사자 수만도 2,175명이었으며,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던 시기이다.
화순 광업소 최고 생산량 1989년 - 화순 광업소에서 70만5050톤이 생산되어, 역대 최고 생산량을 기록했다.
마을지 화순 광업소부속병원 터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돈벌이가 됐던 탄광일]

탄광 노동자들은 지하 갱도에서 탄가루를 마시며 고된 노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이 마지막 일터로 찾는 곳이 탄광이라고들 한다. 어두운 갱도와 검은 흙더미 속에서 탄광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을 일해야 한다. 또한 언제 닥칠지 모를 사고에 노출된 채 고된 노역을 해야 한다. 이렇게 힘든 일터지만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는 일거리 없는 농촌에서 품팔이를 할 수 있는 화순군민들의 일터였고, 1970년대에는 석탄 경기 호황으로 젊은 노동자들과 사람들로 활기찼던 곳이었다. 화순군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88년 화순에서 석탄 산업 종사자 수는 2,175명에 달했으며, 1989년 화순 광업소 생산량은 70만 5,050톤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당시 화순 광업소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비록 몸은 고되지만, 그만큼 경제적인 보상이 따르고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돈벌이가 됐던 것이다.

[대기업 경쟁률보다 셌어!]

1970~80년대 화순 광업소에서는 노동자들을 위한 주거지를 마련해주었고, 겨울철 연탄도 무료로 제공되었으며, 자녀들의 학자금을 지원해줬기 때문에 힘든 작업이었지만 복지 여건이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순 광업소에서 일을 하면 웬만한 직장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석탄 산업 전성기 때는 탄광 노동자들의 월급이 군수보다 2배 많았고, 정년까지 보장받다보니 화순 광업소를 찾는 이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85년도에 입사할 때, 제가 강원도 태백 훈련원에서 시험을 보고 신체검사 받고 입사해서 거기서 3개월 간 기초 교육을 받고 정식 직원으로 채용이 됐죠. 그때 제가 입사할 때, 250명 정도를 채용하는데, 몇 명이 왔냐? 그때 1,200명 정도가 왔어요.”(오찬열)

입사 경쟁률이 치열해, 광업소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웠다고 한다. 실제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는 평균 경쟁률 10대 1이 넘었고, 연고가 없으면 입사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모래 가마니 들고 뛰어]

그렇다면 경쟁률이 치열했던 광업소 입사 시험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화순 광업소 채용 시험은 탄광일이 고되고 힘든 일인 만큼 체력 테스트가 필수였다고 한다. 지원자들은 화순 광업소 부속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고, 체력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특별한 체력테스트 방법이 없던 시절에는 지원자들이 모래가마니를 짊어지고 달리기를 하는 방법으로 시험을 봤다고 한다.

“병원에서 검사해, 건강해야 돼. 건강이 제일 중요한데, 특히 귀가 중요하고 건강에 조금이라도 문제 있으면 안 돼. … 모래가마니가 있어. 그거 둘러매고 뜀박질을 하고 여럿이 뛰어. 맨 꼴찌는 떨어지는 거야.”(최병철)

“우리 앞에 선배들은 모래가마니도 들고 뛰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체력시험을 볼 때는 작업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것들 봤죠. 첫 번째는 건강인데, 자기 신체에 문신이라든가 흠집이 있는 사람들은 안 됐어요. 문신이나 이상한 행동을 하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 한 거죠. 그 다음에는 학력도 필요하지만 고학력이면 또 안 뽑을려고 했죠.”(오찬열)

탄광은 건강한 신체만 있으면 탄 파먹고 살 수 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화순 광업소에는 어려운 시절 밑천 안 들고 돈을 벌기 위해 지원자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여전히 체력이 중요하죠]

석탄 산업의 사양화로 인해 화순 광업소 신규 채용 인원은 많이 줄었지만 입사 경쟁률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임금과 후생 복지 조건이 좋고, 특히 자녀들의 학자금이 대학까지 지원되기 때문에[3명까지 지원] 여전히 탄광 노동자를 선호한다.

과거에 비해 새로운 입사자들의 달라진 경향이라면 2000년대 들어오면서 탄광 노동자들의 연령층이 높아지고, 학력도 높아진 점이라고 한다. 평균적으로 노동자들의 학력이 고등학교 졸업 이상이 되면서 그에 따라 연령층도 서서히 높아지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이다.

최근 화순 광업소 채용 과정은 서류 심사, 신체검사, 면접의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일단 서류 심사에 합격하면 합격자들은 화순 광업소 지정 병원인 순천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고 그 합격여부에 따라 면접을 보고 채용을 하게 된다. 여전히 신체검사에서 탈락하면 이유가 없다. 최근 신체검사에서는 특히 허리에 상당한 중점을 둔다고 한다. 여전히 무거운 걸 들고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모래가마니를 들고 뛰진 않지만 여전히 체력검사는 탄광 노동자들에게 필수적인 조건이다.

[정보제공]

  • •  오찬열(남, 1956년생,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 기획실장)
  • •  최병철(남, 1953년생,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이장, 화순 광업소 광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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