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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폐증은 얻었어도 아직은 살기 좋은 탄광 마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B030101
분야 생활·민속/생활,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복암리 구암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미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근대 1933년 - 정종근씨가 전남 보성군 득량면에서 출생하다.
근대 1960년 - 정종근씨 혼인
근대 1962년 - 정종근씨가 화순탄광 광부가 되다.
근대 1967년 11월 4일 - 화순탄광의 갱내침수로 7명이 사망하다.
현대 1992년 - 정종근씨, 진폐증 발병하다.
마을지 정종근 집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충의로 951-2

[농사짓다가 돈 벌러 광업소에 취직하다]

천운 마을 정종근 씨는 오늘 아침에도 화순읍에 있는 병원에 가서 약을 타왔다.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에 다니면서 얻은 진폐증으로 매달마다 엑스레이도 찍고 약도 타와야 한다. 정종근 씨는 1933년에 전남 보성군 득량면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다 중간에 군대를 다녀온 탓에 남들보다 늦은 스물여덟 살에 결혼했다. 당시 신부 송용남 씨는 스물네 살이었다. 결혼을 하고 보니 농사만 지어서는 평생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살 것 같아서 할아버지가 직접 이곳 화순 탄광에 이력서를 내서 광부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돈 못버는 젊은 사람들이 여기 광업소에 들어와서 생활을 유지한 사람들이 많애. 나는 누구 소개로 온 것이 아니고 내 능력으로 왔지. 정식 직원보다도 광부로 인자 고용이 되았지. 인자 직원은 직원이지만 광부로.”

할아버지는 서른 살에 화순 광업소에 취직이 되어서 쉰아홉 살이 되던 해에 다리를 다쳐 그만둘 때까지 29년 4개월을 광부로 살았다.

[죽을 고비도 몇 번 당하고, 세상 그렇게 살았어]

정종근 씨가 광부로 일할 때는 아침 여섯시부터 하루 여덟 시간씩 삼교대로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작업은 탄광에 들어가서 석탄을 캐는 ‘선산부’와, 탄을 수레로 실어나르는 ‘운반부’로 나뉜다. 할아버지는 직접 탄을 캐는 선산부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탄광 밖에서 여자들과 함께 석탄과 돌을 골라내는 선탄작업을 하는 남자도 있었다고 한다. 임금은 매달 월급 형식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고정적인 것은 아니었고 그날그날의 생산량에 따라서 임금이 책정되어 매달 일정일에 합산해서 주는 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을 잘하면 반장들이 돈을 더 주고, 못하면 월급을 적게 책정해서 주기도 했단다.

“죽을 고비도 몇 번 당하고.. 아, 광이 무너지니까. 그렇게 살았어. 세상 그렇게 살았어. 한번은 물이 터져가지고, 매몰사건. 여기 광업소에서. 몇 년도인지는 내가 잊어불고 모르제. 마흔살 땐가 마흔한 살 때인가… 하여튼 오래되니까 기억력이 상실되고 나이가 먹으니까. 그때는 내가 피했제 거기를. 일을 안나갔지. 원래 일을 나가는 날이었는데. 그때 우연히 아침에 일을 나가는데, 그 광업소 가면 마루보시 사람들이 쌀을 운반하는데 어떤 아줌마가 하얀 옷을 입고 변소로 들어가드라고. 그래 기분이 안좋아서 집으로 도로 와부렀지. 근디 그날 물이 터져가지고 일곱인가 사망이 되았지.”

정종근 씨는 당시를 마흔 살 무렵으로 기억하지만, 화순 광업소의 사고 일지를 보면 서른넷 무렵이어야 맞다. 하지만 서른이든 마흔이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는 그날 자신이 천우신조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매번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 일을 해야 하는 광부들의 삶이 새삼 아프게 와 닿는 부분이다.

이곳 탄광 마을에는 옛날부터 광부들이 일을 나가는 길에 하얀 옷을 입은 여자를 보거나 하면 좋지 않은 일을 당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아침 정종근 씨도 그런 현상을 보고 작업에 나가지 않아 화를 면한 것이다. 이 믿음은 아직도 강하게 믿어져서, 천운 마을 할머니들은 지금도 직원들이 출근하기 위해 들어오는 통근 버스만 봐도 길을 건너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단다. 광부들의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기 때문이리라.

“내가 조심을 해야지. 하여튼 여기 광업소 다닐라면 가정이 안정이 돼야 돼. 그래야 아무 사고가 안나고 아, 일 나가면 내가 죽어 나가냐 살아 나오냐 이런 환경이어갖고, 갱내에서 일하는 사람은 이렇게 돼아 있어. 항상 그런 마음으로 들어갔제”

[광부들의 아픔, 진폐증]

정종근 씨는 광부 생활을 하면서 진폐증 진단을 받아 장애인이 되었다. 폐가 안좋아진 것은 21년 전부터인데, 매달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고 약도 잘 먹어서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이라고 한다. 물론 심할 때는 입원도 하지만, 그래도 심한 진폐증으로 먼저 죽은 동료들과 비교하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하면서 잠시 하늘로 눈길을 준다.

“우리하고 같이 근무한 사람들 중 다 죽어 불고 없어. 글고 돈 번 사람들은 모도 광주로 서울로 가불고. 나는 돈도 못벌고 그러니까 여기서 살지. 하하하.”

진폐증으로 숨이 차서 등산은 못하지만 아침마다 마을을 도는 것으로 건강 관리를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는, 이따금 병원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 술 한 잔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고 사신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계시는 할아버지는 다들 떠나고 없는 이곳 천운장 마을이 그래도 아직은 살기가 좋은 곳이란다.

“옛날에 여기가 광업소 마을이라고 해가지고 참, 괜찮았어. 인자 벌어먹고 살기는. 그래서 여기가 이렇게 되아불고 폐광되다시피 되고 그래서 인자 여기가 안좋지. 그러나 아직은 이 마을이 살기는 좋아.”

[정보제공]

  • •  정종근(남, 1933년생,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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