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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와의 아름다운 이별, 「상엿소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C020104
한자 亡者-離別-喪輿-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옥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상엿소리」 배운 시기 1980년대 중반 - 마을의 젊은이들이 「상엿소리」를 잘하는 김종택 할아버지를 마을회관에 모셔놓고 「상엿소리」를 배웠다.
최근에 나간 상여나간 시기 2012년 봄 - 흘미댁 할머니가 돌아가신 2012년 봄에 「상여 소리」를 하며 상여가 나갔다.
마을지 옛마을회관자리였던 농산물가공공장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마을지 목상여를 보관하던 덤밭굴재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대밑에 뒷산 덤밭둘재
마을지 상여나갈 때 거릿제를 지내는 마을회관 옆 공터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상엿소리가 이어지는 마을]

근래에는 초상이 나면 주로 장례식장에서 상장례를 치루기 때문에 점차 전통적인 상여와 「상엿소리」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도장 마을에서는 여전히 마을 「상엿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2012년 봄, 흘미댁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도장 마을에서는 꽃상여가 나가고 「상엿소리」가 불려졌다.

마을 「상엿소리」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80년대 중반에 조직된 도장 농우회 회원들은 일찍이 마을 민속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그들은 할머니들에게서 밭노래를 수집하고 할아버지들에게서는 논농사를 지을 때 부르는 들소리와 「상엿소리」를 수집을 했다.

도장 농우회 회원들은 「상엿소리」는 미래에도 꼭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1985년부터 목청이 좋고 소리를 잘했던 김종택 씨를 마을 회관에 모셔놓고 소리를 배웠다.

만약 그때 「상엿소리」를 배워두지 않았더라면 몇 년 전에 눈을 감으신 김종택 씨와 함께 도장 마을 「상엿소리」리도 자취를 감출 뻔 했다. 하지만 고인이 되신 김종택 씨가 부르던 「상엿소리」를 이제는 마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김천호 씨가 이어서 부르고 있어 도장 마을의 「상엿소리」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같은 「상엿소리」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타고난 목성이 다르고 살아온 인생이 다르므로 누가 부르냐에 따라 분위기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상엿소리」의 곡조와 가사는 동일하다는 차원에서 도장 마을의 「상엿소리」는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장 마을 「상엿소리」]

도장 마을 「상엿소리」는 순서에 따라 노래가 달라진다. 출관 후 마당을 돌면서 하는 소리와 상여를 매면서 하는 소리, 사립문 밖으로 나가면서 하는 소리, 거릿제를 지내러 가면서 하는 소리, 장지로 이동하면서 하는 소리, 산비탈을 오르면서 하는 소리, 무덤을 파면서 하는 소리 등으로 분화되어 있다.

[출관 후 마당을 돌면서]

나무애미타불 / 관세음보살

나무애미타불 / 관세음보살

나무애미타불 / 관세음보살

[상여를 매면서]

가남-한보살 / 가남-한보살

어허허 어허허 어이 엊그제까지 지겠던 양반이 북망산천이 웬말이오

보호오-오살/ 가남-한보살

어허허 어허허허 간다 간다 나는 간다 고향산천을 바리고 북망산천으로 나는 간다

보호오-살/ 가남-한보살

[사립문밖으로 나가면서]

어허널 어허널 어나리 넘자 너화널

못 가것네 내 못 가것네 차마 설우와 어허널

어허널 어허널 어나리 넘자 너화널

올라가네 올라를 간다 준령태산을 어허널

어허널 어허널 어나리 넘자 너화널

[거릿제를 지내러 가면서]

허 어허허 에에야 어허리 넘저 너화널

잘도 허네 다 잘도 허어네 우리나 계원들 어화널

허 어허허 에에야 어허리 넘저 너화널

북망산천이 머다고 허더니 문턱밑이나 어허널

허 어허허 에에야 어허리 넘저 너화널

[거릿제를 지내고 나서 장지로 가면서]

너화 너화 너화 넘자 어이가리 넘자 너화널

동네 어러신들 안냥히들 계시시오 질이 달라서 어허널

너화 너화 너화 넘자 어이가리 넘자 너화널

노다 가세 노다나 가세 경치 존디서 어허널

너화 너화 너화 넘자 어이가리 넘자 너화널

곱게 모시소 곱게를 모시소 우리나 유대군들 어허널

너화 너화 너화 넘자 어이가리 넘자 너화널

[산비탈을 올라가면서]

어널 / 어널

밀어라 당거라 / 어널

잘헌다 당거라 / 어널

곱게 모셔라 / 어널

조심 조심 / 어널

다왔다 당거라 / 어널

[흙을 파면서]

어럴럴럴 상사도야 / 어럴럴럴 상사도야

잘도 허네 잘도 허네 / 어럴럴럴 상사도야

우리나 유대군 잘도 허네 / 어럴럴럴 상사도야

한 삽 뜨고 두 삽 뜨고 / 어럴럴럴 상사도야”

[덤밭골에 있던 도장 마을 상엿집]

도장 마을은 마을 전체적으로 운영하는 상포계가 있었다. 초상이 나면 상포계 회원들이 상갓집에 모여 장례 절차를 도와준다. 장례 절차상 미리 마련해둔 삼베로 수의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었다. 일부 어른들은 상여를 만드는 일을 담당했다. 예전에는 마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목상여가 있었다. 목상여는 사용 후에는 덤밭굴에 있는 상엿집에 보관했다. 아이들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왠지 무서워서 빠른 걸음으로 지났다고 한다. 후대로 가면서 점차 목상여 대신 꽃상여를 만들거나 구입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상엿집은 자취를 감추었다.

상여 나가기 하루 전에는 유대군들이 상갓집에서 밤을 보내며 상여 어우르기를 했다. 빈 상여를 들고 마당을 돌면서 「상엿소리」를 한다. 그러면 상주들이 상여를 따르면서 곡을 한다. 정말로 상여가 나가는 것과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초경, 이경, 삼경까지 울려야 상여 어우르기가 끝이 났다. 「상엿소리」를 잘 했던 김종택 씨는 일부러 슬픈 사설을 읊어서 상주들을 울리기도 했다.

“울릴라고 하믄, 못 먹고 가서 불쌍하다 하믄 자연히 눈물이 나와, 처량하니 가사를 주워생기면[만들어서 부르면] 눈물이 나와.”(김범순)

고인을 떠올리게 하는 사설을 하면 상주들은 울음을 참지 못한다. 특히 고인이 고생한 사연이나 굶주렸던 사연을 사설로 읊어내면 상주들의 곡소리는 더욱더 커진다. 「상엿소리」를 하는 사람이 그 집안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사설이 나오는 것이다.

도장 마을의 운상 절차는 다른 마을과 유사하다. 출관 전에 방안에서 제를 지내고 마당에서 고별제를 지낸다. 그리고 마을 회관 옆에서 거릿제를 지낸 후 장지로 출발한다. 장지로 가는 도중에 중간 중간 노제를 지낸다. 장지에서는 산신제, 개토제, 성분제, 평토제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면 반혼제를 모신다. 삼일 만에 삼우제를 지낸 후 3년 동안 상식을 한다. 지금은 같은 해에 탈상을 해버리기 때문에 3년 탈상은 하지 않는다.

[슬픈 감회를 적어 상주를 위로하는 애감록]

도장 마을에서 초상이 나면 고인과의 친분에 따라 부조를 했다. 돈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집에서 기른 콩나물을 부조하기도 하고 동지팥죽을 쑤어서 갖다 주기도 하는 등 형편에 따라 달랐다. 동지팥죽은 가까운 집안사람이 하는 것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상주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돈이나 현물로 부조를 하지 못한 경우에는 애감록을 쓰는 것으로 부조를 대신했다. 김범순 씨는 조부의 애감록을 기억하고 있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거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돈을 안 갖고 오면 찾아와서 위로하고 상주 만나서 인사드려야 할 것 아니여. 그럴 때는 애감록에다 기록을 해. 나는 조부님의 애감록이 있었는데 집을 다 새로 짓고 하니까 다 어디로 가버렸어.”(김범순)

나이가 더 많으신 김종옥 씨는 직접 애감록을 작성한 경험을 갖고 있다. 부조할 물질이 없어도 감회를 적는 애감록을 통해 슬픔을 함께 나누고 상을 당한 가족들을 위로했던 것이다.

[정보제공]

  • •  김범순(남, 1938년생, 도장골 밭노래 한마당 축제 위원장)
  • •  김종옥(남, 1924년생,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주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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