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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다 베틀 걸고 구름잡어 잉애 걸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C030205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미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근대 1930년 - 김재님이 전남 화순군 춘양면에서 출생
근대 1944년 - 김재님이 전남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로 시집오다

[다래가 주렁주렁 열리고 목화꽃이 좋게 피는 구월이 되면]

현대인들은 누구나 공장에서 만들어진 옷을 사서 입지만, 직접 베를 짜서 옷을 만들어 입던 시절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일도 아닌데 마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 같다. 지금 70대 이상의 도장 마을 아낙네들도 젊은 시절에는 베를 짜서 옷을 해 입었다. 2013년 을 쇠면 여든두 살이 되는 ‘가네댁’ 김재님 씨도 그랬다.

“다래가 주렁주렁 열리고 목화꽃이 좋게 피는 9월이 되면 그것이 필라고 빵긋빵긋 그놈이 피네. 그것이 박속같이 곱게 피면 따. 그놈을 따서, 미처 못따면 밤에 가서 또 따. 그놈을 떨어서 발에 널어놓고, 그때는 기계가 없을 때라 ‘씨앗이[솜 속에 있는 씨앗을 뽑아내는 도구]’로 돌리면서 목화씨를 빼내. 그러면 구름덩이같이 목화솜이 이쪽으로 넘어서 와. 지금은 기계가 있어. 그런 다음 쑤시대로 고치를 좋게 말아. 잘 해놓으면 보기도 좋고, 모냥 없이 몰면 미영잣기도 사나와. 그래갖고 딱 싸싸서 놔두면 보기도 좋아. 그래서 품앗이로 해서 미영을 자솨. 큰 방 하나에 우 아래로 여섯이서 한디, 작은 방에는 네 명도 해. 그러고 해서 베를 놔서 폴아 먹었어.”

할머니에게 베 짜는 방법을 물으니, 만들어진 옷을 사서 입는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도 말이 너무나 ‘빵긋빵긋’하니 예쁘다. 그러면서도 베를 짜면서 했던 고생이 생각나 징글징글하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콩밭도 두 번만 매면 되는데, 미영씨를 뿌린 미영밭은 다섯 번을 매야 미영을 땄으니, 그 이쁜 목화꽃 보기가 간단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도 씨앗을 빼고 솜을 타고 고치를 말고 실을 타서 베를 짜야하니 말이다.

[베도 징하니도 짜고 가마니도 징하니도 짰네]

마을에서 베를 잘 짜기로 소문이 난 가네댁 김재님 씨는 올해 84세로, 1930년에 화순군 춘양면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살 먹어서 당시 일제에 의한 ‘처녀 공출’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도장리로 시집왔다. 당시 신랑은 22세였다. 시집을 오고 보니 시댁이 어찌나 가난한지 고생을 말도 못하게 했단다.

“그때 징허니 고상했제. 짚 뚜드러서 가마니 짰제, 베 놨제. 그때는 시어머니도 재갰어(계셨어). 나무해서 땔라, 징했네 나. 나무도 없었어 그때는.”

그때 도장 마을은 논 다섯 마지기만 있어도 부자 소리 듣는 가난한 마을이었는데, 김재님 씨네는 논 한마지기도 없는 그야말로 ‘없는 집’이었단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베를 짜고 가마니를 짰단다. 시어머니한테 베 짜는 법을 배우고는, 매일 아침 베틀에 앉아서 해질 때까지 하루에 스무 자 한 필씩은 꼭 끊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짠 베는 능주장이나 남평장에 이고 가서 팔았다. 가까운 능주장에는 열다섯 필을 이고 가고, 남평장에는 열 필을 이고 갔다. 말이 쉽지 능주장은 이십리 길이고 남평장은 삼십리 길이니 녹녹치 않은 길이었으리라.

[베짜는 아가씨 베틀노래 사랑노래]

“베틀노래를 내가 잘했는데 [지금은] 암것도 몰라. 저, 베틀노래.... ‘베짜는 아가씨 베틀노래 사랑노래...’ 오매 이름을 모르겄다, 모르겄다. 내가 참 잘 했는디...”

베 짜면서 불렀던 노래 하나만 불러줄 것을 부탁하자, 손사래를 치면서도 힘겹게 기억을 더듬어 베틀노래 한 자리 해주고자 하는 김재님 씨. 계속해서 할머니의 입에서만 뱅뱅 도는 노래를 옆에 앉은 할머니들이 거들어주신 덕에 간신히 조그맣게 흘러나오는 베틀노래 한 자리를 들어볼 수 있었다.

“하늘에다 베틀 놓고 구름잡어 잉애 걸고

어그랑 따그랑 짜는 베~~

어서 짜서 우리님 와이사쓰나 지어나 보세”

[질쌈 가마니 안한께 이러고 좋은디, 인자 늙어부렀소]

“우리가 길쌈을 서른 몇 살까지 했을까? 우리가 한 서른, 오십, 육십 넘어서까지 했을 것이오.”

베틀을 언제 없앴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대뜸 다른 할머니들에게 언제까지 베를 짰는지를 물으셨다. 지금의 가네댁 할머니의 나이로 되짚어보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베틀을 없앴다는 의미리라.

“베틀은 어서 없애부렀어, 부애[화]가 나길래. 바로 부셔버렸어. 그놈 안해도 살 것 같은께 불을 때서 버렸어. 내가 질쌈은 아조 잘하제. 근디 질쌈하고 가마니 안한께 이러고나 좋은디, 안늙을 줄 알았는데 이러고 늙어부렀소.”

할머니 소망대로 이제는 베와 가마니를 짜지 않아도 먹고 살만해졌다. 매일 마을 회관에 나와 마을 아낙네들과 점심밥도 해먹으면서 실컷 놀다가 저녁이면 집에 가신다고 하니 살만한 삶인 것이다. 그저 이제는 늙어버린 세월이 야속할 뿐이다.

[정보제공]

  • •  김재님(여, 1930년생,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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