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순 출신 조선 후기 실학자 하백원이 ‘가득 참을 경계하는’ 의미를 담아 만든 술잔. 계영배(戒盈杯)는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잔의 일정한 수위를 넘으면 술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잔 내부에 있는 기둥 안에는 말굽 모양의 관이 있고, 그 기둥 밑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만약 잔의 70% 이상을 채우면 액체가 전부 밑으로 흘러나간다...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있는 조선 후기 최후헌이 지은 누정. 고사정은 숙종 4년(1678)에 최후헌(崔後憲)[?~?]이 부친 최홍우(崔弘宇)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누정이다. 최홍우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이름이 높은 최경장(崔慶長)의 아들이자 일휴당(日休堂) 최경회(崔慶會)의 조카이다. 고사정은 화순읍 상삼내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화순군 화순읍 상삼...
-
19세기에 제작된 『광여도』에 있는 화순 능주 지역의 지도. 19세기 전반에 걸쳐 제작된 전국 군현 지도집인 『광여도』의 전체 구성은 『해동지도』와 유사하다. 『광여도』에는 세계 지도, 외국 지도, 요계관방도, 조선 전도 뒤로 각 도별 지도와 군현 지도들이 수록되어 있다. 경기도 1책, 충청도 2책, 전라도 3책, 경상좌도 4책, 경상우도 5책, 평안도 6책, 황해도 6...
-
19세기에 제작된 『광여도』에 있는 화순 동복 지역의 지도. 19세기 전반에 걸쳐 제작된 전국 군현 지도집인 『광여도』의 전체 구성은 『해동지도』와 유사하다. 『광여도』에는 세계 지도, 외국 지도, 요계관방도, 조선 전도 뒤로 각 도별 지도 와 군현 지도들이 수록되어 있다. 경기도 1책, 충청도 2책, 전라도 3책, 경상좌도 4책, 경상우도 5책, 평안도 6책, 황해도...
-
19세기에 제작된 『광여도』에 있는 화순 지역의 지도. 『광여도』에는 세계 지도, 외국 지도, 요계관방도, 조선 전도 뒤로 각 도별 지도 와 군현 지도들이 수록되어 있다. 경기도 1책, 충청도 2책, 전라도 3책, 경상좌도 4책, 경상우도 5책, 평안도 6책, 황해도 6책, 강원도 7책, 함경도 7책 등 총 1~7책에 걸쳐 도지도와 군현 지도, 그리고 주요 군사적 요충지...
-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문식(文植), 호는 송간(松澗). 오봉(鰲峰) 구두남(具斗南)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구본의(具本誼)이다. 어머니는 흥덕 장씨(興德張氏) 장창(張昶)의 딸이며 부인은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영습(文永習)의 딸이다. 생부는 구본극(具本極)이다. 구문모(具文謨)[1844~1918]는 8세에 서당에 취학하였고, 문리가 조금...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에 있는 구암정을 짓고 문사신이 읊은 한시. 한시 「구암정을 짓고서」의 작가 문사신(文思臣)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출신으로, 본관은 남평, 자는 태수(台叟), 호는 구암(龜巖)이다.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민묵재(敏黙齋) 문계상(文繼相)이다. 시의 배경 정자인 구암정은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 호동에 있다. ‘구암...
-
1592년 7월부터 8월 사이에 화순 지역 출신을 비롯한 의병이 참여하여 충청도 금산에서 왜군과 싸운 전투. 금산성 전투는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조헌(趙憲)[1544~1592]이 지휘한 의병 부대 및 곽영(郭嶸)[?~?]이 지휘한 관군과 왜군 사이에 일어났다. 고경명 등이 왜군과 대적할 때 능성현 출신 문홍헌(文弘獻)은 동향의 구희(具喜)[...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김응옥(金應玉)의 아들이다. 김규문(金奎文)[?~?]은 1876년(고종 13) 흉년 때 혼자서 화순현의 전세(田稅)와 포량(砲粮), 잡비를 합하여 쌀 471석과 콩 229석을 모두 대신 납부하였다. 이러한 행적이 널리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1878년 김규문에게 사천 현감을 제수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학노. 호는 산북. 아버지는 김진옥이다. 김기태(金冀泰)[?~?]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며 정의림, 김인기와 교유한 인물로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의병장. 순천부(順天府) 출신이며, 집안이 본디 미천하여 어려서 중이 되었다가 중년에 머리를 기르고 환속(還俗)한 후 무과(武科)에 올랐다. 김대인(金大仁)[?~?]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막하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신임을 받았다. 그 후 원균 휘하에 있었으며, 정유재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예성산성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김대...
-
조선 후기 화순에서 생을 마감한 방랑 시인.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심(性深), 별호는 난고(蘭皐), 호는 김립(金笠)·김삿갓이다. 할아버지는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항복한 선천 부사(宣川府使) 김익순(金益淳)이다. 김병연(金炳淵)[1807~1863]은 6세였을 때 하인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을 받아 형 김병하(金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화백(華伯), 호는 송은(松隱).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했던 김인갑(金仁甲)이고, 어머니는 전주 이씨이며 부인은 광산 노씨(光山 盧氏) 진사(進士) 노백붕(盧百朋)의 딸이다. 김시엽(金時燁)[1589~1637]은 1621년(광해군 13)에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16...
-
조선 후기 이괄의 난 진압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명진(明眞), 호는 월포(月圃). 아버지는 참의(參議) 김극복(金克福)이다. 의병 활동을 함께 했던 김완(金完)은 재종형(再從兄)이다. 김식(金湜)[?~?]은 1582년(선조 15)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1624년(인조 2)에 발생한 이괄의 난 때 창의(倡義)하여...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춘경(春卿) 또는 춘유(春逾)이고, 호는 오재(梧齋)이다. 아버지는 현감(縣監) 김조언(金朝彦)이고, 어머니는 절강 편씨(浙江片氏)이며, 부인은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김인갑(金仁甲)[1564~1593]은 1579년(선조 12)에 무과에 급제하여 주부(主簿), 도사(都事)를 거쳐 1591년 훈련원(訓練院) 판관...
-
조선 후기 병인양요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형(泰亨), 호는 산남(山南). 김인기(金仁基)[?~?]는 1866년(고종 3)에 발생한 병인양요 때 같은 고을의 유생(儒生)인 홍기주(洪璣周), 김종룡(金鍾龍), 김종천(金鍾天), 김종문(金鍾文), 윤학모(尹學模) 등 약 200여 명과 함께 현재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 가승동에서 창의할 것을...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서남(瑞南). 사헌부 집의(執義)를 지낸 김정(金禎)의 후손이다. 김재수(金在洙)[?~?]는 타고난 품성이 순박하고 지기(志氣)가 고결하여 일찍이 문리에 밝아 경전과 역사서를 두루 섭렵했다. 만년에는 서석산(瑞石山)[무등산 별칭] 아래 동면(東面) 청궁리(靑弓里)에 은거하여 부귀현달(富貴顯達)을 구하지 않고 소...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진주. 자는 맹경(孟警), 호는 백파(白波). 김시춘(金始春)의 손자이고, 수락재 김응복(金應福)의 아들이다. 김재탁(金再鐸)[1776~1846]은 효성이 깊어 부모의 상에 몸소 시묘(侍墓)를 하였다. 어려서 남애(南厓) 정지로(鄭至老)에게 배우고, 1827년(순조 27)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온면당(穩眠堂)을 중건하여...
-
조선 후기 화순 도장 마을에 입향한 진주 김씨 입향조. 본관은 진주. 자는 자주, 호는 태산. 진양부원군 김무진의 후예로 아버지는 김홍헌이다. 김철완(金鐵完)[1606~?]은 1636년 병자호란을 피하여 화순군 도장 마을에 입향하였다. 병자호란 때에 이제와 함께 창의하였고, 그 공을 높이 산 관찰사가 천거하여 금천 찰방을 제수하였다. 전라남도 나주 왕곡 신포리, 매산 등...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반계(盤溪). 충의공(忠毅公) 김문기(金文起)의 12세손이고, 덕준(德俊)의 아들이다. 김학린(金學隣)[?~?]은 성품이 순수하였고, 아우 김성린(金聖麟), 김벽린(金堛麟), 김필린(金弼麟), 김명린(金命麟), 김수린(金壽麟)과 함께 어버이를 효성으로 봉양하였다. 머리카락을 팔아 쌀을 구해 정성으로 모셨다. 어...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선행인.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찬(聖贊). 감역(監役) 김정식(金廷植)과 자오재(子梧齋) 김인갑(金仁甲)의 후손이다. 김현리(金顯履)[?~?]는 타고난 성품이 관대하며 과묵(寡黙)하고 기개(氣槪)와 도량(度量)이 장대했다. 성품이 너그럽고 덕이 있어 베푸는 것을 좋아하여, 매번 흉년에 많은 곡식을 내어 빈곤한 사람을 구제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창서(昌瑞), 호는 부암(浮庵). 금호(錦湖) 나사침(羅士沈)의 후손이다. 나경(羅炅)[?~?]은 화순 출신으로, 일찍이 집안의 가르침을 받아 재주가 뛰어났고, 편안하고 고요히 분수를 지키며, 안빈 낙도 하였다. 『대학(大學)』의 「명명덕(明明德)」과 『중용(中庸)』의 「구경지도(九經之道)」에 관한 저술을 하였고,...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실학자.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중집(仲集), 호는 석당(石塘). 이조 참판 나빈(羅彬)의 8세손이요, 나무계(羅茂桂)의 현손이며 생부는 나재우(羅載祐)로 나재홍(羅載弘)에 입양하였다. 나경적(羅景績)[1690~1762]은 효우가 지극하고 학식이 고명했으며 친족을 화목하게 대하여 향리에서 칭송을 받았다. 김창흡(金昌翕)·조정만(趙正萬)과 시를...
-
조선 후기 화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수부(秀夫), 호는 창주(滄洲). 참판 나빈(羅彬)의 후손으로, 나세집(羅世緝)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나율(羅慄)이고, 아버지는 증 장악원 정(贈掌樂院正) 나덕용(羅德用)이다. 어머니는 홍주 송씨(洪州 宋氏) 송정순(宋庭筍)의 딸이고, 부인은 정붕(丁鵬)의 딸과 이영선(李榮先)의 딸이다. 담양 대곡에서 태어났으며,...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화여(和汝), 호는 송호(松湖). 실학자 석당(石塘) 나경적(羅景績)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나득문(羅得文)이고, 어머니는 창녕 조씨(昌寧曺氏) 후건(後建)의 딸이다. 나상근(羅祥根)[1777~1850]은 학식이 넓고 문행(文行)을 겸비하였다. 가학을 계승하여 자명종(自鳴鐘)과 자전 수차(自轉水車)를 속수(續修)하였...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지월리 지장 마을에 있는 낙오정을 짓고 박준관이 읊은 한시. 한시 「낙오정을 짓고서」의 작가 박준관(朴準觀)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출신으로, 본관은 밀양, 자는 경중(敬仲), 호는 오봉(五峯)이다. 아버지는 벽당(碧堂) 박후진(朴厚鎭)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문인인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
조선 후기 열녀. 전라도 장수군 출생으로 최경회의 부실인 논개는 임진왜란에 최경회가 진주성에서 순절하자 촉석루에서 전승 잔치를 벌이던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로 몸을 던졌다. 본관은 신안(新安). 진사(進士) 주달문(朱達文)의 딸이다. 논개(論介)[1574~1593]는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고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13세에 부친을 잃고 모녀가 숙부인 주달무(朱達...
-
1702년(숙종 28)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지역 진사(進士) 구삼익이 을묘왜변 때 순절한 달량 권관(達梁權管) 조현(曺顯)[?~1555]의 정려를 요청한 일. 조현은 1555년(명종 10) 5월 왜구가 70여 척의 선박을 타고 와서 을묘왜변을 일으켰을 때, 진압에 나섰다가 전사한 무신(武臣)이다. 그의 사후 조정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 포상을 실시하였는데, 능주 지역 출...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에 있던 담락정에서 민정락이 읊은 한시. 한시 「담락정에서」의 작가 민정락(閔挺洛)의 본관은 여흥, 자는 함여(涵汝), 호는 죽헌(竹軒)이다. 그의 생몰 연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민정락을 비롯한 형제들이 섬촌(蟾村) 민우수(閔遇洙)[1694~1756]와 도암(陶庵) 이재(李縡)[1680~1746]의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기록을 통해 17...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대리 칠충각(大里七忠閣)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화순에서 의거한 평택 임씨 7형제의 충절을 기려 1876년(고종 13)에 세운 정려이다. 7형제의 이름은 임시계, 임시태, 임시민, 임시운, 임시준, 임시익, 임시약이다. 이들은 화순 의병들과 함께 청주까지 진군하였으나 인조 임금이 청의 태종에...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도원 서원은 동복 고을과 연고를 맺고 유학 진흥에 크게 기여했던 최산두, 임억령, 정구, 안방준 등 네 분을 모신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도원 서원은 화순군 동복면 연곡길 137에 위치하고 있다. 동복면 월송 마을 가운데를 지나 뒤편 길을 따라 가면 서원이 있다. 도원 서원은 동복 고...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서 김병연이 읊은 한시. 한시 「동복 여소」의 작가 김병연(金炳淵)[1807~1863]은 김삿갓으로 불리는 조선 후기의 유명한 방랑 시인이다. 김병연은 전국을 방랑하다 57세의 나이로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에서 사망하였고, 강원도 영월에 묻혔다. 그가 머물렀던 화순군 적벽 물염정 근처에 현재 김삿갓의 석상과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동복 여소」도 시...
-
1597년 정유재란 때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동복 적벽에서 박광전(朴光前) 등이 의병을 이끌고 왜군에 맞서 항전을 벌인 전투. 화순 지역을 비롯한 전라도 일대는 정유재란 때에 극심한 피해를 당하였다. 호남은 임진왜란 때만 해도 왜적의 침범을 피하였으나, 정유재란 때는 초토화되고 말았다. 화순 지역에 왜군이 침입한 것은 1597년 7월 말부터이며 왜군은 전라남도 순천 지역...
-
1655년 동복현의 연전패(延殿牌)가 불타버린 사건. 전패(殿牌)는 조선 시대 지방 객사에 ‘전(殿)’자를 새겨서 세운 나무 패이다. 이는 왕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지방에 출장을 간 관원이나 수령은 전패에 배례하였다. 만약 이 패를 훼손하거나 모독한다면 왕에 대한 불경으로 간주하여 본인과 수령 및 고을이 처벌을 받았다. 1655년(효종 6) 동복현에서 연전패(延殿牌)가 타 버려 그...
-
1615년 전라남도 화순 지역 동복현에서 난을 일으킨 정순기(鄭順己)를 효수한 사건. 정순기(鄭順己)가 난을 일으킨 배경에 대해서는 해당 사료가 부족하여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다. 정순기가 효수에 처해진 후 동복의 호장(戶長) 오언복(吳彦福) 등이 보름 후에 패거리를 이루어 난을 일으켜서 읍내 30여 집이 놀라 흩어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광해군일기...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의 만연사에 있는 조선 후기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 「만연사 괘불탱」은 1793년에 조성되어 만연사에서 행해진 각종 야외 법회에 사용되었다. 괘불함(掛佛函)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길이 674㎝, 너비 34㎝, 높이 31㎝로 대웅전 뒤편에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계단 앞에는 괘불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조 괘불대(石造...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 만연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동 범종. 불교에서 종교적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소리 내는 일체의 용구를 범음구(梵音具)라고 한다. 그중 종은 당외(堂外)의 종루에 걸어 놓고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타악기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는 청정한 불사(佛寺)나 범찰(梵刹)에서 사용하는 종을 범종이라고 한다. 만연사 범종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있는 조선 후기 적송 정지준이 경영했던 누정. 현재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 산 111-1 앞산에 위치해 있다. 원래는 적벽을 마주하는 강의 둔덕에 있었으나 동복댐이 들어서면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지금의 자리로 이건한 것이다. 망미정(望美亭)은 정지준(丁之雋)[1592~1663]이 건립하였는데, 적벽 앞에서 적벽을 마주보고 있던 정자였기...
-
조선 후기 정유재란 때 주인을 따라 죽은 화순 출신의 충노(忠奴). 목산(木山)[?~?]은 하대붕(河大鵬)의 노(奴)이다. 정유재란 때 하대붕의 부인인 오씨(吳氏)가 하대붕이 왜병에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잘못 전해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목산은 “외주(外主)는 피로(被擄)되었고, 내주(內主)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내 어찌 혼자 살겠는가.”하고 주인을 따라...
-
조선 후기 하백원의 7폭 매화 그림과 소장자 선대의 유묵(遺墨) 1폭이 함께 표구된 8폭 병풍.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출신 실학자 규남 하백원이 그린 매화 그림이다. 하백원의 후손에게 전해 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종이에 수묵을 사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매화 줄기와 꽃송이를 능숙하고 유려한 필치로 그렸다. 병풍 그림 한 폭의 크기는 28.5×97.5㎝이며 총...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남평(南平), 자(字)는 성화(聖和), 호(號)는 둔계(遯溪).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문사신(文思臣)이다. 문명규(文命圭)[?~?]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었다. 어버이가 병이 나니 천태산에서 약을 찾아다니다 산삼을 얻었다. 기뻐하며 부모님께 드리니 묵은 병이 즉시 나았다. 부모의 상(喪)을 당하고 묘 곁에 움막을...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순절한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공옥(攻玉), 호는 죽계(竹溪). 충선공(忠宣公)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 문효원(文孝元)이고, 아버지는 생원 문윤승(文允承)이며, 어머니는 진주 하씨이다. 문석생(文石生)[1601~1636]은 지용(智勇)과 기우가 남달리 뛰어났으며, 일찍부터 무예에 관심이 많았...
-
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성화(聖化).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예로 증 공조 판서 문이망(文以望)의 아들이다. 문세인(文世仁)[?~?]은 품성(稟性)이 온후(溫厚)하며 나이 90이 넘었음에도 강장무양(康壯無恙)하니 영조 조에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제수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국노(國老), 호는 삼계(三溪).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문덕망(文德望)이다. 문세정(文世禎)[1638~1708]은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천품이 청수하고 재예가 총민하였으며, 문장을 일삼지 않고, 성리학에 잠심하여 연구함에 조예가 깊었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숙종...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자공(子恭), 호는 해은(海隱).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문홍수(文弘受)이다. 문제극(文悌克)[?~?]은 안방준(安邦俊)의 문인(門人)으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안방준의 휘하에 종군하여 큰 도움을 주었다. 여산(礪山)에 이르렀을 때 강화(講和)되었다는...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여징(汝徵), 호는 경암(敬菴)·송계(松溪). 충숙공(忠肅公)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문검(文儉)이고, 어머니는 청주 한씨로 예조 판서(禮曹判書) 한엽(韓曄)의 딸이다. 문홍헌(文弘獻)[1551~1593]은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여즙(汝楫), 호는 칙이당(則以堂). 집의(執義) 민회삼(閔懷蔘)의 후예이다. 민백희(閔百爔)의 손자이고 병조참판 민주현(閔冑顯)의 아들이다. 민부(閔埠)[1845~?]는 가학을 계승하여 학문에 뛰어났고 문장에도 능하였다. 1876년(고종 13)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내려오는 길에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의...
-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몽뢰(夢賚), 호는 사월헌(沙月軒). 집의(執義) 민회참(閔懷參)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사복시 정(司僕寺正) 민제익(閔濟益)이다. 민상동(閔相東)은 재주가 뛰어나고 지혜가 총명하여 향시에 열 번 합격하여 문장으로 지역에 알려졌다. 죽은 뒤 학행이 빼어나다고 하여 도신의 계로 1869년(고종 6) 동몽 교관으로 제수하였...
-
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회백(晦伯), 호는 삼금당(三錦堂),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문경공(文景公) 민영모(閔令謨)와 민회삼(閔懷參)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민담령(閔聃齡)이며, 아버지는 민준경(閔俊慶)이고, 어머니는 함안 박씨(咸安朴氏)이다. 민제장(閔濟章)[1671~1729]은 민정중(閔鼎重)의 문인...
-
조선 후기 화순 동복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치교(穉敎), 호는 사애(沙厓). 집의 민회삼(閔懷參)의 후손이며, 승지(承旨) 민사종(閔嗣宗)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증 참판(參判) 민백희(閔白燨)이다. 어머니는 울산 김씨(蔚山金氏) 김방엽(金邦燁)의 딸이며 부인은 제주 양씨(濟州梁氏) 양호영(梁灝永)의 딸이다. 민주현(閔冑顯)[1808~1882]은 천품...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원노(元老), 호는 월파(月坡). 의암(義庵) 민회삼(閔懷參)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사헌부 집의를 지낸 민여관(閔汝寬)이다. 민팽령(閔彭齡)[?~?]은 1636년(인조 14)에 발발한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남한산성에 가 왕을 지키려다가 강화했다는 소식을 듣자 통곡하며 고향으로 돌아와 두문불출하다가 죽었다....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한계리에 있는 조선 시대 부농의 가옥. 박병옥 가옥은 한천 마을 입향조 박유(朴瀏)[1627~1675]의 아들인 박헌가가 건립한 가옥이다. 함양 박씨 박유는 1658년경 보성군 미력면 반룡 마을에서 처가인 이곳 한천 마을에 정착하였고 지금도 이 마을에는 그의 많은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현 소유자 박병옥은 박헌가의 9대손이다....
-
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명여(明汝), 호는 죽계(竹溪). 모봉(茅峯) 박지수(朴枝樹)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박태빈(朴泰彬)이다. 박상철(朴尙喆)[?~?]은 『손자 병법(孫子兵法)』과 『오자 병법(吳子兵法)』을 습득하였다고 한다. 1728년(영조 4)에 발생한 무신난(戊申亂)[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모집하여 난을...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유석(類碩), 호는 무사재(無邪齋)·관수재(觀水齋). 박영주(朴永柱)[1803~1874]는 한평생 가난하였고 세 아들이 앞서 죽어 불우하였다. 그러나 학문은 고명하고 실천이 독실하였으며 의리(義理)를 매우 치밀하게 분별하였다. 일찍이 송치규(宋穉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송치규는 늘 “나를 일깨워 주는 사람”이...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무관.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치삼(致三), 호는 취우당(醉愚堂). 모봉(茅峰) 박지수(朴枝樹)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해진(朴海鎭)이다. 박종규(朴鍾圭)[?~?]는 풍채가 뛰어났으며,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았다. 고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 병마우후(全羅兵馬虞候)에 제수되었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성지(聖至), 호는 활효재(活孝齋). 청백리 박수지(朴遂智)의 후손이고, 보성에서 능주로 이거한 박류(朴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태함(朴泰咸)이고, 아버지는 박사신(朴思愼)이며, 어머니는 광산 김씨(光山金氏) 김광연(金光淵)의 딸이다. 박헌가(朴獻可)[1713~1772]는 천성이 순효(純孝)하여 아버지가...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유선(由善), 호는 후송(後松). 충간공(忠簡公) 배문우(裵文祐)의 후예이고, 아버지는 참봉 배윤덕(裵允德)이다. 배경생(裵慶生)[?~?]은 기골(氣骨)이 크고 재주가 명민하였다.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의리(義理)를 강구하였다. 1618년(광해군 10)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1624년(인조...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대구(大邱). 자는 재이(載而), 호는 제강(霽江). 교관 배상진(裵尙紾)의 후손으로, 배우(裵瑀)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배찬선(裵纘先)이며, 아버지는 배광진(裵光震), 어머니는 오정숙(吳廷肅)의 딸이다. 배경후(裵慶垕)[1680~?]는 효도하고 우애함이 독실하였으며, 종족과 인척을 구휼하였고, 홀로 있을 때에도 여럿이 있는 것과...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여옥(如玉), 호는 천은(川隱). 충간공(忠簡公) 배문우(裴文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배수철(裴壽鐵)이고 아버지는 배응인(裴應絪)이다. 배구(裵玖)[1569~1640]는 사림의 천거로 사옹원 참봉을 제수받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인조 14)에 조수성(曺守誠)과 함께 창의하여 화순 지역에서 병사 50여명...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으로 호조 참판으로 증직된 인물 본관은 달성. 자는 형택(亨澤), 호는 계당(桂堂). 충간공(忠簡公) 배문우(裵文祐)의 후예로 아버지는 배응신(裵應紳)이다. 배충신(裵忠信)은 효우(孝友)가 순독한 데다 학문(學問)을 부지런히 갈고 닦으니, 향당(鄕黨)이 천거하였다. 유생들의 추천으로 가선 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증직(贈)되었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달성(達城). 충간공(忠簡公) 배문우(裴文祐)의 후손이며 유일(遺逸) 배상진(裴尙紾)의 6세손이다. 초명은 윤선(胤先)이다. 배홍립(裵弘立)[?~?]은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인조 14)에 청강(淸江) 조수성(曺守誠)과 함께 창의하였다. 병량미를 많이 모아서 운량관(運糧官)이 되었고, 여산회맹(礪山會盟)에서 주병 대장(鑄兵隊長)...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에 있는 백파정을 짓고 김재탁이 읊은 한시. 한시 「백파정을 짓고서」의 작가 김재탁(金再鐸)[1776~1846]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출신으로, 본관은 진주, 자는 맹경(孟警), 호는 백파정(白波亭)이다. 문집 『백파집(白波集)』이 전한다. 시의 배경 정자인 백파정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마을 뒷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단층의 팔...
-
1636년 청(淸)이 조선에 2차 침입하여 발생한 전쟁. 병자호란은 병자년에 일어나 정축년에 끝났기 때문에 병정노란(丙丁虜亂)이라 부르기도 한다. 1636년(인조 14) 청이 조선에 2차 침입하여 발생한 전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대항하였다. 화순에서도 조수성(曺守誠)[1570~1644]을 비롯한 의병들이 출전하였으나 화친이 이루어져 해산하였다. 1627년 후...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에 있는 창녕 조씨 사당. 부일사는 조선 세종 때 병조 판서를 지낸 조흡(曺恰)을 주벽으로 조대중(曺大中), 조수성(曺守誠), 조성홍(曺誠弘), 조황(曺煌) 등을 배향하는 창녕 조씨 사우이다. 1785년(정조 9)에 고을 유림의 발의로 역정사(櫟亭祠)를 건립하였고 1868년(고종 5)의 서원 철폐 명령으로 훼철되었다. 후손들이 화순...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민제장이 지은 시조. 민제장(閔濟章)[1671~1729]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호는 삼금당(三錦堂)이다. 『삼금당행록(三錦堂行錄)』의 연보 ‘갑오(甲午)’[1714년, 민제장의 나이 44세] 부분에 「북관가」가 수록되어 있다. 연보에는 “공이 일찍이 노래를 지었다[公嘗作歌].”라고 한 후 한 구절씩 한시와 시조가 번갈아 실려 있다. 5언의 한시...
-
18세기 중엽 제작된 『비변사 인 방안지도(備邊司印 方眼地圖)』에 있는 화순 능주목의 지도. 『비변사 인 방안 지도』는 경위선 표식(經緯線表式) 군현 지도집이다. 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은 비교적 일정한 크기의 방안(方眼)을 바탕에 그림으로써 축척을 적용하여 그린 군현 지도 모음집이다. 방안으로 축척을 나타냈으므로 방안 지도 또는 경위선 표식 지도·선표도(線表圖)·방안...
-
18세기 중엽 제작된 『비변사 인 방안지도(備邊司印 方眼地圖)』에 있는 화순 동복 지역의 지도. 『비변사 인 방안 지도』는 경위선 표식(經緯線表式) 군현 지도집이다. 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은 비교적 일정한 크기의 방안(方眼)을 바탕에 그림으로써 축척을 적용하여 그린 군현 지도 모음집이다. 방안으로 축척을 나타냈으므로 방안 지도 또는 경위선 표식 지도·선표도(線表圖)·방...
-
18세기 중엽 제작된 『비변사 인 방안지도(備邊司印 方眼地圖)』에 있는 화순 지역의 지도. 『비변사 인 방안 지도』는 경위선 표식(經緯線表式) 군현 지도집이다. 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은 비교적 일정한 크기의 방안(方眼)을 바탕에 그림으로써 축척을 적용하여 그린 군현 지도 모음집이다. 방안으로 축척을 나타냈으므로 방안 지도 또는 경위선 표식 지도·선표도(線表圖)·방안 좌...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정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1592년 임진왜란 때 선조가 평안도로 피난을 갈 때 왕자와 대군의 호위를 맡았던 신하가 회령부에서 왜적에게 죽음을 당하자 그의 부인도 고향에서 남편의 뒤를 따라 자결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노복 또한 함께 자결하였다. 이들 3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869년(고종 6)에 정려를 하사하였다. 삼강 정려는...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에 있는 문세정의 강학소. 삼계정사는 문세정(文世禎)이 후진을 양성했던 강학소이다. 자는 국로(國老), 호는 삼계(三溪)이고,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당시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당하거나 사사(賜死) 당하던 때 도내의 유림을 대표하여 상소문을 올렸다가 화를 입고...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화여(華汝). 장위공(章威公) 서희(徐熙)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서해기(徐海基)이다. 서응후(徐應厚)[?~1593]는 사복시(司僕寺) 첨정(僉正)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충의공(忠毅公) 최경회(崔慶會)의 휘하에서 활동하며 금산(錦山)과 무주(茂朱)에서 왜병을 크게 격파하였다. 그 후 진주성(晉州城)을 수성하였...
-
조선 후기 전충효가 석정 처사(石亭處士) 김한명(金漢鳴)이 사는 화순군 이서면 보산리 석정 마을을 그린 그림. 석정 처사 김한명[1651~1718]은 광산 김씨로 전라남도 화순 지역 보암산(寶岩山) 아래 석정 마을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김한명의 자(字)는 대재(大哉), 호(號)는 석정(石亭)이다. 화순군 이서면 보산리에 위치한 석정 마을 입구 노송이 우거진...
-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공을 세운 화순 출신의 염걸 장군, 염걸 장군의 아들 염홍립, 염걸 장군의 동생 염경에게 각각 내린 선무원종 공신녹권.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宣武功臣)을 책봉하였는데, 이때 빠진 9,060명을 대상으로 1605년 4월 선무원종 공신(宣武原從功臣) 에 녹훈하면서 발행한 녹권이다. 원래는 증서 형태...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정천리 정천 마을에 있는 박장환의 강학소.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밀양 박씨 정재(淨齋) 박장환(朴章煥)[1750~1809]이 건립하여 후학을 양성하던 강학소이다. 박장환의 자는 문재(文哉)이며, 모봉(茅峯) 박지수(朴枝樹)의 후손으로 박경시(朴慶始)의 아들이다. 서당이 퇴락하여 6세손 박형주(朴亨周)가 중건하였으며, 현판은 용곡 조기동이 쓴 것이...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에 있는 송석정에 대해 양인용, 홍우규, 윤봉구 등이 읊은 한시. 송석정은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 예성산 아래 양자강 변의 절승지에 자리 잡고 있다. 단층 팔작지붕의 골기와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중앙에 재실이 있고, 주위는 회랑으로 되어 있다. 광해군 때 첨정 벼슬에 있던 양인용이 인목 대비의 폐위 사건이 일어나자 벼...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조선 후기 양인용이 축조한 누정. 현재 화순군 이양면 강정길 68[강성리 762] 예성산 아래 지석천이 흐르는 강변에 위치해 있다. 송석정(松石亭)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곳은 소나무와 괴암이 어우러진 야트막한 절벽 위에 누정이 있어 사방을 전망하기 좋은 곳이다. 송석정 아래에는 마치 해자처럼 10여m가 넘는 넓이의 연못이 둘러...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에 있는 송석정의 관등 놀이에 대해 양주남이 읊은 한시. 한시 「송석정 관등 놀이」의 작가 양주남(梁柱南)[1610~1656]은 조선 중기에 의병으로 활동했던 인물로,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출신이다. 2권으로 구성된 개인 문집 『사송 선생 유집(四松先生遺集)』이 전하는데 , 이 시는 『사송 선생 유집』의 1권에 실려 있다. 시의 배경...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승려. 호는 나암(懶庵)이다. 승제(勝濟)[?~?]는 화순군 능주면 쌍봉사(雙峯寺)에서 활동한 승려이다. 구체적 생몰년은 알 수 없으나 스승 자우(自優)가 1830년에 사망하였으므로, 19세기 초에 활동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우연히 대둔사에 들렀다가 자우(自優)의 제자가 되었고, 자우의 밑에서 『대승 기신론(大乘起信論)』·『능엄경(楞嚴經)』...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세속의 성은 정씨(丁氏). 어릴 때 이름은 계방(桂芳), 호는 호의(縞衣). 아버지는 정삼달(丁三達)이고 어머니는 정씨(鄭氏)이다. 시오(始悟)[1778~1868]는 15세에 아버지를, 1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화순 만연사(萬淵寺)에 들어갔다. 1793년(정조 17) 9월 만연사 화재로 중수할 때, 경관(慶冠)이 도료장으로 참여하였는데,...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천여(天與), 호는 손지당(遜志堂). 무절공(武節公) 신유정(辛有定)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신중지(辛重摯)이다. 신몽필(辛夢弼)[1674~1754]은 화순 출신으로, 타고난 자품이 총명하고 경학과 명리에 밝아 선비들에게 추중을 받았다. 171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직강(成均館直講)·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희문(希文), 호는 종산(鍾山).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신건(申楗)이다. 신봉성(申鳳聖)[?~1592]은 관직이 참봉(參奉)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아버지 신건이 금산성 전투에서 순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 신봉서(申鳳瑞)와 함께 의병을 모아 금산에 가서 싸우던 중에 사망하였다. 선...
-
조선 후기 능주 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여수(汝受). 아버지는 신이명(愼爾明)이다. 신유익(愼惟益)[1671~?]은 1693년(숙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01년 5월 무장 현감으로 부임하고 여러 지역의 수령을 거쳐 사헌부 장령을 지냈다. 1722년 9월 능주 목사로 부임하고, 1723년 영...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정려각. 쌍봉리 충신각은 김해 김씨 김인갑(金仁甲)[1564~1593], 김의갑(金義甲)[?~?], 김시엽(金時燁)[1586~1639] 등 3인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1872년(고종 10)에 건립한 정려각이다. 김인갑은 1579년(선조 12)에 무과에 급제하고 1591년에 훈련원 판관이 되었으며 임진왜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쌍봉사에 있는 신라 시대 최고의 목조 건축. 쌍봉사는 화순군 이양면 증리 741에 소재한 신라 시대의 고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쌍봉사의 초창은 동리산문의 개산조인 적인 선사 혜철의 비문 기록으로 보아 늦어도 839년(신무왕 1) 이전에는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쌍봉사는 이양역에서...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품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쌍효려(雙孝廬)는 밀양 박씨 박경택(朴璟澤)과 박경한(朴璟翰) 두 형제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두 형제는 평소에 효성이 지극하였고 모친이 위독하자 단지를 하여 생명을 연장시켜 드렸고 돌아가신 후에는 3년의 시묘 생활을 하였다. 1869년(고종 6) 정려를 하사받았다. 쌍효려는 화순군...
-
조선 후기 화순에 은거한 문인.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겸숙(謙叔), 호는 야옹(野翁). 안축(安舳)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중돈(安重敦)이고, 아버지는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이다. 어머니는 경주 정씨(慶州鄭氏) 정승복(鄭承復)의 딸이고 부인은 김의명(金義鳴)의 딸이다. 안익지(安益之)[1608~1687]는 효우(孝友)가 뛰어나고 재주가 명민하였다. 아버지의...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천백(遷伯), 호는 육화(六化).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후예이다. 할아버지는 남주 고사(南州高士) 양지남(梁砥南)이며,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양우규(梁禹圭)이다. 양지남은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양거안(梁居安)[1652~1731]은 경사(經史)를 널리 섭렵하여 문사(文辭)가...
-
조선 후기 화순 출신 무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득일(得一), 호는 북애정(北涯亭).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양제용(梁濟容)이고, 어머니는 광산인 김잠(金潛)의 딸이다. 여흥인 민숭경(閔崇慶)의 딸과 혼인하였다. 양두남(梁斗南)[1578~1640]은 화순 출신으로,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여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비...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전지(甸之), 호는 오봉(鰲峰).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5대손이며, 양응기(梁應箕)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구봉(九峰) 양위남(梁渭南)이고, 어머니는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관도(文貫道)의 딸이다. 부인은 강화 최씨(江華崔氏) 최동헌(崔東獻)의 딸이다. 양우전(梁禹甸)[1595~1672]은 가업을 잘 계승하...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경섭(景涉), 호는 구봉(九峯).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현손이다. 양응기(梁應箕)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양인용(梁仁容)이고, 어머니는 풍산 홍씨(豊山洪氏) 홍진(洪縝)의 딸이다. 부인은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관도(文貫道)의 딸이다. 양위남(梁渭南)[1574~1633]은 어려서부터 재기(才氣)가 남달랐고,...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양제용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공(汝恭), 호는 칠송(七松).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봉사(奉事) 양산욱(梁山旭)이다. 양제용(梁悌容)[?~?]은 1627년(인조 5)에 발발한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거의(擧義)하여 근왕(勤王)한 바 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옥과 현감(玉果縣監) 이흥발(李興浡)과 순창...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경(子擎), 호는 사송(四松).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양효용(梁孝容)이고, 어머니는 송제민(宋齊民)의 딸이다. 양주남(梁柱南)[1610~1656]은 안방준(安邦俊)의 문인으로, 김집(金集),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의 문하(門下)에도 출입했다고 한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스승인 안방준의...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제주. 자는 경원(景遠), 호는 만희재(晩羲齋)·재원(梓園)·학음(鶴陰). 학포 양팽손(梁彭孫)의 후예이다. 아버지는 양윤주(梁潤周)이고 어머니는 진주 김씨 김시향(金時香)의 딸이다. 양진영(梁進永)[1788~1860]은 4세에 다른 사람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스스로 문자를 깨달았고, 6세에는 8괘(八卦)와 6갑(六甲)을 외웠으며,...
-
조선 중기 화순군 능주면 출신의 문신·학자인 양팽손의 시문집. 양팽손(梁彭孫)[1488~1545]의 자는 대춘(大春), 호는 학포(學圃)이다. 중종 대의 문신으로 조광조(趙光祖)[1482~1519]가 유배되었을 때 곁에서 함께했다. 조광조가 타계하자 학포는 조광조의 사신(捨身)을 수습하였다. 송흠(宋欽)[1459~1547] 문하에서 수학했고,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상류 주택. 양회두 가옥은 학포 양팽손[1488~1545]의 8대손인 양명구[1710~1794]가 건립한 가옥이다. 당시 양명구는 만석꾼의 대지주로서 양동호·양승수 가옥 등 양씨 문중의 여러 가옥 건립에도 관여하였다고 전해진다. 골짜기에 조성된 월곡 마을을 진입하면 화순 양동호 가옥, 화순 양승수 가옥이 우측 북...
-
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포함된 화순군 능주 지역의 지도. 『여지도』는 ‘비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으로 전국 모든 군현을 비교적 작은 크기로 그린 18세기에 제작된 지도책이다. 이용에 매우 편리한 장점을 지녔으며, 군현 지도의 보급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화순 지역의 옛 모습은 조선 8도의 대축척 군현 지도가 수록된 『여지도』 2첩 중 전라도 부분의 「능주목...
-
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포함된 화순군 동복 지역의 지도. 『여지도』는 비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으로 전국 모든 군현을 비교적 작은 크기의 지도책에 그림으로써 이용에 매우 편리한 장점을 지닌다. 이를 통해 군현 지도의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의 『여지도』는 3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3첩 중 2첩은 팔도가 경기도·충...
-
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포함된 화순 지역의 지도. 『여지도』는 비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으로 전국 모든 군현을 비교적 작은 크기의 지도책에 그림으로써 이용에 편리한 장점을 지닌다. 이를 통해 군현 지도의 보급에 기여하였으며, 지지적인 내용을 지도 뒷면에 상세하게 기록함으로써 지지를 지도의 부록으로 활용하여 지도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각 지역에 대한 역사·사회·경...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법호 연경(演瓊)만 전해지고, 세속의 성, 법명 등은 알려진 것이 없다. 연경(演瓊)[?~?]은 화순군 이서면 월산리[당시 동복면 내서면 경산]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규봉암 중창 상량기(圭峰庵重創上樑記)」가 남아 있어 화순 출신 승려인 연경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규봉암 중창 상량기」에 의하면, 연...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민제장이 지은 시조. 민제장(閔濟章)[1671~1729]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호는 삼금당(三錦堂)이다. 『삼금당행록(三錦堂行錄)』의 연보 ‘신묘(辛卯)’[1711년, 민제장의 나이 41세] 부분에 「영남발선가」가 수록되어 있다. 연보에는 “처음 영남으로부터 배를 띄워 출발할 때에 공이 노래를 지었다[初自嶺南發船公作歌].”라고 한 후 한 구절씩...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우. 예산사는 묵은공(黙隱公) 정희(鄭熙)와 문절공(文節公) 정수충(鄭守忠)을 향사하는 사우로 1885년(고종 22)에 건립하였다. 정희는 고려 말 정몽주의 문인으로 조선 초기 정도전을 탄핵하다 낙도로 유배되었으며 후에 사면을 받고 좌찬성으로 증직되었다. 정수충은 세종 때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냈다....
-
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동복(同福). 자(字)는 공익(公益), 호(號)는 회당(晦堂). 문헌공(文獻公) 오대승(吳大陞)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오정열(吳廷說)이고 어머니는 오막소(吳邈蘇)의 딸이며, 부인은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유삼(金有三)의 딸이다. 오덕노(吳德老)[1692~?]는 1728년(영조 4)에 발발한 이인좌의 난[무신난]...
-
1597년 정유재란 때 화순 지역 의병장 최경운(崔慶雲)과 주민 500여 명이 오성산성에서 왜병 3,000여 명과 3일간 격전을 벌인 전투. 최경운은 정유재란 때에 왜군들이 전라도 일대에서 잔학한 만행을 자행하자, 주민 및 가솔과 함께 오성산성에 올라 항전을 벌였다. 그는 진주성에서 전사한 최경회(崔慶會)[1532~1593]의 장형으로 당시 73세의 노구였다....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한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민 가옥. 오세탁 가옥은 1800년대 중엽에 지어진 이 지역의 보편적인 서민 주택이다. 1985년 전남 대학교 팀이 조사할 당시 오세탁 가족이 4대째 살고 있었다. 오세탁 가옥은 동복면 한천리 한천 마을 내에 자리하고 있다. 한천 마을의 가구 수는 약 110호가 되며 마을에는 군도 4호선이 지난다....
-
1615년 전라남도 화순 지역 동복현(同福縣)의 호장(戶長) 오언복(吳彦福) 등이 일으킨 난. 동복현은 조선 시대에 현령이 파견된 지역이었다. 중앙에서 동복현에 파견된 현령은 향리의 보좌를 받아 지방을 통치하였다. 조선 시대 지방관의 주요 임무는 수령 칠사(首領七事)를 들 수 있다. 농상을 성하게 함[農桑盛], 호구를 늘림[戶口增], 학교를 일으킴[學校興], 군정을 닦음...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 자(字)는 찬형(贊亨), 호(號)는 지암(芝庵).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첨중추(僉中樞) 오경관(吳慶寬)이다. 오인혁(吳仁爀)[?~?]은 부모님의 병환에 눈물 흘리고 근심하며 먹지 않고 정성으로 돌보았다. 병이 깊어지니 하늘에 빌고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드려서 부모님께서 수일 간 연명하게 하였다. 부모님...
-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화순군 출신의 의병. 오죽령(吳竹齡)은 1592년(선조 25)에 발발한 임진왜란 때 화순군 동복에서 거의(擧義)한 의병이다. 오죽령의 본관은 동복(同福). 호는 송재(松齋)이다. 문헌공(文獻公) 오대승(吳大陞)의 후손이고, 오억동(吳億東)의 아들이다. 오죽령(吳竹齡)[?~?]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오현당(五賢堂)은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99~1454]를 주향으로 이조원(李調元)[?~?], 이중호(李仲虎)[1512~?], 이발(李潑)[1544~?], 이길(李洁)[1547~?] 등 5위를 향사하는 광산 이씨(光山李氏)의 사당이다. 문중의 저명한 문인 5현을 모셨다고 하여 오현당이라고 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민주현이 완산부의 명승과 지세 등을 읊은 가사. 민주현(閔胄顯)[1808~188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관직 생활 초기인 1854년(철종 5)에 종실의 시조를 모신 완주부[전라북도 전주의 옛 이름] 조경묘(肇慶廟) 별검(別檢)이 되었으며, 이듬해 봄에 지인들과 한벽당(寒碧堂)·만경대(萬景臺)·옥류동(玉流洞) 등 전주의 명승을 유람하였다. 그리...
-
전라남도 순천시 사평면 유마리 유마사에서 출토된 청동 시루. 시루는 우리나라에서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고유의 찜기이다. 자배기 모양으로 바닥에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는 형태이다. 유마사 청동 시루는 사찰에서 밥이나 떡을 찌는데 사용한 것이다. 아가리 아래의 외면에 ‘건륭 육년 신유 십월일 동복 유마사 동암 증 유중입...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문화. 호는 행당(杏堂). 백천(百泉) 유함(柳涵)의 후손으로 유부(柳溥)의 아들이다. 유봉운(柳鳳運)은 도의를 강론하고 밝혔으며 사물을 대할 때 활연히 깨달음이 있었으며, 일찍이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성인의 말씀을 반복하고 의리를 참고하여 지극히 마땅한 데로 돌아가길 구하는 것으로 나의 평생 동안 학문을 하는 중요함으로 삼았...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있는 무등산[서석산]을 정약용이 유람하고 쓴 기행문. 화순 지역의 뛰어난 산수는 청년 다산 정약용의 호연지기를 기르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그의 부친이 화순 현감(和順縣監)으로 있을 때에 적벽을 유람한 뒤 화순 사람 조익현(曺翊鉉)의 권유로 형제와 더불어 무등산을 오른 뒤에 쓴 기행문이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1집 13권에...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유광재(柳光載)의 현손(玄孫)이고, 아버지는 유사동(柳思東)이다. 유성오(柳成五)[?~?]는 효성과 우애가 순수하고 독실하였다. 달고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님을 봉양하였다. 화재가 나서 사당을 구원하려고 신주를 안고 나오다 죽었다. 고을 사람들이 이를 슬퍼하고 불쌍히 여겼다. 고을에서 천거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자는 무이(無二), 법호는 연담(蓮潭). 속세의 성은 천씨(千氏)이다. 유일(有一)[1720~1799]은 화순군 적천리에서 태어났다. 『통감』·『대학』·『맹자』·『중용』 등 유가 경전을 공부하였다. 1737년 18세에 승달산 법천사(法泉寺)의 성철(性哲)을 따라 출가하였고, 이듬해 안빈 노사(安賓老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도곡(道谷). 환산정(環山亭) 유함(柳涵)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유난연(柳鸞演)이다. 유정운(柳鼎運)[?~?]은 경전에 널리 통달하여 후배들을 가르쳤다. 천성이 효순하여 양친을 봉양함에 달고 맛있는 것을 드리고, 안부 살피는 것을 늙도록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이 들었을 때는 똥을 맛보아 병의 증세를 가...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정(子淨), 호는 백천(百泉). 아버지는 유덕용(柳德容)이다. 유함(柳涵)[1576~1661]은 허봉(許篈), 이수광(李睟光), 정경세(鄭經世) 등과 교유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격문(檄文)을 보고 조수성(曺守誠)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청주(淸州)까지 북상하였으나 강화가 성...
-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회일(會一), 호는 해은(海隱)이다. 판서(判書) 윤처관(尹處寬)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윤구(尹坵)이다. 윤만동(尹萬東)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족형(族兄)인 윤대표(尹大彪)가 의병을 모을 때 함께 했으며, 군량미가 부족하자 모아둔 돈과 곡식을 모두 내어 군량미를 조달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 자는 우삼(友三), 호는 인재(忍齋).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의 후예이다. 할아버지는 윤심암(尹心庵)이다. 윤자익(尹滋益)[?~?]은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인으로, 학문이 해박(該博)하고 예법에 맞는 몸가짐이 빼어났다. 선업(先業)을 이어 받아 만수정(萬樹亭)을 짓고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나 빈민들을 구제하는...
-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형삼(亨三), 호는 눌와(訥窩).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의 후예이다. 윤확(尹確)이 낙남(落南)하여 나주 영평(永平)에 터를 잡았고, 6세조 칠송(七松) 윤각(尹珏)이 화순 능주로 이거하였다. 아버지는 난곡(蘭谷) 윤영진(尹榮鎭)이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 권성록(權成祿)의 딸이다. 윤자현(尹滋鉉)[18...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찬화(贊華), 호는 석천(石川). 완창대군(完昌大君)의 8대손이며, 순양군(順陽君) 이석공(李石公)의 증손(曾孫)이고, 증 참의(參議) 이희춘(李希春)의 아들이다. 이사종(李嗣宗)[1543~1634]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고경명(高敬命)이 금산성 전투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 이소...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무숙(茂叔), 호는 삼괴(三愧). 양도공(襄度公) 이천우(李天祐)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 이제(李濟)이다. 이상회(李相檜)[1679~1748]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아름다웠고 실덕(實德)을 근본으로 삼아 영화(榮華)를 추구하지 않았다. 성장하여 송시열(宋時烈)의 학통을 이은 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인택(仁宅), 호는 송암(松庵). 공숙공(恭肅公) 이명덕(李明德)의 후예로 아버지는 이화제(李華齊)이다. 이생후(李生厚)는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1702~1772]의 문인(門人)으로 절개가 뛰어나 칠송정(七松亭)을 짓고 성리학(性理學) 연구에 전념하였다. 증손(曾孫) 이약수(李藥秀)가 귀하게 되어 이조 참의...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수민(壽民), 호는 노월당(蘆月堂). 공숙공(恭肅公) 이명덕(李明德)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응열(李應烈)이며, 아버지는 이문시(李文蓍)이다. 생부는 승지(承旨) 이문한(李文漢)이고 어머니는 김윤적(金潤迪)의 딸이다. 이약수(李藥秀)[1807~?]는 1870년(고종 7)에 문과에 급제하여 감찰(監察), 전적, 사...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광보(光甫), 호는 회재(悔齋). 공숙공(恭肅公) 이명덕(李明德)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판에 증직된 이영숙(李靈肅)이다. 이위(李韡)[?~?]는 화순 출신으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어린 나이에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학문을 성취하고, 「분의편(奮義篇)」과 「계자서(戒子書)」를 저술하였다....
-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거주한 이윤덕에게 발급한 조선 후기의 노비 매매 문기. 화순현에서 1745년(건륭 10) 12월에 이윤덕(李潤德)에게 발급해 준 노비 매매 문기이다. 화순현에서 이윤태를 불러 사실을 확인하고 이윤덕에게 발급해 준 노비 매매 문기이다. 입안의 크기는 26.5×123㎝이다. 종이에 한자와 이두로 기재되어 있다. 낱장 1장이다. 화순...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유(伯由) 호는 모재(慕齋). 완창 대군(完昌大君)의 9대손이며 순양군(順陽君) 이석공(李石公)의 고손(高孫)이고,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며 어머니는 남평 진씨(南平陳氏)로 주부(主簿) 진복흥(陳復興)의 딸이고 부인은 나주 오씨(羅州吳氏) 오진남(吳進男)의 딸이다....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천(允天) 호는 추봉(秋峯). 완창대군(完昌大君)의 9대손이며 순양군(順陽君) 이석공(李石公)의 고손(高孫)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다. 이정기(李廷機)[?~1636]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둘째 형 이정추, 동생 이정근과 함께 창의하였다. 경기...
-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유(士由), 호는 도곡(道谷). 완창대군(完昌大君)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다. 동생 이정추(李廷樞), 이정기(李廷機), 이정근(李廷根)은 병자호란 때 의병이다. 이정립(李廷立)[?~?]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고경명(高敬命)...
-
임진왜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공거(公擧). 호는 죽계(竹溪). 이조원(李調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여복(李汝福)이다. 이정익(李廷翼)[?~1593]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종조(四從祖)인 이언찬(李彦贊)을 따라 거의(擧義)하였다. 대오를 정비하여 남원(南原)을 거쳐 순창(淳昌)에 이르러 왜병과 싸...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서원(瑞元), 호는 도계(道溪).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다. 이정추(李廷樞)[?~?]는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자제들을 거느리고 의병을 일으켰다. 충청남도 아산(牙山)에 나아가 과천(果川)의 남태령(南泰嶺)에서 청나라 군대와 맞서 싸웠으나 적에...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효부. 본관은 단양(丹陽). 임남수(林南洙)의 부인이다. 임남수 처 단양 우씨(林南洙 妻 丹陽 禹氏)[?~?]는 40살이 못 되어서 남편이 죽었다. 시부모를 모시고 어린 아이를 양육하려고 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고, 밭도 갈고, 길쌈도 하며 성실하게 살았다. 시어머니의 성격이 가혹했으나 시어머니의 뜻을 잘 받들고 시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데 힘썼...
-
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연지(年之), 호는 동계(東溪).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으로, 진사 임회(林檜)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임명(林蓂)이다. 임대년(林大年)[1539~?]은 1606년(선조 39)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가 되었다. 전라남도 화순군 대리 대동 마을로 이거하였다....
-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에 있는 조선 후기 민주현이 지은 누정. 임대정은 국가 문화재 명승 제89호로 지정된 화순 임대정 원림 안에 자리하고 있다. 임대정 원림을 조성한 이는 조선 시대 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판서를 지낸 사애(沙厓) 민주현(閔冑顯)[1808~1882]이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서 초가집을 짓고 원림을 조성하며, 여생을 지냈다. 이곳은...
-
조선 후기 능주 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윤보(潤甫), 이호(彛好)이며 호는 노촌(老村). 임연(林煉)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도사 임세공(林世恭)이며, 어머니는 이형생(李逈生)의 딸이다. 큰아버지 임세온(林世溫)에게 입양되었고,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상덕(林象德)[1683~1719]은 1699년(숙종 25) 진사가 되었고, 1705년...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택. 자는 무경(武京), 호는 세심정(洗心亭).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예로, 아버지는 임낙기(林洛基)이다. 임상우(林相雨)[?~?]는 재주와 행실이 뛰어나서 도내 선비들이 예조에 천거하여 1834년(헌종 즉위년)에 건원릉(健元陵) 참봉과 같은 해 돈령부 도정을 지냈다. 「도솔산 대참사 고사(兜率山大懺寺古寺)...
-
1862년 전라남도 화순 지역 인근을 포함한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농민 항쟁. 1862년(철종 13) 2월 4일 단성현에서 일어난 민란을 시작으로 그 해 말까지 37차례에 걸친 민란이 일어났다. 전라도는 3월 27일 익산 지역을 시작으로 4월과 5월에 집중적으로 민란이 발생하였는데, 함평·고산·부안·금구·장흥·순천·강진 등 54개 군현 가운데 38여 곳에서 항쟁이 일어났다. 지금의...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자옥(子沃). 호는 은암(隱庵).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임숙(林塾)이다. 임시계(林時啓)[?~?]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동생 임시태 및 여러 종형(從兄)들과 함께 거의(擧義)하였다. 집안의 재산을 모아 군용(軍用)에 충당하였고, 전주에 이르...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자구(子求), 호는 임천(林泉).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임숙(林塾)이다. 병자호란 때 활약한 임시계(林時啓), 임시태 등이 형이다. 임시민(林時敏)[?~?]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형 임시계 등 여러 종형(從兄)들과 함께 거의(擧義)하였다. 청...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택(平澤)이고, 자는 군신(君信), 호는 묵암(默庵). 할아버지는 임대년(林大年)이고, 아버지는 참봉 임탄(林坦)이다. 임시익(林時益)[?~?]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여러 종형(從兄)들과 의병을 일으켜 청주(淸州)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강화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1...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택(平澤). 호는 송계(松溪). 할아버지는 임대영(林大榮)이며, 아버지는 임발(林撥)이다. 임시준(林時儁)[?~?]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여러 종형(從兄)들과 함께 거의(擧義)하였다. 청주(淸州) 서평원(西平原)으로 진격하여 적 9명을 제거하였다. 이어서 북상하려 했으나 강화가 성립되었다는...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한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민 가옥. 임원록 가옥은 1800년대 초쯤에 지어진 작은 규모의 서민 주택이다. 현재는 살림집으로서 그 편익성 때문에 여러 곳을 개·보수하여 건립 당시 초기의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동복면 한천리 한천 마을 오세탁 가옥과 같은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한천(寒泉)이란 차가운 샘이 있다는 찬샘에서 유래된...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평택(平澤). 초명은 상록(相祿), 자는 계천(啓天), 호는 농은(農隱).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임고(林熇)이고, 어머니는 수원 이씨 이세익(李世益)의 딸이며 부인은 남평 문씨 문연겸(文演謙)의 딸이다. 임중록(林中綠)[1737~1775]은 초야에 은거하며 경학으로 스스로 즐겼다. 책 한 권을 저술하였...
-
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에 도착한 왜군은 경상도 지역 주요 고을을 차례로 점령하였다. 화순군을 비롯한 전라도 일대는 왜군의 직접적인 침입을 받지는 않았으나 전직 관료, 양반 유생, 일반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켜 항쟁에 나섰다. 최경회(崔慶會)[1...
-
최경회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자는 선우(善遇)이고 호는 삼계(三溪), 일휴당(日休堂)이다. 최충(崔冲)의 후손이며 최혼(崔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윤범(崔尹範)이다. 아버지는 최천부(崔天符), 어머니는 순창(淳昌) 임씨(林氏)로 1532년 전라남도 화순읍 삼천리에서 태어났다.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과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의 문하에서 수학하...
-
화순 출신 조선 후기 실학자 하백원이 발명한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 양수기. 화순 지역 출신의 조선 후기 실학자 규남 하백원이 30세 되던 1810년에 발명한 자동 기계 장치다. 물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양수기에 해당한다. 하백원의 『자승차 도해』에 설계도 등이 남아 있던 것을 바탕으로 국립 중앙 과학관 과학 기술사...
-
전남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규남 박물관(圭南博物館)에 소장된 자승차(自升車)의 설계 도면. 규남(圭南) 하백원(河百源)의 「자승차 도해도」는 오늘날의 양수기(揚水機)라 할 수 있는 물을 끌어올리는 자동 기계 장치를 만들기 위한 도면(圖面)으로 1810년에 설계하였다. 우리 고유의 물레방아와 풀무에 활용된 과학 원리, 그리고 당대의 모든 과학 지식을 섭렵하고 조...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흡지(洽之), 호는 죽청(竹靑)·국헌(菊軒). 지평 장신(張信)의 후손으로, 장재양(張載陽)의 5세손이며, 아버지는 장응만(張應灣)이다. 양천 허씨 허근남(許謹南)의 딸과 혼인하였다. 장경흡(張景洽)[1598~1669]은 병자호란 때 조카 장익송(張翼松)과 함께 삼호(三湖) 최명해(崔鳴海) 부대에 들어가서 군량미를...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법호는 기봉(騎峯)이다. 장선(壯善)[?~?]은 어려서 인근의 명산인 월출산에 들어가 자원하여 승려가 되었다. 침송 회성(枕松 會聖)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고 문암(聞庵)에게서 법인(法印)을 전수받았다. 강론 방법에 조예가 깊었고, 그림 그리는 솜씨가 뛰어 났다. 화법(畵法)은 도현(道玄)과 원장(元章)의 기교를 본받았으며, 여러 불가...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자는 운경(雲卿). 호는 모의당(謀義堂)·미달당(未達堂). 충헌공(忠獻公) 장정필(張貞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장경흡(張景洽)이다. 장익(張翼)[?~?]은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삼호(三湖) 최명해(崔鳴海) 등 같은 고을의 여러 선비들과 창의하였다. 청주(淸州)까지 북상했으...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字)는 원서(元瑞), 호(號)는 근암(謹庵). 교위(校尉) 장세재(張世梓)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장일명(張一明)이다. 장표황(張表晃)[?~?]은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머니가 병환이 든 지 삼 년에 백약이 무효하고 위급해지자 아우들과 연이어 손가락을 끊고, 허벅지 살을 베어 피를 드려 수일 간 연명하게 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 지역에 입향한 문신. 본관은 흥덕(興德). 자는 면부(勉夫), 호는 일심재(一心齋). 안경공(安敬公) 장연우(張延祐)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사직(司直) 장몽량(張夢良)이며 부인은 보성 선씨(寶城宣氏)이다. 장희성(張希聖)[1558~1613] 충청도 공주(公州) 유구리(維鳩里)에서 출생하였으며, 천성이 강직하고 바르며 재주가 명민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
조선 후기 동복 현감을 지낸 문신. 정구는 1584년 동복 현감을 지냈고, 강원도 관찰사, 형조 참판 등을 역임했다.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운 동방심학(東方心學)의 대종(大宗)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철산 군수(鐵山郡守) 정윤증(鄭胤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감찰 정응상(鄭應祥)이고 아버지는 부사맹(副...
-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순절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하남(河南). 자는 운서(雲瑞), 호는 우옹(羽翁). 건천(巾川) 정광(程廣)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판관(判官) 정영세(程永世)이다. 정득운(程得雲)[?~1593]은 1588년(선조 21)에 무과 병과에 급제하여 의흥위(義興衛) 부장(部將)이 되고,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동생인 정득원(程得元...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미명(美命), 호는 경산(景山). 문헌공(文獻公) 정현영(鄭玄英)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환교(鄭煥敎)이다. 정낙규(鄭樂圭)[?~?]는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젊어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지극한 정성으로 어버이를 섬겼으며, 경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성리학을 강론하고 연구하였다. 선생이 칭찬하여 ‘미명...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이자 문인.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구보(懼甫), 호는 모재(慕齋). 정여해(鄭汝諧)의 현손이고, 아버지는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 정천구(鄭天球)이고 어머니는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탁(文倬)의 딸이다. 정열(鄭悅)[1575~1629]은 임진왜란에 김천일(金千鎰)·송제민(宋齊民)·양산숙(梁山璹)·임환(林懽) 등과 함께 창의하여 의병과 군량을...
-
1597년 임진왜란 중 화의 교섭 결렬로 왜군이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을 다시 침입한 전쟁. 임진왜란 중 조선의 강력한 저항과 명(明)의 원군으로 인해 전쟁이 장기화되자 왜군은 화의가 진행되고 있는 틈을 타서 본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의가 결렬되자 다시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면서 정유재란이 발생하였다. 전라도 지역은 이전과 달리 왜군의 직접적...
-
조선 후기 화순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삼(從三), 호는 송계(松溪). 문헌공(文憲公) 정도전(鄭道傳)의 14세손으로, 양경공(良敬公) 정문형(鄭文炯)의 11세손이며 아버지는 정수항(鄭守恒)이다. 정응신(鄭應臣)[?~?]은 사직서 령(社稷署令)을 지냈으며 태인에서 처음 화순으로 들어와 우거하였다....
-
개항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계방(季方), 호는 일신재(日新齋). 응교(應敎) 정태(鄭態)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제현(濟玄)이고, 어머니는 진원 박씨(珍原朴氏) 치성(致聖)의 딸이다. 정의림(鄭義林)[1845~1910]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3대 제자 중 1인으로, 노사학파의 인물 중 비교적 큰 규모의 문인 집단을 형성한 사람이다. 1...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있는 효행 기념비. 정자근노미는 어머니가 병석에 눕게 되자 간절히 기도하여 겨울에 강에서 잉어를 구하고, 복숭아를 구하는 등 온갖 정성을 쏟았는데, 그 효행이 알려져 정려를 명하였다고 하며, 효행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 기록상으로는 조선 후기 관찬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1759]에서 처음 확인 되는데, 잉어와 복숭아가...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원(昌原). 호는 적송(赤松). 할아버지는 진사(進士) 정암수(丁巖壽)이고, 아버지는 공조 참의(工曹參議) 정유성(丁有成)이다. 정지준(丁之雋)[?~?]은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학문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위급하다는 인조의 교서(敎書)가 반포되자, 하윤구(河潤九), 정호민(丁好...
-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순절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압해(押海). 자는 국선(國先), 시호는 충간(忠簡). 충민공(忠敏公) 정림(丁霖)의 오대손(五代孫)이다. 정충훈(丁忠訓)[?~1593]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최시망(崔時望)의 별장(別將)으로 거의(擧義)하여 병사들을 모았다. 이후 1593년 표의장(彪義將) 심우신(沈友信)과 함께 제2차...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무신난(戊申亂)]에 의병을 일으켰고, 고종 무신(戊申)년에 충효가 지극하여 동몽 교관을 증하였다. 본관이 창원(昌原), 자(字)는 경천(敬天), 호(號)는 백인당(百忍堂). 판결사(判決事) 정인례(丁仁禮)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수규(丁壽奎)이다. 정치업(丁致業)[?~?]은 아버지가 병이 들어 여름에 배를...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사명(士明), 호는 아산(鵝山). 판결사 정인례(丁仁禮)의 8세손이며, 정인남(丁仁男)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성주 형씨(星州邢氏) 형관(刑寬)의 딸이다. 정호민(丁好敏)[1598~1678]은 어려서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통독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에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송파(松坡). 조엽(曺熀)의 후손이다. 조기태(曺基泰)[?~?]는 어머니가 일찍이 홀로 된 후 어린 아이 넷을 스스로 맡아 기르면서 매일 10전씩을 10년 간 저축하여 어머니께 금강산 절경을 관광하시는 데 사용하게 하였다. 또 어머니의 생일을 대비하여 9년을 저축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렸으며, 양친을 위해 10년...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천서(天瑞), 호는 낙재(樂齋). 구봉(九峯) 조엽(曺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정오(曺挺五)이며, 아버지는 조선춘(曺善春)이다. 조명옥(曺命玉)[1708~?]은 재주가 총명하여 10세에 문장을 지을 줄 알았다. 1753년(영조 29)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성균관에서 공부하였다. 1762년(영조 38)에...
-
개항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회계(晦溪).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과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석윤(曺錫胤)이며, 아버지는 조치순(曺致淳)이다. 조병만(曺秉萬)[1829~1895]은 성재(性齋) 허부(許傅)의 제자로, 일찍부터 천재성을 발휘하여 일곱 살 때 천지인 삼재를 물었고, 12세 때는 규화시(葵花詩)를 읊었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안수(安水). 구봉(九峰) 조엽(曺熀)의 후손이며, 진사 조익은(曺翊殷)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조유승(曺有承)이다. 조병식(曺秉植)[?~?]은 1878년(고종 15)에 무과에 급제하여 우후(虞侯)와 금구 군수(金溝郡守)를 역임하였다. 고을이 크게 다스려져서 거사비(去思碑)가 있다. 1905년에 통정대부에 올랐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칠(敬七), 호는 월계(月溪).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과 정곡(鼎谷) 조대중(曺大中)의 후손이다. 조선섭(曺善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창적(曺昌迪)이고, 아버지는 조희연(曺喜演), 어머니는 최종길(崔宗吉)의 딸이다. 조상진(曺相振)[1779~1847]은 1822년(순조 2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학모(學模), 호는 영모재(永慕齋). 아버지는 조하필(趙夏弼)이다. 조석우(曺錫佑)[?~?]는 성품이 인자하고 행동이 돈독하며 학문(學問)이 해박(該博)하여 주위의 호평을 받았다. 여러 유자들이 호남 고사(湖南高士)라 칭하며 학행으로 천거한 결과 통정대부(通政大夫)가 주어졌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광중(光衆), 호(號)는 노가정(老稼亭). 정자(正字)를 지낸 조수홍(曺守弘)의 7대손이고, 아버지는 조진필(曺縉弼)이다. 조석윤(曺錫胤)[?~?]은 어릴 때부터 밖에서 과일을 얻으면 품고 돌아와 어버이께 드려서 당시에 효자주(孝子酒)[효자의 술]와 효자어(孝子漁)[효자의 고기]의 이름이 있었다. 어머니가 이...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미(士美).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과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조수성(曺守誠)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조욱(曺煜)이고, 아버지는 조정우(曺廷佑)이다. 어머니는 함양 박씨 박융업(朴隆業)의 딸이고, 부인은 하동 정씨 정석현(鄭碩賢)의 딸이다. 조선휘(曺善徽)[1647~1700]는 1693년(숙종...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효백(孝伯), 호는 청강(淸江). 병조 판서 조흡(曺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산 현감(尼山縣監) 조굉중(曺閎中)이고 어머니는 광산 김씨(光山金氏)로 이조 전랑(吏曹銓郞) 김약(金約)의 딸이다. 조수성(曺守誠)[1570~1644]은 1606년(선조 3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병자호란이 발...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이직(而直), 호는 농음(聾瘖).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조세명(曹世明)이며, 아버지는 정곡(鼎谷) 조대중(曺大中)이다. 어머니는 경주인(慶州人) 김응성(金應星)의 딸이며 부인은 홍주인(洪州人) 송방형(宋邦衡)의 딸이다. 조수정(曺守正)[1575~1638]은 어렸을 때부터 글 읽기...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으로 병자호란 때 의병 활동을 했던 문인.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칠원(漆遠). 조대중(曺大中)의 둘째 아들이다. 조수헌(曺守憲)[?~?]은 아버지가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己丑獄事)로 화를 만남을 애통히 여겨 일찍이 과거 공부를 폐하였다. 자취를 숨긴 조수헌은 대동산 아래에다 집을 짓고, 책 수천 권을 보관하여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으로써...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계의(季毅), 호는 사촌(沙村)·용헌(用軒).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조세명(曹世明)이며, 아버지는 조민중(曺敏中)이다. 어머니는 상산 김씨 김충걸(金忠傑)의 딸이며 부인은 문화 유씨 유응서(柳應瑞)의 딸과 홍주송씨 송방형(宋邦衡)의 딸이다. 정곡(鼎谷) 조대중(曺大中)의 조카이다....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회이(晦而), 호는 구봉(九峰). 할아버지는 조경중(曺景中)이고 아버지는 첨정(僉正) 조수훈(曺守訓)이다. 조엽(曺熀)[1600~1665]은 1624년(인조 2)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종숙부(從叔夫)인 조수성(曺守誠), 유함(柳涵) 등이 의병을...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성헌(惺軒). 아버지는 조백수(曺百壽)이다. 조예남(曺禮南)[?~?]은 어려서 재종숙(再從叔) 조수성(曺守誠)에게 배웠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조수성을 따라 거의하였다. 수직(壽職)으로 통정 대부(通政大夫)에 증직되었다....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곡부(曲阜). 공이천(孔伊川)의 딸로, 생원(生員) 조위중(曺偉中)의 처(妻)이다. 조위중 처 곡부 공씨(曺偉中 妻 曲阜 孔氏)[?~1597]는 여자가 지켜야 할 떳떳하고 옳은 도리를 따르며 살아왔다. 정유재란 때에 왜군이 전라도를 휩쓸며 화순 땅에 들어와 공씨를 핍박하려 하자,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자결하였다. 사문에 정려(旌閭)...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오중(五重), 호는 율재(栗齋).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과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조세명(曺世明)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조굉중(曺閎中)이고, 아버지는 조수천(曺守天)이다. 어머니는 전의 이씨(全義李氏) 이섬지(李暹之)의 딸이고, 부인은 정민행(鄭敏行)의 딸이다. 조정(曺烶)[1610~1681...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학사(鶴沙).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수훈(曺守訓)이고, 아버지는 조엽(曺熀)이며, 어머니는 장택 고씨(長澤高氏) 고부집(高傅楫)의 딸이다. 조정오(曺挺五)[?~?]는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고, 문과에 급제하여 발탁되었다. 늙은 나이에 천운산에 은거하였으며, ‘학사처사(鶴沙處士)...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선우(善遇), 호는 삼계(三溪)·일휴당(日休堂). 고려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16세손이고, 최혼(崔渾)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증 승지(承旨)인 최윤범(崔尹範)이고 아버지는 증 영의정 최천부(崔天符)이며 부인은 나주 김씨 김원(金遠)의 딸이다. 최경회(崔慶會)[1532~1593]는 1548년(명종...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최경회 사당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최경회(崔慶會)[1532~1593]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에서 태어나 1561년(명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567년에는 과거에 합격하였다. 그는 1593년(선조 26) 2차 진주성 전투에서 고종후·김천일(金千鎰) 장군 등과 합세하...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백술(伯述), 호는 석문(石門).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최경장(崔慶長)이고, 아버지는 통덕랑 최홍유(崔弘有)이다. 어머니는 진원 박씨 박근효(朴根孝)의 딸이고 부인은 전의 이씨(全義李氏) 이근(李勤)의 딸이다. 최계헌(崔繼憲)[1590~1643]은 화순 출신으로, 재주가 남달랐고, 학...
-
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효숙(孝淑).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후손으로, 증 승지(贈承旨) 최윤범(崔尹範)의 5세손이고, 아버지는 최서생(崔瑞生)이며, 어머니는 문화 유씨(文化柳氏) 유덕용(柳德容)의 딸이고, 부인은 하동 정씨(河東鄭氏) 정유중(鄭惟重)의 딸이다. 최기종(崔起宗)[1595~1670]은 정유재란 때 아버지가 사진포(沙...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동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거원(巨源), 호는 삼호(三湖).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후손으로, 최경운(崔慶雲)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선교랑 최광헌(崔光憲)이고, 어머니는 나주 나씨 나덕준(羅德峻)의 딸이다. 최명해(崔鳴海)[1607~1650]는 어려서부터 뜻하는 바가 컸으며, 충효심이 남달리 뛰어났다. 그리고 언제...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문화(文化). 참의(參議) 덕용(德容)의 딸로 최서생(崔瑞生)의 부인이다. 최서생 처 문화 유씨(崔瑞生 妻 文化 柳氏)[?~1597]는 정유재란 때에 피란을 가려고 남편과 함께 흥덕(興德) 사진포(沙津浦)에 이르렀다. 그때 적의 무리가 몰려와 남편을 죽였다. 이에 세 살 된 어린 아들을 가노(家奴)인 순동에게 부탁하고 물에 몸을...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해주. 자는 성원(聖源), 호는 담헌(澹軒)·창주(滄洲).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후예이고, 최홍재(崔弘載)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최용창(崔龍昌)이고, 아버지는 최사석(崔師錫)이다. 최시준(崔時濬)[1754~?]은 학문이 정밀하고 문장이 호방하였다. 송환기(宋煥箕)의 문하에서 성리학과 예학(禮學)을 깊이 연구하였다. 송환기...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관인. 최홍재(崔弘載)의 현손이고, 최휘(崔撝)의 아들이다. 최언당(崔彦曭)[?~?]은 1728년 무신난(戊申亂)[이인좌(李麟佐) 등의 소론(少論)이 주도한 반란]이 일어 났을때 난의 괴수 몽필(夢弼)이 죽도(竹島)에 도망하여 숨으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사로잡아 바치는 군공을 세워 충의위에 제수되었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해주(海州). 초명은 창혁(昌赫), 자는 대수(大叟), 호는 은암(隱菴).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휘(曺撝)이고, 아버지는 최언연(崔彦嚥)이며, 어머니는 금성 나씨(錦城羅氏) 나응무(羅應斌)의 딸이다. 최한창(崔翰昌)[1722~1789]은 학문이 순실하여 심경과 근사록 및 성리학 저서들을 전심하여 강구하...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덕주(德周), 호는 사촌(沙村).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후예이고, 최윤범(崔尹範)의 증손자이다. 아버지는 충의공(忠毅公) 최경회(崔慶會)이고, 아우는 최홍식(崔弘式)이다. 최홍기(崔弘器)[1562~?]는 가정에서 수업에 정진하여 학식이 고명하였다. 1589년(선조 22)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덕용(德容), 호는 인재(忍齋). 최충(崔冲)의 후손으로, 증조는 최윤범(崔尹範)이고, 할아버지는 증 영의정 최천부(崔天符)이다 최홍우(崔弘宇)[1562~1636]는 정개청(鄭介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작은아버지인 최경회를 따라 금산(錦山), 무주(茂朱), 개령(開寧)의 싸움에서 많은 공을...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사술(士述), 호는 취한(就閒). 아버지는 최홍우(崔弘宇)이다. 최후헌(崔後憲)[?~?]은 기골이 장대하고 행실이 엄정(嚴正)하며 능력이 한 나라를 다스릴 만 하였다. 중국 장수 하문진(河文晋)이 다리를 만지면서 말하기를 “이 아이는 반드시 큰 그릇이 되리라.”하고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1635년(...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에 있는 춘탄정을 짓고 이지영이 읊은 한시. 한시 「춘탄정을 짓고서」의 작가 이지영(李之榮)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출신으로, 본관은 광산, 자는 망지(望志), 호는 춘탄(春灘)이다. 청심당(淸心堂) 조원(調元)의 후손이며, 채제공(蔡濟恭)의 문인으로, 19세기 초엽에 춘탄정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 한시는 『화순 군지(和順郡誌)』, 『화순...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있는 조선 후기 홍경고가 경영했던 누정. 침수정은 현재 춘양면 우봉리 368 우봉 마을에 위치해 있다. 17세기에 활약했던 허목, 윤선도의 문인이었던 팔우(八愚) 홍경고(洪景古)[1645~1699]가 17세기 말에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침수(枕漱)’라는 말은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중국 촉나라의 손문이 했던 말로, 돌을 베개 삼고...
-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절강(浙江). 자는 형복(亨福), 호는 은림(隱林).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귀화한 명나라 중군(中軍) 도독(都督) 편갈송(片碣頌)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절효공(節孝公) 편풍세(片豐世)이며 어머니는 오천 정씨(烏川鄭氏)이다. 편성대(片成大)[1605~1673]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근왕병(...
-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화순 출신의 의병. 하갑산의 본관은 진주(晉州). 참의(參議) 하금(河襟)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하윤세(河潤世)이다. 하갑산(河甲山)[?~1592]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 500명을 모았다. 처음에는 선조(宣祖)가 있는 행재소(行在所)로 가려고 했으나, 1차 금산성 전투에서 칠백의사(七百義士)가 순국...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있는 정려. 조선 시대 정유재란 때의 성균 진사 하대붕(河大鵬)[1533~1605]의 처 동복 오씨는 정유재란 때 남편이 포로가 되었다고 잘못 듣고 자결하였다. 종 목산(木山)도 ‘내 어찌 홀로 살리오?’ 하고 자결하였다. 충의위 이득춘(李得春)의 처 진주 하씨는 정랑 하대란(河大鸞)의 딸로 정유재란 때 남편이 포로로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실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치행(穉行), 호는 규남(圭南). 금사(錦沙) 하윤구(河潤九)의 7세손이고, 아버지는 하진성(河鎭星)이며, 어머니는 고휘겸(高撝謙)의 딸이고, 부인은 제주 양씨 양달제(梁達濟)의 딸이다. 진양 하씨는 군수(郡守) 하치(河治) 때 동복에 입향하여 대대로 이곳에 살았다. 하백원(河百源)[1781~1845]은 동복...
-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 후기 실학자 하백원(河百源)[1781~1845]이 그린 세계 지도와 우리나라 지도. 규남(圭南) 하백원(河百源)[1781~1844]은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1712~1781]·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1727-1798]·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1729~1790]과 함께 호남 실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많은 조...
-
조선 후기 화순 동복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옥(汝沃), 호는 금사(錦沙). 군수(郡守) 하치(河治)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군(參軍) 하대표(河大豹)이며, 어머니는 경주 배씨(慶州裵氏)이다. 하윤구(河潤九)[1570~1646]는 타고난 자질이 탁월하고, 기우가 단정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학문하길 좋아하였다. 문장을 일찍 성취하여 약관의 나이에 정구(鄭...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있는 양팽손의 부조묘. 학포 선생 부조묘는 양팽손(梁彭孫)[1488~1545]을 추모하기 위해 1631년(인조 9)에 창건된 부조묘이다. 고종 때 훼철된 것을 1947년 복원하였다. 양팽손은 홍문관 교리와 춘추관 기주관 등을 역임한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였으나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를 계기로 이곳 화순 지역으로...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한계리 한천 마을에 있는 재각. 함양 박씨의 능주 지역 입향조 박유(朴瀏)[1627~1675]의 묘소 옆에 1840년(헌종 6)에 박상요가 교육 도장으로 건립하였다가 1924년에 재각(齋閣)으로 개조하여 한천재(寒泉齋)라고 하였다. 1652년(효종 3)에 입향한 박유가 이곳에 한천당(寒泉堂)을 짓고 거주하여 마을 이름도 한천 마을이 되었...
-
1750년대 초 제작된 『해동지도』에 있는 화순 능주 지역의 지도. 『해동지도』는 1750년대(영조 26)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 지도집이다. 규격은 47.0×30.5㎝이고, 총 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동지도』는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집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활용된 관찬 군현 지도집이다. 『해동지도』에는 조선 전도, 도별도, 군현 지도뿐만 아...
-
1750년대 초 제작된 『해동지도』에 있는 화순 동복현의 지도. 『해동지도』는 1750년대(영조 26)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 지도집이다. 규격은 47.0×30.5㎝이고, 총 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동지도』는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집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활용된 관찬 군현 지도집이다. 『해동지도』에는 조선 전도, 도별도, 군현 지도뿐만 아니라...
-
1750년대 초 제작된 『해동지도』에 있는 화순 지역의 지도. 『해동지도』는 1750년대(영조 26)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 지도집이다. 규격은 47.0×30.5㎝이고, 총 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동지도』는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집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활용된 관찬 군현 지도집이다. 『해동지도』에는 조선 전도, 도별도, 군현 지도뿐만 아니라...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규남 박물관(圭南博物館)에 소장된 기행시화첩(紀行詩畵帖). 하백원(河百源)[1781~1844]은 1842년 4월 15일 보령(寶寧)의 다섯 선비 평천(平泉) 이병중(李秉中)[1762~1848], 광헌(光軒) 이우명(李遇明), 취죽(醉竹) 조순영(趙淳榮), 거회(居晦) 이우정(李遇正), 국은(菊隱) 심사숙(沈思叔)과 함께 보령 앞...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에 있는 현학정에서 민정중이 읊은 한시. 한시 「현학정에서」의 작가 민정중(閔鼎重)[1628~1692]은 조선 후기 숙종 때의 문신으로, 시문집 『노봉문집(老峯文集)』이 전한다. 시의 배경인 현학정은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 산중턱에 있으며 단층의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중재실(中齋室)이 있다. 처사 정근(鄭謹)이 세운...
-
조선 후기 정유재란 때 순절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인화(仁和), 호는 죽제(竹堤). 병사(兵使) 형군철(邢君哲)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형응희(邢應禧)이다. 형운창(邢運昌)[?~1597]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1593년(선조 26)에 거의(擧義)하여 남아 있는 왜병을 소탕하여 고을을 안정시켰다. 1597년(선조 30)에 다시 창의하여 전라 우수...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세속의 성은 정씨(丁氏), 별호는 유일(有一). 연담 선사(蓮潭禪師)의 계보를 이었다. 혜원(慧遠)[?~?]의 생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시 중에 혜원에게 보낸 시 「유일 상인에게 주다[贈有一上人]」가 있고, 그 시의 주(註)에 혜원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어 조선 후기에 정약용과 교유를 했음을...
-
조선 후기 화순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대이(大而), 호는 기천(沂川)이다. 황해도 관찰사 홍춘경(春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 판서 홍성민(洪聖民)이고, 아버지는 병조 참의 홍서익(洪瑞翼)이며, 어머니는 심종민(沈宗敏)의 딸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홍명하(洪命夏)[1608~1668]는 1630년(인조 8) 생원이 되고, 1644년 별...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효종 때의 사람으로 예송 논쟁을 할 때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를 따라 상소를 하였다가 반대파에게 미움을 당하였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원(慶元), 호는 가헌(可軒)·둔재(遯齋). 일송(一松) 홍치(洪治)의 후손이며, 홍계호(洪繼浩)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홍호고(洪好古)이고, 어머니는 제주 양씨 양철남(梁喆南)의 딸이다. 청송 심...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 만연사에 있는 선정암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 관음보살 좌상. 화순 만연사 선정암 목조 관음보살 좌상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머리에는 꽃과 화염문 등이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썼다. 2008년 12월 30일 화순군 향토 문화 유산 제4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12월 20일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277호로 승격되었다....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쌍봉사 명부전에 소재한 조선 후기 지장보살 및 시왕상. 화순 쌍봉사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에서 발견된 조성 발원문과 『능주지 사자산 쌍봉사 제전 기문 집록(綾州地獅子山雙峰寺諸殿記文輯錄)』과 『쌍봉사 사적기(雙峰寺事蹟記)』 등을 통해 이 상은 1667년경 운혜(雲惠)를 비롯한 그의 일파 조각 승들이 참여하...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상류 주택. 화순 양참사댁은 월곡리 월곡 마을에 위치한 제주 양씨 종가이다. 월곡 마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산수화가인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1488~1545]이 정착한 이후 그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조성한 동족 마을이다. 화순 양참사댁은 월곡 마을 안길 우축에 자리하고 있다. 월곡 마을은 동...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상류 주택. 화순 학재 고택은 같은 마을의 화순 양동호 가옥과 함께 제주 양씨 문중의 상류 주택이다. 건립 시기는 18세기 후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현재 두 가옥은 전남의 다른 지역 상류 주택과는 외형과 평면 구성 등에서 건축사적 특징이 드러나는 유적이다. 골짜기 북사면에 자리한 월곡 마을을 진입하면 화순 양동호...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화순 현감 공적비.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인 화순 향교 경내에 있는 조선 시대 역대 화순 현감과 군수의 숭유 중도 공적비 8기이다. 정유재란 뒤 화순 향교 중건에 큰 힘을 보탠 현감 홍명하[1647년 1월~1648년 7월 재임] 숭유 중도비는 신축년에 개건한다. 현감 김준흠 비는 1852년(철종 2) 1월, 현감 김윤현...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정려각. 화순 능주 삼충각(三忠閣)은 능주 지역에서 출생한 최경회(崔慶會)·문홍헌(文弘獻)·조현(曺顯) 등 충신 3인의 충공을 기념하기 위해 1685년(숙종 11)에 능주 향교 유림들이 세운 정려각(旌閭閣)이다. 정려란 본래 충신, 효자, 열녀들이 살던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을 말하는데 오늘날은 대개...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석불 입상. 석재를 이용하여 불상을 만든 것의 통칭을 석불이라고 하는데, 바위에 음각한 마애불, 암굴을 파서 조각한 석굴불 등의 종류가 있다. 석불은 예로부터 신앙의 대상으로 불교가 유입된 삼국 시대 이후 통일 신라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고려 시대에는 어수선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지방마다 특색 있는 석불이 조성되었...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 남덕원과 관련된 비석. 남덕원(南德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출장 중인 관리들의 숙박 장소로 이용하고, 공문 송달이나 물류 수송을 지원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설치한 기관이다. 동복 현감 심지헌(沈之瀗)이 주도하여 1668년(현종 9)에 건립하였다. 글씨는 김진도(金辰道)가 썼다. 남덕원은 독상리의 금계산 기슭에 있었...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쌍봉사 극락전에 있는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화순 쌍봉사 극락전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은 원래 양옆에 협시불인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과 함께 삼존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으나, 1989년 8월경 양 협시불이 도난당하여 이후 새로 조성하였다. 아미타여래 불상은 1694년(숙종 20)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전라남도 유형 문...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쌍봉사 대웅전에 있는 목조 삼존 불상. 화순 쌍봉사 대웅전 목조 삼존 불상은 앉은 모습의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가섭존자상과 아난존자상이 양 옆에 서 있는 특이한 형식을 가진 삼존 불상이다. 쌍봉사 대웅전은 우리나라 유일의 삼층 목탑식 전각이어서 보물로 지정되어 보호하여 왔으나 1984년 불에 타 재건되었다. 불이 난 당시 다행히도...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과 화순읍의 경계의 오성산 일대에 위치한 산성. 산성은 산세를 따라서 산에 쌓은 성으로 특히 우리나라에서 잘 발달되어 현재 중부 이남에만 1,200여 개의 산성터가 남아 있다. 산성은 평상시에 군창(軍倉)을 두고 여기에 곡식과 무기를 준비하여 두며 적이 침입하면 평지의 주민들을 모두 들어오게 하여 농성하는 곳이다. 성이 위치한 지형에 따라 테뫼식, 포...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죽청리에 있는 조선 후기 상류 주택. 화순 이경휴 가옥은 1775년(영조 31)에 안고랑[현 죽청2리]에서 이건한 가옥이다. 안고랑에 있을 당시에는 허장자[부자]와 양씨가 살았다고 한다. 이건을 주도한 이는 광산 이씨 이우채[1710~1756]이며 현 소유자 이경휴는 이우채의 작은 아들 이동철[1748~1805]의 6세손이다. 이 가옥은...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에 있는 조광조의 유허비. 조선 시대 중종 때 학자로 개혁 정치를 추구했던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기묘사화로 능주에 유배되어 사약을 받았는데 1667년(현종 8) 8월 유배지에 유허비를 세웠다. 비문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짓고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1606~1672]이 글씨를...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교리에 있는 화순 향교의 만화루.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인 전라도 화순현의 향교 만화루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집이며 중층 누각형이다. 교생의 강학처와 향시장으로 쓰인 공간이다. 화순읍 화순군청에서 동헌길을 따라 서북쪽으로 600m 거리이다. 너릿재 쪽에서는 교리 삼거리 교차로에서 대교길을 따라 300m를 가다가 교동2길로...
-
1793년에 전라도 화순현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 자연재해는 국가 경제의 중심이 농업에 있었던 전근대 동양 사회에서 흉년과 기근으로 연결되었다. 화순현의 화재 사건은 『일성록』 등의 문헌에 기록이 남은 것으로 볼 때 대형에 속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다. 『일성록』에는 1793년(정조 17)에 ‘전라도 화순현에...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에 있는 조선 후기 류함이 축조한 누정. 환산정은 현재 화순군 동면 백천로 236-1[서성리 147] 서성저수지 안에 위치해 있다. 환산정은 백천(百泉) 류함(柳涵)이 17세 전반에 축조한 누정이다.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류함은 1637년 의병을 일으켜 청주까지 진격해 갔다. 그런데 인조가 강화를 체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해...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서성리에 있는 환산정을 짓고 유함이 읊은 한시. 한시 「환산정을 짓고서」의 작가 유함(柳涵)의 자는 자정(子淨), 호는 백천(百泉), 본관은 문화이며,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다. 그는 조선 선조~광해군 때의 인물로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지봉(芝峯) 이수광(李睡光), 구봉(九峯) 조엽(曺熀)[1600~1665] 등과 교유하였다. 병자호란 때 청...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효부. 본적은 경주(慶州). 황재출(黃再出)의 부인이다. 황재출 처 경주 최씨(黃再出 妻 慶州 崔氏)[?~?]는 여자의 덕을 잘 갖추고 시부모를 정성스럽게 섬기며 효도하였다. 집에 불이 나서 늙으신 시어머니를 구하러 방에 들어갔다. 시어머니를 업고 나오다가 불길을 뚫고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 조정에서 1794년(정조 18)에 정려(旌閭)를 내렸...
-
조선 후기 동복 현감을 지낸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이고, 자는 명보(明甫), 시호는 무민(武愍)이다. 1591년 동복현감을 지냈고, 익산 군수,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순절하였다. 황희(黃喜)의 5세손이고, 지중추부사 황사효(黃事孝)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부사직 황개(黃塏)이고, 아버지는 증좌의정 황윤공(黃允恭), 어머니는 방씨(房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