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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 출신의 국악인. 공기남(孔基南)[1917~1971]은 선천적인 음성과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특유의 소질을 가지고 동편과 서편 소리를 두루 섭렵하였다. 16세 때 아버지 공창식(孔昌植)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19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판소리 명창 박동실(朴東實)에게 판소리를 배운 후 5마당 소리를 두루 잘했으며,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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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구대진(具大振)[?~?]은 능성 구씨의 후예로서 단가·잡가·한시·시조·산무 등에 능하여 능주와 나주의 풍류계에서 명망이 높았다. 특히 명기·명창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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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소리를 소재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고유의 전통 음악. 국악은 우리의 전통 음악을 일컫는다. 전라남도 화순군에서는 양반들이 즐기던 시조(時調), 가곡(歌曲), 가사(歌詞) 등의 풍류 음악과 민간 예술인 판소리, 산조(散調), 그리고 민중의 음악이었던 민요(民謠)와 농악(農樂)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이 전승되고 있다. 화순군에는 일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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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악 동호인 친목 단체. 국악을 아끼고 판소리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판소리와 소리북을 학습하면서 친목을 도모하고, 지역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1972년 조기철[화순군 청풍면 차리]을 중심으로 이광옥 외 6명이 함께 했으며, 국악을 사랑한다고 하여 국악계로 이름을 지었다. 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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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김규열(金圭烈)[1910~?]은 일찍이 국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했으며 시조를 전공했다. 전국 시조 명창 대회 심사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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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출신의 석공예 장인. 김성용(金成龍)[1900~?]은 일찍 석공으로 입문하여 석질과 조형미의 안목이 밝아 명인들의 신도비, 정려문 등을 제작하여 높이 평가 받았다. 특히 운룡 롱주(雲龍弄珠)의 조각은 절묘하여 양각의 비천상은 많은 사람들을 감탄케 했다. 타 지방을 주유하면서 작품을 남겼으나 화순에는 이름만 전할 뿐 작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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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김학섭(金鶴燮)[?~?]의 호는 여송(與松)으로 박식한 선비로 존경받았다. 일본 유학시절에는 항일운동을 한 애국 지사이기도 한 김학섭은 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판소리에 조예가 깊었다. 「춘향가」 중 범피중류가 특징이었다고 한다. 가곡과 가사에도 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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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조화장으로 활동한 장인. 김행년(金行撚)[?~?]은 화순군에서 활동하였으며, 애·경사 즉 혼인·초상에 쓰이는 꽃과 절에서 불사에 쓰였던 연등에서부터 모든 꽃들을 만들었다. 국화·모란·장미·매화 등 모든 꽃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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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예치 출신으로 석각에 능한 석공.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노칠암(盧七岩)[1912~?]은 평생 동안 석각에만 종사하였고, 주로 음각을 전공하였는데 조각의 솜씨가 뛰어나 육필보다 각서가 뛰어나게 좋아서 많은 문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석공들과의 협업을 주로 하는 석각 장인으로서 대표하는 작품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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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문학, 국악, 연예, 음악, 사진, 공예, 서예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 화순군은 충의 열사 등 인걸이 많이 배출되었고 산자수명한 자연과 순후한 인심은 많은 문화 예술인을 낳았으니 의향이요, 예향·문향이라고 부른다. 고려 시대 불교의 선문 염송집을 집대성한 진각 국사와 조선 시대 거유로 산수도를 남긴 양팽손, 임진왜란의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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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장동리 출신의 국악인 박농월(朴弄月)[1922~?]은 화순군 동면 장동리에서 태어나 광주광역시 남도 권번에서 기예를 닦았으며, 면모가 아름답고 품행이 방정하였다.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인 박기홍 문하에서 15세인 박송희와 함께 단가 「뒷동산」, 「인호상이」, 「만고강산」 그리고 「흥보가」 중 ‘흥보 쫓겨나는데’, ‘흥보 집터 잡는데’,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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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마산리 출신의 국악인 박농주(朴弄珠)[1925~?]는 품행이 단정하고 예의가 바르다고 하여 주위의 존경을 받았다.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고법을 가르치던 명무이자 명고수인 이대조에게 소리를 배웠으며,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심청가」와 「춘향가」를 잘했다. 1953년 박농주는 국악인 조정애에게 박정자를 소개받아서 「유관순전」을 가르쳤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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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교리 출신의 국악인. 박봉선(朴鳳仙)[1917~?]은 화순군 화순읍 교리에서 태어났다. 명창 박초선과 사촌간이며 강남중과 살았다 한다. 박동실에게 판소리를, 김종기에게 가야금을 배웠다 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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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출신의 문 장식을 전문으로 하는 장식장(裝飾匠). 박삼칠(朴三七)[1880~?]은 1880년 화순군 백아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철 장식을 시작하였고, 문 장식 스승을 만나 기술을 터득하였다. 문에 하는 장식은 다양하여 수복 문양, 사군자 문양 등 갖가지 정교한 문양은 보는 사람들로 감탄하게 하였다. 전(殿)·각(閣)·사우(祠宇)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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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이자 무용인. 박영구(朴永求)[?~?]는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훈리 출신이다. 남도 검무의 일인자로 알려졌으며 호남 국악계의 대표적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검무 이외에도 승무 등 무용에 능했으며 대금·양금·가야금 등의 악기에도 조예가 깊었다. 광주 남정 권번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는데 예절 교육과 철저한 법도를 세워 큰스승으로 존경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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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일원에서 박영구가 추었던 대표적인 춤. 오늘날 추어지고 있는 호남 검무는 이장선·이창조·신갑도의 검무를 체계화 시킨 한진옥류 검무와 이대조·이창조의 검무를 체계화 시킨 이매방류 검무 등이 있다. 그러나 박영구가 잘 추었다는 검무는 현재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매방은 박영구에게 북 가락을 배워 오늘날 이매방 승무의 법고무가 탄생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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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악 동호인 친목 단체. 1960년대에 서구의 물질 중심의 신문화가 유입되면서 우리의 고유한 전통들이 경시되고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화순군의 애향 인사 강동원[1940년생]을 중심으로 김옥철·김사갑 등이 명창 하재옥[강도근 명창의 제자]에게 판소리를 배우면서 뜻을 모아 1965년 국악 동호인 친목계인 ‘서양계(瑞楊契)’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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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화가이자 공예가. 손동(孫棟)[1924~1991]은 광주 서석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다 미술 학교[川端畵學校]에서 미술 수업을 받고 귀국해 광주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3년과 1944년 선전[조선 미술 전람회]에 입상하여 실력을 인정받고 1947년 광주 숭일 중학교와 광양 중학교, 순천 사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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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에서 활동한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안여(顔汝), 호는 사호(沙湖). 만년에는 노호(老湖)라 하기도 하였으며 동복(同福)에 은거하여 살았다. 호남 지방에서 일생동안 서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소치 허련의 화풍에 영향을 받아 산수화와 묵죽도, 매화도 등 많은 작품을 남긴 예술가이다. 송수면(宋修勉)[1847~1916]은 화순군 남면 사평리에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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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출신의 국악인 신평일(申平日)[1921~?]은 화순군 도곡면에서 태어났다. 명창 임방울의 부인인 신금월의 오빠이다. 정철호, 임준옥, 장월중선과 함께 임방울에게 소리를 배웠다. 신평일은 지방 소리꾼으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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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국악인 가야금 산조 명인 안기옥의 동생이며 서편제 판소리의 맥을 잇는 여류 명창인 안채봉의 사촌 오빠이고, 딸은 창극인 안행련이다. 안기선(安基善)[1904~?]은 판소리 다섯 마당을 두루 잘했다. 지방에서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고, 성우향, 박초선, 신영희, 박송희에게 소리를 가르쳤다. 부인과 딸들은 안향련을 제외하고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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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양농주(梁弄珠)[1875~?]는 말과 행동이 무거웠고 맵시가 뛰어나 재색을 겸비한 명기로 이름을 날렸다. 가무에 능했으며 가곡과 가사에 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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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기녀. 양학(梁鶴)[1875~?]은 제주 양씨로서 인품이 단아하고 학문 또한 깊었다고 한다. 시조·가곡·가사에 능통했으며 한시와 사군자에도 능하여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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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활동한 국악인 염금달(廉今達)[1920~1950]은 1920년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화순읍 유천리로 이거하였다 천부적인 성대와 뛰어난 맵시를 지닌 소리꾼으로 예인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누렸다. 조선 후기에 더늠 소리를 넣어 득음하였던 창자들을 8명창으로 구분하였는데, 그 당시 8명창의 뒤를 이을 뛰어난 소리꾼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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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윤씨 가문으로 출가해 온 자수장(刺繡匠). 영산 신씨 부인(靈山 辛氏 夫人)[?~?]은 윤씨 가문에 출가하여 일찍 상배하고 홀로 살면서 바느질과 자수를 전공하게 되었는데 솜씨가 비범하여 화초봉접(花草蜂蝶)·매란국죽(梅蘭菊竹)·십장생도(十長生圖) 등을 능달한 솜씨로써 표현하여 세상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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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활동한 거문고 명인. 오똘남(吳突男)[1920~1950]은 거문고 명인이다. 오진석의 조카이며 양자이고, 명창 조몽실의 조카이다. 거문고로 새소리 등 모든 소리를 만들어낼 정도의 명인으로 백결 선생의 후신이라고 일컬어졌다. 6·25 전쟁 당시 공비들이 그를 사살하려 하자 마을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표창을 받은 거문고의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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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서양화가. 오승윤(吳承潤)[1940~2006]은 오지호 화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조선 대학교 부속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으며 홍익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의 아카데미 드 라그랑드 쇼미에르 등에서 공부했다. 특히 한국의 자연과 전통 문화 등을 표현한 구상 미술에 몰두했다. 1982년 전남 대학교 예술 대학을 창설하여 후학 양성에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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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국악인. 오재민(吳在珉)[1918~?]은 명문 가문인 동복 오씨 후예로 박학다식하며 전통 예술에 남다른 관심과 조예가 깊었다. 일찍이 전국 궁도 대회에서 개인 부분 장원을 차지할 정도로 궁도도 잘하였다.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전주 대사습 고수 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했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전해질 정도로 명고수이다. 판소리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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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대금 명인. 오진석(吳鎭錫)[?~?]은 재인 집안 출신으로 거문고 명인인 오똘남의 양아버지이며 대금 명인 한주환의 이모부이기도 하다. 항상 묵묵히 말이 없으며 품행이 방정해서 많은 한량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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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살았던 각포에 능한 사람. 윤달노(尹達老)[?~?]는 마른 문어를 조각하여 제상 및 경축 연회상에 놓았다. 봉황이나 용 또는 매화, 국화, 화초봉접을 조각하여 진수성찬 연회상에 화심(花心)처럼 중앙에 놓아 음식의 미각을 돋우고 품위를 높이며 금상첨화로 시각미를 살렸다. 혼인상에는 봉화를 새겼고 회갑상에는 국화를 썼고 돌잔치 상에는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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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풍류객. 본관은 평택(平澤). 호는 호석(湖石). 임석윤(林錫潤)[1907~1976]은 명망이 있는 가문인 평택 임씨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풍류를 즐긴 풍류객이다. 거문고와 가곡·가사를 전공하여 거문고 명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김용남과 김연수에게 거문고 풍류와 가곡을 배웠으며, 말년에는 서울에 살면서 가곡의 명인 이주환(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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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차동 출신의 장식장. 장판덕(張判德)[1905~?]은 일찍이 장식 공방에서 수업을 하여 장식공으로 상경하였다. 서울 장안 부호들의 가구를 보수하면서 금·은·동·철 등에 사군자·십장생도 등을 조각하였다. 모든 조각이 섬세하면서 세련미가 넘쳐 ‘장판덕 장식’이란 이름까지 얻었다. 학계에서도 관심이 깊어 문화재 평가를 받았으나 지정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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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전통 목공예 방식으로 제작되는 가구. 화순 지역에서는 귀목, 향나무, 오동나무를 주로 사용하여 문갑, 관복장, 사방탁자, 경상 등 섬세하면서 조촐하고 소박한 맛을 풍기는 전통 작품을 만들어 왔다. 목공예로 유명한 사람은 국가 중요 무형 문화재였던 송추만이 있고 현재는 이건이 전승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건 장인은 화순군 동복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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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무용. 화순군 일대에서 전승되었던 전통 무용은 오늘날 그 전승이 끊겨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 미미하나마 구술과 관련 문헌을 통해 과거의 덧배기 춤, 줄 승무, 호남 검무 등이 화순 지역에서 상당히 성행하였다는 것과 지역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이를 좋아했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는 계승이 끊긴 상태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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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가야금 명인. 정백옥(鄭白玉)[?~?]은 피리와 가야금에 능했으며 가야금을 직접 제작하여 썼다. 중요 무형 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의 예능 보유자인 정달영이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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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 출신의 국악인 정옥진(鄭玉珍)[1925~?]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에서 태어났다. 정옥진은 침착한 성격을 지녔으며 나직한 목소리로써 저음 사용에 뛰어난 여성 소리꾼이었다. 판소리 다섯마당에서 「춘향가」를 잘 하였고, 주로 광주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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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출신의 대목장. 정용순(鄭龍淳)[?~?]은 청풍 출신으로 일찍이 치목(治木)의 기량과 재능이 뛰어나 평생을 타향에서 건축물의 중수·보수 사업에 종사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비각·정려각 등의 정교한 작품을 남겼고, 나주 지방에서는 ‘정대목’으로 매우 유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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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출신의 대목장인. 정찬숙(鄭燦叔)은 화순 출신을 대표하는 대목장으로 어려서 장흥 대목으로부터 공법을 전수받아 대목이 되었다. 손기술이 뛰어나고 정예하여 모든 고건축에 솜씨가 능숙하였다. 신의 경지에 이른 기예로 그 앞에서는 한낱 나무의 형태가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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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 출신의 국악인 조경환(曺京煥)[1885~?]은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에서 태어났다. 풍채가 두목지를 연상케 하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의 풍모를 지녀서 조백(曺伯)이라고도 불렀다. 판소리 다섯 마당을 고루 잘해서 국창으로 예우를 받았다. 국창 송만갑이 조경환을 찾아와 그의 소리를 들은 후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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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출신의 국악인. 조계남(曺桂南)[1916~1987]은 당대 최고의 고수였던 조종엽의 아들로 능주 신청(神廳)이 없어진 이후 능주 지역을 중심으로 사라져 가는 전통 국악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전승하려 하였다. 다재 다능한 조계남은 능주 삼현육각의 전통 음악을 피리 시나위 가락으로 맥을 이어 왔으며, 능주 씻김굿의 음악에 접목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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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출신의 가야금 명인. 조명수(曺明洙)[1907~1937]는 태도가 곱고, 얼굴이 맑아 달덩이처럼 예쁘다고 하여 ‘조떵어리’ 또는 ‘조떵구’라는 애칭을 지니기도 했다. 슬하에 조순애가 있다. 조명수(曺明洙)는 가야금 산조와 풍류의 거장으로 다양한 국악기를 섭렵하였다. 조선 성악 연구회 외교 이사를 맡아보며 1936년 2월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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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대금 및 피리의 명인. 조병문(曺秉文)[1880~?]은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지속되었던 능주 신청(神廳)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대금과 피리에 능해서 남도 각처 풍류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대금은 당대의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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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국악인이자 무용인. 조병현(曺炳鉉)[1885~?]은 시조·가곡·가사에 능한 국악인이었다. 또한 덧배기춤으로 호남의 명무(名舞)로 알려졌다. 명고수로도 유명해서 명창 임방울을 비롯한 여러 남도 소리꾼들이 찾아와 소리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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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출신의 국악인. 조상선(曺相善)[1903~?]은 당대 국창 정정렬에게 판소리를 사사하여 그의 수제자로 불렸고, 창극 작곡과 연출의 천재로 알려졌다. 1933년 전통 음악의 공연과 전수를 목적으로 창립된 조선 성악 연구회에서 연주자로 크게 활약하였고, 후진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박초선에게 시조를 가르쳤다. 그는 월북하여서 생사를 파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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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조상엽(曺相燁)[?~?]은 능주 신청(神廳)의 우두머리인 대방(大房)을 역임했다. 당대 최고의 고수였으며 승무로도 명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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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잠정리 출신의 국악인. 조송문(曺松文)은 세피리에 능해서 많은 선비와 한량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가곡, 가시, 시조의 전주(前奏)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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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서 활동한 부채를 만드는 장인(匠人). 조정달(曺正達)[?~?]은 화순군 능주면에 거주하며 한평생을 제선업(製煽業)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그가 고인이 된 후 제선업의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개인 소장의 특성으로 인하여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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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출신의 대목장. 조정원(趙正元)은 일찍이 고건축 공법을 연수하면서 당시 유명했던 구례의 도편수 설씨를 만나 정교한 비전 공법을 전수 받았다. 그 후 대목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지리산 이남 지역에서 유명하였다. 많은 사찰에 중수 불사를 도왔다. 대표적인 정교한 솜씨가 순천 송광사에 많았으나 6·25 전쟁 때 모두 소실되어 작품을 찾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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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군 출신의 예인. 조종률(曺鍾律)[1846~?]은 예인(藝人) 집안에서 태어났다. 능주 일대에서 유명하였으며 동생 조종엽(曺鍾葉)과 함께 활동을 하였다. 한말 고종 황제 앞에서 한강 변에 줄을 메고 그 위에서 승무를 추었더니 고종이 감탄하여 정구품(正九品)인 의관(議官)벼슬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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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국악인. 조종엽(曺鍾燁)[1876~1942]은 일명 ‘조상엽’, ‘조상언’이라고도 불렸다. 형 조종률과 함께 고종(高宗) 황제 앞에서 줄을 타 의관이란 벼슬을 하사받은 줄타기의 명수였다. 능주 신청(神廳)의 우두머리인 대방(大房)을 지냈는데, 당대 최고의 고수였으며 승무로도 명성이 높았다. 주로 한양을 무대로 줄을 탔던 조종엽은 임금으로부터 하사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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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출신의 조화 장인. 조형범[?~?]은 화순군과 능주면을 중심으로 각종 애·경사를 치르는 집안의 장식 조화를 활발히 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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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풍류객. 주기준(朱基俊)[1904~?]은 신안 주씨로 명문가 출신의 문사이다. 일찍부터 풍류를 즐겨 시조와 한시에 능해 선망을 받았다. 이외에도 북과 산무(散舞)에 능했으며 사군자와 궁도에도 비범한 솜씨를 보였다. 면장을 역임하면서 덕망이 높아 공적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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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군 출신의 국악인. 주봉현(朱鳳鉉)[1875~?]은 성품이 강직하고 기골이 장대하여 위엄이 관운장을 연상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외모와는 달리 판소리에 대단한 예술적 안목이 있어 소리꾼들은 그의 예리한 지적과 추상같은 질정에 모두 넋을 잃었다고 한다. 호남 최고의 명고수로 이름이 높았으며 소리꾼들 사이에서 “능주 주봉현 선생 북에 때를 벗겨야 올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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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주응조(朱應祚)[1875~?]는 화순군 능주 출신의 국악인이다. 인품이 준수했고 당대의 명고수로 이름을 날렸다. 화순의 명고수인 주봉현과 사촌간이다. 산무(散舞)에 능한 무용인이기도 했다. 시조, 가곡, 가사에 능해 한량들 세계에서 선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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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소목장. 최경만(崔京萬)[1902~?]은 주로 소반을 만든 장인으로 화순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나 일정한 거주 지역이 없이 자주 이주하여 다녔다. 구족상, 호족상, 반상, 면상, 주안상, 제상 등 모든 상을 만들었으며, 특히 상의 옆 사면에 사군자를 음각으로 새겼으며 또는 낙화를 놓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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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전승되는 서사적인 1인극 음악.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북 장단에 맞추어 장편의 이야기를 소리, 아니리, 발림을 통해 노래하는 음악이다. 판소리는 조선 후기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18세기 유진한(柳振漢)의 『만화본 춘향가(晩華本 春香歌)』에 춘향가 사설이 적힌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는 현재와 같은 형식의 판소리가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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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 출신의 국악인. 한일섭(韓一燮)[1929~1973]은 「아쟁 산조」와 「호적 산조」를 발표함으로 민속악 연주곡을 넓히는데 공헌한 명고수이다. 할아버지는 대금과 가야금의 명인 한덕만이고, 아버지는 한경태이며, 작은 아버지는 판소리 명창 한성태이다. 사촌 형제는 창극배우 한갑순, 중요 무형 문화재 제16호 거문고 산조 예능 보유자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