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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군민과 광주 시민의 상수원, 동복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001
한자 和順郡民-光州市民-上水原-同福-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철웅

[개설]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서리에 있는 동복댐은 화순 군민과 광주광역시민이 먹는 중요한 식수원이다. 1985년 섬진강의 지류인 동복천에 높이 44.7m, 길이 188m의 규모로 세운 댐이다. 원래 댐의 직상류에 1971년에 광주광역시가 건설한 높이 19.3m, 길이 133.8m의 구 동복댐이 있었으나, 광주광역시가 상수도 용수 수요의 증가에 대처하기 위하여 광주광역시로부터 남동쪽으로 약 20㎞ 떨어진 곳에 1982년 11월부터 1985년 7월 사이에 건설하였다. 만수 면적 6.61㎢, 총 저수용량 9900만㎥, 유역 면적 189㎢로 하루 25만㎥의 상수도용 원수를 광주광역시에 공급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동복댐에서 하루 8만㎥의 식수를 공급 받았으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여 댐 정상을 높여 용수 공급량을 10만 5000㎥로 증대하였다. 급격한 인구 증가와 산업화는 광주광역시의 용수 수요를 증가시켰으며, 광주광역시는 용수 수요 증가에 대한 추가적인 대책을 수립하게 되었다. 화순군 상수도는 1977년 시설 용량 4,000㎥/일의 정수 시설을 준공하여 동복댐 호소수[광주광역시 취수원]를 공급받아 정수 생산을 개시하였으며 2001년부터 급속 여과 공정으로 시설을 변경 및 증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수원인 동복천의 특성]

동복천은 별산[687m]-안양산[853m]-무등산[1,187m]-연산[505m]-기우산[419m]-차일봉[667m]-백아산[810m]-옹성산[573m]의 산열을 유역 분수계로 삼고 있다. 동복천의 주요 지류 하천은 안양산에서 발원한 안심천, 무등산에서 발원한 이서천, 까치봉에서 발원한 남천, 만덕산에서 발원한 대덕천, 차일봉에서 발원한 동복천, 백아산에서 발원한 내복천 등이다. 이들 지류 하천이 창랑리, 도석리, 보산리 일대로 집수하여 동복호를 이룬다. 지류 하천은 동복천의 최상류 하천으로 산지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으며 산지 사이를 흐르는 산지 하천의 특색을 보인다. 하천 양안에는 충적층으로 이루어진 곡저 평야가 하천을 따라 좁고 길게 형성되어 있다.

이 척박한 산지 지역이 화순군에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삶의 터전 중 그나마 인구 부양력이 다소 높게 나타나는 산간 분지는 지류 하천이 합류하는 곳에서 발달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이서천, 장복천, 안심천이 합류하는 보월리이서천, 남천동복천이 합류하는 임곡리, 길성천과 내복천이 합류하는 와천리 등이다.

동복천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68호인 적벽을 휘감고 흘러 적벽강이라 불리기도 하고, 일명 달천이라고도 불린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의 갈등]

광주광역시의 상수원인 동복댐 주변 정비 사업비를 놓고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가 10년째 공방을 벌이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전라남도는 2003년부터 동복댐[화순군 이서면] 인근 정비 사업비로 200억 원을 지원해달라고 광주광역시에 요청해 왔다. 전라남도는 2001년 제정된 「댐건설 및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댐과 인근 지역을 관리하는 광주광역시가 주민들의 편의 증진을 위해 사업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85년 준공된 동복댐은 상수도 보호 구역으로 지정돼 광주광역시 상수도 사업 본부의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관련법에 따라 편의 시설 정비 등을 위해 사업비 지원을 요청했지만 시는 예산 부족과 강제 조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루고 있다.며"같은 행정 기관의 입장이라 강요할 수 없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이에 광주광역시는 “사업비 지원은 강제 조항이 아닌 임의 규정으로 삽입된 조항”이라며 “댐 건설 당시 부채를 현재 상환하고 있어 사업비 지원은 당장 어려운 실정이지만, 2002년부터 ‘동복댐 주변 지원 사업’에 55억 원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수몰민의 애환]

동복댐동복천 상류 지류 하천의 집수 지역의 협곡에 댐을 쌓고 강물을 막아 광주 시민과 화순 군민의 식수난을 해결하는 상수도원이 되었다. 동복댐 공사의 1차 공사가 시작된 것은 1968년부터이며 1970년에 완공되었으나 수원의 부족으로 1984년 확장 공사로 당초 댐 높이 19.5m 에서 44.7m로 높이고 제방 길이 188m에 담수능력 9,200만 톤을 저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수몰 면적은 6.6㎢가 되었다. 동복댐 확장 공사로 수몰된 마을은 이서면 서리, 월산리 1구인 월평 마을, 2구인 장월 마을, 보산리 1구인 보산 마을, 2구인 난산 마을, 장학리 1구인 장항 마을, 2구인 학당 마을, 창랑리 1구인 창랑 마을, 2구인 물염 마을, 도석리 1구인 석림 마을, 2구인 석보 마을, 3구인 전도 마을과 야사리의 일부와 북면 와천리, 다곡리, 임곡리의 일부가 수몰되었다.

1982년 광주광역시 수도국이 광주 시민의 식수 공급을 위해 동복 수원지 확장 공사를 시행하면서 이 일대 200여 호가 물에 잠겨 800여 농민이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광주광역시는 주민들에게 ‘선 보상, 후 착공’을 약속했으나 1982년 7월 경강에 공사를 시작하면서 전액 보상했어야 할 것을 1985년까지 조금씩 분할 보상했고 그나마 받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다. 더구나 보상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담수를 하여 1985년 5윌 5~7 일 사이에 137여 마을이 물속에 잠기게 되었다. 예고도 없는 담수로 정미소, 주택, 경운기, 소, 돼지, 농약, 농작물, 살림살이 등을 제대로 꺼내지도 못한 채 농민들은 몸만 피하여 연근 산에서 1주일 가량 야영 생활을 하였다. 또한 덜 잠긴 집은 중장비로 헐어 불을 지르고 정미소는 물속에 잠기게 한 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기도 했다. 당시 주민들의 애환이 서린 동복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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