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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007
한자 -指定-世界文化遺産-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춘양면 대신리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영문

[개설]

세계 유산이란 유네스코가 1972년 11월 제17차 정기 총회에서 채택한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에 따라 등재한 유산이다. 인류 문명과 자연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산인 세계 유산은 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이를 후손에게 전수해야 할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 유산이다. 우리나라는 1988년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에 가입하였으며 1995년 12월 베를린에서 개최된 세계 유산 위원회 제19차 회의에서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 종묘, 해인사 팔만대장경 및 판전이, 제21차 회의[1997, 나폴리]에서는 수원 화성과 창덕궁이, 2000년 호주 케언즈에서는 경주 역사 지구와 화순, 고창, 강화 고인돌 유적, 2009년 조선 왕릉 등이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화순 고인돌 떼도곡면 효산리 모산 마을춘양면 대신리 지동 마을[못골]에 걸쳐 있다. 이 유적은 1998년 9월 17일 사적 제410호[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로 등재되었고, 2000년 12월 2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화순 고인돌 떼의 핵심 구역은 200㏊, 보호 구역은 47.39㏊ 등 총 지정 면적은 247.46㏊이다.

[화순 고인돌 발견과 조사 경위]

화순 고인돌은 1995년 능주목봉서루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된 『능주목의 역사와 문화』 편찬 중 주변 일대에 대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목포 대학교 교수인 이영문에 의해 발견되었다. 1995년 12월 15일 도곡 효산리 모산 마을 당산나무 고인돌이 조사되어 보검재로 통하는 계곡을 따라 조사하면서 그 분포가 확인되었다. 또 보검재 너머에 있는 춘양 대신리 지동 고인돌은 그 다음날인 12월 16일 조사하여 밝혀지게 된 것이다. 세계 유산 등재를 위해 1998년 도곡면 효산리춘양면 대신리 일대에 대해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하여 효산리 277기, 대신리에 319기로 총 596기가 분포되어 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 후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전후해 발굴 사업이 이루어졌는데, 2000년부터 2013년까지 5차례의 발굴 조사가 있었다.

[화순 고인돌 세계 문화유산 등재 과정]

화순 고인돌은 1995년에 발견되어 보고된 유적으로 주변 지형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산기슭에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1997년부터 고인돌에 대한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논의하기 시작하여 1998년부터 선정 작업에 착수하였는데, 처음에는 전라북도 고창 고인돌을 대상으로 하였다. 하지만 고인돌이 집중 분포된 전라남도 지역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전라남도 지역의 고인돌 유적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세계 유산은 원래 모습이 잘 보존되고 주변 환경이 훼손되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는 견해에 따라 장흥 방촌리 등 여러 곳을 대상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의 답사와 자문 회의를 통해 화순 효산리대신리 지역 고인돌이 추천되었다. 세계 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1998년에 이 지역에 대한 정밀 지표 조사를 실시한 후 1998년 6월 18일에 국가 사적 지정을 신청하여 같은 해 9월 17일 사적 제410호[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로 지정되었다. 이와 함께 1998년 7월 31일에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잠정 목록으로 올려서 국내외 학자들의 학술 회의를 진행하는 등 고인돌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한 연구를 계속적으로 보완하는 작업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서 전라북도 고창과 전라남도 화순 고인돌 이외 인천 강화 고인돌이 포함되어 1999년 6월 28일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록 신청서를 문화재청과 외교 통상부를 경유하여 세계 유산 위원회 사무국에 제출하였다. 2000년 12월 2일 호주 케언즈에서 열린 제24차 유네스코 세계 유산 위원회 의장단 회의에서 통과되어,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정식 등재되었다.

[세계 유산 등재 이유와 효과]

화순, 고창, 강화 지역은 한국에서도 가장 밀집도가 높고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또한 고인돌 축조 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의 존재 등 우리나라 고인돌의 기원 및 성격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고인돌 변천사를 규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인정하여 세계 유산 위원회에서는 등재 기준 제3항 즉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것’을 적용하여 세계 유산의 가치를 인정하였다.

화순 등의 고인돌은 세계 유산에 등재됨으로서 국내, 국외로부터 관광객이 크게 증가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고용 기회와 수입이 늘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추가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지역의 계획과 관리를 향상시킬 수도 있다. 또한 세계 유산의 등재는 유산에 대한 지역 및 국가의 자부심을 고취시켜 지역을 보호해야겠다는 국가적인 책임감을 형성시키기도 하였다.

[화순 고인돌의 분포 현황]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도곡면 효산리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보검재 양 계곡 일대에 걸쳐 있다. 화순 고인돌 떼는 영산강 지류인 지석강 주변에 형성된 넓은 평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평지의 남쪽 산기슭을 따라 고인돌들이 연이어 분포하고 있는데, 이 고인돌 떼는 약 10여 ㎞에 걸쳐 나타난다. 고인돌의 분포는 마을 앞 평지, 마을 내도 있지만 대부분 계곡의 동쪽 산기슭을 따라 군집되어 입지해 있다. 춘양면 대신리 고인돌은 해발 65m에서 125m 사이에 있으며, 도곡면 효산리는 45m에서 90m 사이로 평지에서의 상대 높이인 비고는 각각 60m와 45m이다.

화순 도곡면 효산리 고인돌 떼는 보검재[188.5m] 산기슭에서 모산 마을 앞까지 해발 45~90m 사이에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 하부가 드러난 것 25기, 덮개돌로 추정된 것이 133기 등 총 158기로 추정된다. 덮개돌의 하부가 매몰되어 있거나 도괴된 것 가운데 덮개돌의 형태를 한 석재는 119기이다. 고인돌을 조성하기 위해 채석하여 옮겨온 것을 포함한다면 적어도 277기 이상이다. 효산리 고인돌 떼는 모두 7개 군으로 나누어진다. 각 고인돌 떼의 동쪽 산 정상에는 채석이 용이한 암반층이 있고, 그 암반에는 인위적으로 떼어낸 흔적이 있다. 암반 주변과 고인돌 떼가 조사된 주변 일대에는 크고 작은 석재들이 산재되어 있다.

춘양면 대신리 고인돌 떼는 보검재에서 지동 마을로 뻗어 있는 산 구릉상[높이 70~120m]으로 1㎞에 걸쳐 분포한다. 구릉의 끝자락으로 높이 70m 이하에는 지동 마을이 있다. 고인돌은 마을 내와 주변 농경지 등에도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 하부가 드러난 것 22기, 덮개돌로 추정된 것 105기, 석실 2기 등 129기가 고인돌로 추정된다. 하부가 묻힌 석재나 덮개돌 형태를 보이는 것도 190여 기가 넘어 이것을 포함한다면 300여 기 이상이다. 조사된 고인돌 중 받침돌이 있는 기반식은 23기이다. 고인돌은 산 계곡을 따라 모두 6개 군으로 나누어진다.

[화순 고인돌의 특징]

화순 고인돌의 특징은 첫째, 좁은 지역 안에 596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어 다른 고인돌 떼에 비해 매우 밀집된 분포상을 보이고 있다. 둘째, 100톤 이상의 커다란 고인돌 수십 기가 있고, 크게는 280여 톤 규모의 고인돌도 있다. 이는 거석문화로서의 고인돌을 이해하는 데 실증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셋째, 숫자의 방대함과 함께 여러 개의 판석상 석재를 이용해 지상에 노출되게 짜 맞춘 지상 석곽형, 바둑판 형태의 기반식 고인돌, 지석이 보이지 않는 무지석형 고인돌 등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들이 공존하고 있다. 넷째, 화순 고인돌 떼는 계곡의 산기슭을 따라 띄엄띄엄 군집되어 있고, 개발이 안 된 지역이어서 주변 환경이 비교적 원상을 유지하고 있어 다른 유적보다도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다섯째, 고인돌의 상석을 채석하였던 채석장과 채석하다만 석재 등이 남아 있고, 그 아래에는 여러 형태의 고인돌들을 볼 수 있어 고인돌의 축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여섯째, 고인돌과 군집 지역에 대한 지명과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괴바위나 감태바위 등의 지명과 마고 할머니 전설 등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고, 신앙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춘양면 대신리 고인돌의 발굴로 무덤임이 확인되었고, 부장 풍습의 일면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축조 시기는 기원전 500년에서 800년 사이로 과학적인 연대 측정이 이루어졌지만 일부 유물로 보아 기원전 1000년 이상으로 소급될 수 있다.

[화순 고인돌 세계 문화유산 등재 의미]

화순 고인돌이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게 된 이유는 먼저 산 계곡을 따라 고인돌이 무리지어 분포되어 있고 사람의 힘으로 축조가 불가사의한 고인돌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 고인돌 덮개돌을 떼어낸 채석장이 인근에 있어 고인돌을 축조할 수 있는 환경이 구비된 곳이며, 고인돌의 여러 형태들이 한 곳에서 나타난 산교육장이기 때문이다. 또 비교적 옛 모습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산 위쪽에 웅장한 암반들이 형성되어 있는 등 자연 환경과 어우러져 있는 하나의 자연 속의 고인돌이라는 큰 장점이 있다. 화순 고인돌은 거대한 바위를 이용해 만들어진 2,000~3,000년 전의 무덤과 장례 의식의 기념물로서 선사 시대 문화가 함축적으로 집약되어 있는, 당시의 기술과 사회 현상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 주는 문화 유적이다.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세계에서 하나의 거석문화 발상지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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