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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172
한자 石庫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석고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건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석고리 개설
성격 법정리
면적 0.6㎢
가구수 207가구
인구[남,여] 448명[남자 225명, 여자 223명]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화순군 능주면 석고리는 고동(庫洞)·간리·서문내·서문외·관동·빙동·거석리(擧石里) 등 7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명칭 유래]

석고리의 지명은 거석리 마을의 석(石)자와 고동 마을의 고(庫)자를 각각 취하여 만든 것이다. 거석리 마을은 마을에 커다란 바위가 입석으로 세워져 있어 이를 두고 ‘거석’이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고동 마을은 원래 고후리(庫後里), 즉 ‘창고 뒤에’라는 이름으로 쓰이다가 고동(庫洞)으로 줄었다. 과거 읍창(邑倉) 뒤쪽에 해당되므로 그렇게 불렀다.

간리 마을은 사싯몰 마을이라고도 한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흐르는 내를 냇물[사잇물]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와전되어 사싯몰이 되었다. 물가에 위치한 마을을 ‘사싯물’이라 한 것이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간리(澗里)가 되었다.

서문내 마을은 능주목의 서문 안쪽에 있으므로 서문안이라 하며 한자로 표기시 서문내(西門內)라 한다. 서문외 마을은 능주목의 서문 바깥쪽에 되므로 서문밖에 라고 하였으며 나아가 섬바께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자로 표기하면 서문외(西門外)라 한다. 관동 마을 일부는 종대 삼거리 부근을 말하며, 빙동 마을 일부는 핑깃등시암 주변으로 일부가 석고리에 편입되었다.

[형성 및 변천]

석고리는 1789년 『호구 총수』에는 능주목(綾州牧) 주내면(州內面) 거석리(擧石里), 고후리(庫後里)·간리(間里)·서문내리(西門內里)로 기록되어 있으며, 1867년에 『대동지지』에는 능주목 주내면, 1895년에는 나주부(羅州府) 능주군(綾州郡) 주내면, 1896년에는 전라남도 능주군 주내면,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능주군 주내면 거석리(擧石里)·고동(庫洞)·간리(澗里)·서문내(西門內)·서문외(西門外)로 나오고, 1913년 능주군을 화순군으로 개칭하면서 화순군 주내면 거석리·고동·간리·서문내·서문외,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변경에 의해 화순군 능주면 석고리[고동·간리·서문내리·서문외리·관동·빙동·거석리 각 일부]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석고리 서쪽으로는 비봉산[258.2m]이 솟아 있고 북쪽에는 비교적 낮은 구릉이 있다. 남쪽에는 능주 평야로 인해 비교적 넓은 평야 지형을 볼 수 있고 동쪽에는 연주산[250m]이 위치하고 있다. 중앙에는 동남-서북 방향으로 지석천의 지류가 흐르고 있어 주변으로 농사를 많이 짓고 있다.

[현황]

석고리는 2011년 12월 기준으로 면적이 0.6㎢이며, 총 207가구에 남자 225명, 여자 223명으로 모두 44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석고리의 북쪽에는 능주면 정남리, 서쪽으로는 도곡면 대곡리, 남쪽으로는 남면 내리능주면 잠정리가 있으며 동쪽에는 능주면 관영리가 이웃하고 있다. 석고리는 특정 주산물 없이 농업과 상업을 한다.

교통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방도 822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지방도 822호선한천면에서 국도 29호선과 만나 다른 지역으로의 접근성이 좋다. 동쪽에 있는 능주역은 여객 수송을 주업무로 하고 있다. 유물 및 유적으로는 고인돌 1기, 능주목 아사 터[녹의당] 등이 있다.

[참고문헌]
  • 『화순 군지』(화순 군지 편찬 위원회, 2012)
  • 능주면사무소(http://www.hwasun.go.kr/2011/town/neungju/)
  • 능주 정보화 마을(http://nj.invil.org)
  • 문화재청(http://www.cha.go.kr/)
  • 화순군청(http://www.hwasu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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