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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216
한자 滄浪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인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2년 - 전라남도 동복군 내서면 창랑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남도 동복군 내서면 창랑리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로 개편
지명 창랑리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3.38㎢
가구수 39가구
인구[남,여] 56명[남자 26명, 여자 30명]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는 자연 마을인 창랑(滄浪)·물염(勿染)·신기(新基)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창랑 마을과 물염 마을은 1984년 댐 공사로 수몰되었다. 이에 수몰지 밖에 새로 마을을 형성하여 신기 마을과 함께 창랑리를 구성하였다.

[명칭 유래]

창랑리의 지명은 창랑 마을이라는 지명을 취하여 지어졌다. 창랑 마을이라는 이름은 조선 선조 대의 문인인 남언기(南彦紀)[1534~?]가 지은 것으로, 마을 앞으로 흐르는 물이 맑다고 하여 붙여졌다. 창랑리는 처음에 수각정리(水閣亭里)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물 위에 정각을 지은 것을 보고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물염 마을은 물염정(勿染亭)이 있어서 물염 마을이라 불렀다. 신기 마을은 1954년 3월에 평산 신씨(平山申氏)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물맛이 좋아 원래는 감정골이라 불렀다. 사람이 늘어 마을이 커지면서 1959년 면 의원들에 의해 새로 형성된 마을이란 의미로 새 신(新)자와 터 기(基)자를 붙여 신기 마을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789년 『호구총수』에는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으로,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전라남도 동복군 내서면 창랑리(滄浪里)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동복군이 화순군으로 통합되면서 외서면(外西面)과 내서면은 이서면(二西面)으로 통합되어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로 개편되었다. 창랑 마을은 창랑 1리로 있다가 1984년 동복댐 확장으로 수몰되어 폐촌되었다.

[자연환경]

서쪽에는 산지 지역과 인배미들과 같은 소규모의 평야가 나타나며 동쪽에는 동복호(同福湖)가 있다. 수몰 전 창랑 마을은 동쪽으로는 창랑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그 건너에는 적벽산과 옹성산(甕城山)[573m]의 등성이가 창랑천까지 뻗어 있었다. 서쪽으로는 방아재에서 뻗은 산줄기가 마을 뒤까지 이어져 있었으며, 남쪽으로는 천변에 약간의 평야가 발달하였다. 북쪽은 내를 중심으로 약간의 평야가 있었고 그 너머로 북면 와천리와 접하였다. 물염 마을의 동쪽에는 황어굴, 서쪽에는 여시박굴, 남쪽으로는 황어 바위[황새 바위], 북쪽으로는 물염정(勿染亭)이 있었다. 신기 마을의 동쪽에는 코재굴·여시박굴·몰테 골짝이 있고, 서쪽으로는 방천들, 남쪽으로는 코재, 북쪽으로는 인배미들이 있다.

[현황]

창랑리화순군 이서면 북동쪽에 있다. 2012년 현재 3.38㎢의 면적에 39가구 56명[남자 26명, 여자 3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동쪽으로 북면 다곡리, 서쪽으로 담양군 남면 구산리, 남쪽으로 이서면 도석리, 북쪽으로 북면 임곡리, 와천리와 이웃하고 있다. 창랑리의 북동쪽에는 물염정(勿染亭)이 있고, 북서쪽으로는 지방도 887호선이 구산리~임곡리를 잇고 있다. 주산물은 벼와 채소이고 특산물은 누에이며 주 소득원은 벼이다. 동복 수원지 신기 초소와 1985년에 건립된 신기교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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