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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 인 방안 지도』 「동복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377
한자 備邊司印方眼地圖同福縣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건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103동[신림동 산 56-1]
성격 고지도
서체/기법 필사본 방안식
소유자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관리자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정의]

18세기 중엽 제작된 『비변사 인 방안지도(備邊司印 方眼地圖)』에 있는 화순 동복 지역의 지도.

[개설]

『비변사 인 방안 지도』는 경위선 표식(經緯線表式) 군현 지도집이다. 경위선 표식 군현 지도집은 비교적 일정한 크기의 방안(方眼)을 바탕에 그림으로써 축척을 적용하여 그린 군현 지도 모음집이다. 방안으로 축척을 나타냈으므로 방안 지도 또는 경위선 표식 지도·선표도(線表圖)·방안 좌표 지도 등으로 부른다. 지역의 크기에 따라 군현마다 지도의 크기가 모두 다른 지도가 된다.

[형태 및 구성]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는 비변사 인이 들어 있는 지도가 12종 42책 660장이 있다. 특히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6종의 도별 군현 지도집은 조선의 지도 제작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도이다.

6종의 도별 군현 지도집은 『영남 지도』[6첩 71매], 『호남 지도』[7첩 56매], 『호서 지도』[6첩 69매], 『충청좌도 각읍 지도』[1첩 12매], 『해서 지도』[3첩 21매], 『함경도 전도』[5첩 21매] 등으로 총 28첩 250장에 달한다. 그러나 8도 중 경기도·강원도·평안도의 3도의 지도집은 전하지 않는다.

위의 군현 지도집은 1리 방안 위에 지도를 그린 점이 가장 큰 특징이며, 방안의 크기는 7.0~8.5㎜ 내외이다. 방안의 크기로 축척을 나타냈으니, 약 1:5만 3000~1:6만 4000의 대축척 지도인 것이다. 군현 지도집의 앞에 첨부되어 색인도 역할을 하는 도별도 중에는 10리 방안을 단위로 한 것도 있다.

[특징]

지도에서 동복현은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이서면·남면·북면 지역에 해당한다. 동복현의 읍치는 동복면 천변리독상리 일대에 있었다. 섬진강의 지류인 동복천동복현을 휘감아 곳곳에 비경을 이루었지만 현재는 동복댐의 건설로 많은 부분이 물에 잠겼다.

「동복현」 지도를 살펴보면 동복천을 따라 만경대(萬景臺)와 적벽(赤壁) 등의 절경이 독특하게 표현되어 있다. 고을의 진산은 고을 동남쪽에 있는 모후산이다. 읍치 동쪽에는 옹성(甕城)이 표시되어 있는데, 일명 철옹산성이라고도 한다. 읍치 북쪽에 표시된 서원은 도원 서원(道源書院)을 말한다. 또한 적벽 위쪽에 있는 물염정(勿染亭)조선 중종(中宗)명종(明宗) 대에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및 구례 현감과 풍기 군수를 역임한 물염정 송정순(宋廷筍)[1521~1584]이 건립한 정자이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18세기 중엽에 전국에 걸쳐 군현 단위로 1:5만 축척 지도를 제작했던 것은 지도 제작의 역사와 이후 지도 제작에 미친 영향, 그리고 각 지역의 정보 파악이라는 점에서 매우 획기적인 사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1리 방안 지도는 현전하는 방안 지도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서, 방안 도법의 사용과 축척의 표시 및 지도에 표시된 내용의 위치와 거리 등을 정확히 표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전국의 군현을 대상으로 지도 제작 범위를 확대했다는 점, 기호화의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점 등 조선 후기 지도 발달을 선도한 지도라 할 수 있다. 또한 상세하고 풍부한 주기를 기록하여 지도와 지지를 결합, 지도가 전할 수 없는 지역의 행정·문화적인 사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방안 지도는 모든 군현 지도를 같은 축척으로 그림으로써 군현 지도들 사이의 분합(分合)이 가능하게 한 지도이다. 전국의 각 군현 지도를 연결시켜 지역별, 도별, 나아가 전국 지도로 합해 볼 수 있고 나누어 볼 수도 있다. 일정한 축척을 적용함으로써 정확한 지도를 제작하려 했던 당시 사람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지도 안에 1리, 혹은 10리, 20리 방안을 그리고 그 위에 지도를 그리게 되면 지역과 지역의 거리 파악이나 방위·위치 등이 더욱 정확하고 정교해진다. 이처럼 동일한 축척을 가진 군현 지도의 제작은 차후 『대동여지도』와 같은 대축척 전국 지도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18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여러 종의 방안 지도는 이러한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 한국 지도 학회, 『한국 지도학 발달사』(국토 해양부 국토 지리 정보원, 2009)
  •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http://ky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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