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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복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467
한자 同福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문안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757년 - 두부지현에서 동복현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1405년연표보기 - 동복현 화순현에 통합되며 폐지
개정 시기/일시 1416년 - 복순현에서 동복현과 화순현 분리
개정 시기/일시 1655년연표보기 - 동복현 폐현[1655]
개정 시기/일시 1664년연표보기 - 동복현 복설
폐지 시기/일시 1895년연표보기 - 동복현 폐현[1895]

[정의]

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일대에 있던 지방 군현.

[제정 경위 및 목적]

동복현은 백제 때에는 두부지현(豆夫只縣)이라 하였으며, 곡성군의 욕내군(欲乃郡)에 속하였다. 신라가 백제를 통합한 후 757년(경덕왕 16) 때에 이르러 동복현으로 고쳐 곡성군에 속하게 되었다. 신라는 전국을 9주로 나누어 지배하였으며, 옛 백제의 땅에 웅천주·완산주·무진주를 두었다. 무진주는 전라남도 일대를 관할하였고, 15군 43현을 두었다.

[변천]

동복현은 고려 초에 보성군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방관이 파견되지 못한 속현이었으며, 1018년(현종 9)과 1143년(인종 21) 사이에 동복 감무(同福監務)가 파견되었다. 감무가 파견된 배경은 승려 조염(祖琰)의 고향이었기 때문이었다. 동복은 감무의 파견으로 인해 지방관이 파견되지 못한 속현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치소는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 복녕 마을이었다.

동복 감무는 조선이 건국된 후 1394년(태조 3) 화순 감무를 겸하였고, 조선이 건국된 후 1405년(태종 5)에 이르러 화순현(和順縣)과 합쳐져 복순현(福順縣)으로 이름을 고쳤다. 복순현은 1413년(태종 13)에 다시 화순현으로 바뀌었고, 1416년(태종 16)에는 화순현동복현을 분리시켜 동복현에만 현감을 파견하였다.

동복현은 1655년(효종 6)에 이르러 전패(殿牌)가 소실되어 폐현이 되고 화순현에 일시 합해졌다. 1664년(현종 5)에 다시 분리되어 원상을 회복하여 면리제 아래에서 7개 면을 관할하였다.

동복현은 1895년 갑오개혁 때 폐현되고 23부제로 개편되면서 나주부 동복군이 되었다. 다음해에 능주군과 동복군이 폐지되면서 화순군에 편입되었고, 1908년 10월에 칙령 제72호에 의하여 화순군이 폐지되며 능주군에 편입되었다. 1913년에 다시 군의 이름을 화순군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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