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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478
한자 驛院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희태

[정의]

조선 시대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개설]

화순 지역에는 조선 시대에 화순현·동복현·능주목 등 3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화순현에는 가림역(加林驛)·신원(新院)·내화원(乃火院)·고자원(古者院)·삼원(三院)이 있었고, 동복현에는 검부역(黔富驛)·남비원(攪轡院)·방석원(方席院)·남덕원(南德院)·사평원(沙坪院)·여점원(餘岾院)이 있었으며, 능주목에는 인물역(仁物驛)·이양원(李陽院)·여점원(呂岾院)·부락암원(浮落岩院)·대림원(大林院)이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화순은 전라남도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변 군현으로 연결된 교통 중심지였다. 고려 시대에 국가 교통 기관으로 역원이 설치될 때 화순 지역의 3개 현에도 역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의 역로는 역도(驛道)와 속역(屬驛)의 체제로 구성되었다. 화순 지역의 역은 모두 경양도(景陽道)[현 광주광역시 북구 소재] 찰방역의 관할이었다. 역원은 전통 시대 역로(驛路)에 설치되었고 관리가 파견되어 역마와 역로를 관할하였다. 길을 지나는 관원에게 말과 숙식을 제공하고, 공문서의 신속한 전달과 관수 물자를 운반하는 육상 교통 기관으로 기능하였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전라도조에 “경양도(景陽道)의 관할 역이 여덟이다[덕기(德基)·가림(加林)·인물(人物)·창신(昌新)·대부(大富)·검부(黔富)·오림(烏林)·광리(廣里)]”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통해 화순현에 있던 가림역, 동복현에 있던 검부역, 능주목에 있던 인물역이 각각 경양도에 속한 8개 역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영조 대에 편찬된 관찬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 화순 역원조에는 “가림역화순현의 남쪽 10리에 있다. 말 10필, 남자 종 52명, 여자 종 55명이고 경양(景陽)에 소속되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신증 오성지(新增烏城誌)』에는 “가림역은 경양에 속하니 말 10필, 남자 종 52명, 여자 종 55명, 신원(新院)·내화원(乃火院)·고자원(古者院)·삼원(三院)은 이제 모두 폐지되었다. 답(畓) 320두(斗) 7승(升), 전(田) 130두 5승, 둔토(屯土)”라는 기록이 있다.

『여지도서』 동복 역원조에 “검부역동복현의 남쪽 10리에 있다. 말 10필, 남자 종 13명, 여자 종 3명이고 경양역에 소속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역의 하급 단위인 남덕원과 관련하여 화순 동복 남덕원 비(和順同福南德院碑)[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09호]가 전해지고 있으며, 검부역 소유 역둔토 전답과 관련 있는 문서 2종이 규장각에 전한다.

『여지도서』 능주목 역원조에는 “인물역능주목의 남쪽 25리에 있다. 말 10필, 남자 종 48명, 여자 종 7명이고 경양역에 소속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1526~1586]이 지은 「능성 인물역(綾城仁物驛)」이라는 칠언 절구 제영 1수가 문집에 있고, 역둔토 전답과 관련 있는 문서 1종이 규장각에 전한다.

[내용]

가림역이 있던 지역은 지금의 화순군 화순읍 내평리이다.『호구총수(戶口總數)』 화순현 서면에는 가림촌(佳林村)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이곳에 가림역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검부역이 관할했던 원은 남비원(攬轡院)·방석원(方席院)·남덕원(南德院)·사평원(沙坪院)·여점원(餘岾院)이었다. 검부역이 있던 지역은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한천리이다. 『호구총수』 동복현 읍내면(邑內面)에 구 역촌(舊驛村)과 신 역촌(新驛村)이 기록되어 있는데, 한천리에 있던 한천리역과 남면 검산리에 있었던 검부역(黔夫驛)을 합하여 한천리에 새로 검부역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보면 구 역촌은 한천리역, 신 역촌은 검부역으로 보인다.

인물역이 관할했던 원은 이양원(李陽院)·여점원(呂岾院)·부락암원(浮落岩院)·대림원(大林院)이었다. 인물역이 있던 지역은 지금의 화순군 이양면 금능리 인물 마을이다. 『호구총수』 능주목 상동면(上東面)에 인물리(仁物里)가 기록되어 있는데 인물리는 뒤에 송석면에 속했다가 1932년 다시 이양면에 속하게 되었다. 화순 지역의 가림역과 보성 지역의 가신역을 연결하는 지역이다.

[변천]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가림역, 동복 지역의 검부역, 능주 지역 인물역은 많은 역원이 고려 시대에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고려 시대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 시대에는 전라좌도의 경양도역에 딸린 소로역으로 운영되었다. 1896년(고종 33) 전국의 역찰방제가 폐지될 때 함께 없어졌다.

[의의와 평가]

역원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관영 교통·숙박 시설로서 당시의 교통 제도를 보여 주며, 화순 지역의 향토 사학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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