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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광복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527
한자 韓國光復軍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광철

[정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 출신 광복군 3명이 포함되어 해방 직전까지 활동했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군대.

[개설]

한국 광복군은 1940년 9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충칭[中京]에 머물렀던 시절에 창설되었다. 이후 1946년 5월에 공식적으로 해산할 때까지 6년여 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해방 직전 규모는 총사령부와 3개 지대였고 병력 수는 700여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순군 출신자]

현재까지 확인된 전라남도 화순 지역 출신의 광복군은 박병훈·송욱동·장희수 세 사람이다. 박병훈은 화순군 도암면 원천리 출신으로 1945년 2월 광복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중국으로 간 연유나 입대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광주광역시·전라남도 지역의 광복군 입대자들 중에는 1944년 일본군을 탈출해 입대한 경우가 많은데 박병훈은 1915년 출생이므로 송욱동·장희수와는 다른 경로로 중국에 가 광복군에 입대했을 것으로 보인다.

송욱동[송식이라고도 함]은 입대 전인 1927년까지 중국 후난성[湖南省] 평민 대학을 다녔다고 하며, 그에 앞서 1924년에 이미 후난성 제일 중학교를 다녔다고 한 것으로 보아 중국에 간 시기가 비교적 일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1927년경 우창[武昌]에서 우한[武漢] 한인 청년회의 결성에 참여했다고도 하며, 이후 민족 혁명 당원으로 조선 의용대에서 활동했고 중앙 군사 학교 우한[武漢] 분교에 재학하기도 했다. 1942년 4월 조선 의용대가 광복군 합류를 결정한 일이 있는데 송욱동은 이 시기에 광복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장희수는 1943년 10월 일본군에 징집되었다가 이듬해 11월 부대를 탈출해 광복군에 입대했다. 알려진 바로는 광주광역시·전라남도 지역 출신의 광복군 입대자들 40여 명 가운데 7명 정도가 같은 방법으로 광복군에 합류하였다고 한다.

[광복군에서의 활동]

광복군 입대 후에 박병훈은 제3지대에 편성됐고 중국 허베이성[河北省]에서 공작원으로 활동했다. 송욱동은 조선 의용대 출신이 대부분 광복군 제1지대에 편성된 데 비해 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장희수는 1945년 4월 충칭[中京]의 토교대(土橋隊)에 입대했다가 이후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서 활동했다. 같은 시기 같은 방법으로 일본군을 탈출한 사람들은 광복군 안에서의 경력이 비슷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 외에 광복군에서 이들의 소상한 활동 내용은 알려진 것이 적다. 광복군 관련 자료들 중에 남아 있는 것이 드물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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