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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관리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538
한자 自主管理運動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5년 8월연표보기 - 화순 광업소 자주 관리 운동 시작
종결 시기/일시 1945년연표보기 - 화순 광업소 미군정에 귀속되며 자주 관리 운동 종결
발생|시작 장소 화순 탄광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충의로 1064[복암리 893-3]지도보기
성격 사회 운동
관련 인물/단체 강대선|권영욱|심상기|화순 광업소|종방 탄광|남선 탄광

[정의]

1945년 8월부터 10월까지 전라남도 화순 지역 화순 광업소의 재산과 운영을 위해 현지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제반 시설을 관리했던 일.

[개설]

화순 광업소는 광복 이전에는 종방 탄광과 남선 탄광의 두 사업체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1945년 12월 미군정에 의해 화순 광업소로 통합되었다. 화순 광업소는 화순군에서 가장 큰 단일 사업체였으며 당시 국내 석탄의 80%가 북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상황에서 강원도의 영월 탄광·삼척 탄광 등과 함께 산업용 동력원으로서 큰 가치를 지녔다.

[역사적 배경]

종방 탄광과 남선 탄광에서는 광복과 함께 일본인 관리자들이 철수하고 징용 노동자들도 귀향함에 따라 운영의 공동화 현상이 발생했다. 미군이 당도하기 전이라 치안 부재 속에서 재산의 유지 관리가 절실히 요구되었고 탄광의 특성상 생산이 중단될 경우에 갱도 붕괴 등 시설 자체의 자연 파괴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경과]

광복이 되며 화순 지역에서는 군과 면 단위로 건국 준비 위원회가 구성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종방 탄광과 남선 탄광에서도 일본인들이 떠난 공백기에 탄광 운영과 재산 보호를 목적으로 자치 위원회가 조직·운영되었다. 종방 탄광에서는 강대선[『대한 석탄 공사 50년』에는 강대호라고 기록되어 있음], 남선 탄광에서는 권영욱과 심상기가 이를 주도했다. 강대선·권영욱·심상기는 광부의 부족·치안 부재·식량 부족 등 물자 공급의 중단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3개월 동안 탄광의 유지 관리에 힘썼다. 특히 탄광은 생산을 멈출 경우에 갱도가 자연 붕괴되고 침수와 시설의 노후화 등으로 가동을 재개했을 때도 어려움이 클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광부들은 자주 관리 노력을 통해 재가동을 준비했다.

[결과]

군정 실시를 위해 화순 지역에 미군 전술 부대가 진주한 것은 1945년 10월이었다. 미군정은 두 탄광이 이전에 일본인 소유였던 점을 내세워 미군정의 ‘귀속 재산[이른바 적산]’으로 간주했다. 12월에 두 탄광을 하나의 사업체로 통합한 후 화순 광업소라 불렀다. 초기에 탄광이 미군정에 접수되면서 자치 위원회는 소멸되었지만 이에 대한 거부감이나 저항은 크게 없었다. 당시만 해도 미군을 해방군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이었다.

[의의와 평가]

일제가 패망하고 미군정이 들어서기 전의 정치적 공백기에 자칫 발생할 수도 있었던 혼란과 재산 손실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통제하였다는 점에서 당시 탄광 노동자들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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