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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쌍산 항일 의병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596
한자 和順雙山抗日義兵遺蹟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4년연표보기 - 화순 쌍산 항일 의병 유적 전라남도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7년 8월 3일연표보기 - 화순 쌍산 항일 의병 유적 사적 제485호로 지정
현 소재지 화순 쌍산 항일 의병 유적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12|산13 등지도보기
성격 전투 유적
관련 인물 양회일
관리자 화순군청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제485호

[정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 출신의 양회일(梁會一)이 이끈 의병 부대의 창설지이자 주둔지.

[개설]

화순 쌍산 항일 의병 유적양회일[?~1908]이 거병하고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던 곳으로 흔히 쌍산 의소라고 부른다. 1907년 이곳을 거점으로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의 흔적이 이양면 증리 일대에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직선거리로 3㎞ 떨어진 곳에는 양회일의 집터가 있다.

[위치]

이양면 증리 증동 마을은 높이 580m인 계당산 아래에 있다. ‘쌍산’은 계당산의 별칭이다. 계당산은 화순군 동북쪽으로부터 백아산[810m], 모후산[918.8m], 두봉산[631m]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말단부이며 동쪽으로는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과 접하고 있다. 오늘날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국도 29호선의 중간에서 북쪽으로 쌍봉사에 이르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야 하며 쌍봉사에서 다시 3㎞ 남짓 농로를 이용해야만 갈 수 있을 만큼 산중에 위치해 있다.

[현황]

화순 쌍산 항일 의병 유적이양면 쌍봉리의 양화일 순의비, 증리 증동 마을 안쪽의 호남 창의소 터, 동마을 남동쪽의 무기 제작소, 마을 뒤편의 의병 막사 터와 화약 원료인 유황 등을 보관했다는 유황굴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유적은 오랫동안 동네에서 구전으로 알려져 오다가 1991년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1994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사적 제485호로 격상되었다.

1. 양회일 순의비

의병장 양회일의 행적을 기리는 순의비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쌍봉 마을에 있다. 이곳에 순의비를 세운 것은 그가 이 마을 태생인 까닭이다. 그의 생가는 이 마을 안쪽인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404이며, 그의 묘소도 이 마을의 앞산에 위치해 있다. 이 순의비는 1948년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대한 제국 시기의 학자인 김영한(金甯漢)[1878~1950]이 찬술했는데 행적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본디 이 글은 양회일의 행적을 기록한 『행사 실기』에 실려 있던 것을 옮겨 새긴 것이다.

2. 호남 창의소 터

쌍봉사증리 서운데 마을을 잇는 도로 중간에서 동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1㎞ 즘 오르면 증동 마을이 나오는데 호남 창의소 터는 이 마을 안에 있다. 마을은 현재 5호 가량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지만 한때는 30여 호에 달했다고 한다. 쌍산 의소가 결성될 무렵에 마을은 의병 지휘부와 의병 숙소 등으로 이용됐다. 현재 민가로 사용 중인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60이 이백래(李白來) 의병 부대와 합세해 호남 창의소를 차렸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3. 무기 제작소

무기 제작소는 증동 마을 남동쪽 500m 쯤 떨어진 전라남도 화순 이양면 증리 89에 있다. 높이 1m, 길이 7m의 축대가 남아 있는데 건물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에는 철을 만드는 과정의 부산물인 슬래그(slag)가 널려 있다. 쌍산 의소에서 자체적으로 무기를 제작했던 장소였을 것이다. 이에 필요한 철광석은 계당산 동쪽인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에서 조달했다고 한다.

4. 유황굴

유황굴은 증동 마을 북서쪽 산기슭인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184 일대에 있다. 현재는 마을에서 이곳까지는 임도가 놓여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약 2㎞,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다. 산자락에 굴이 있는데 자연 붕괴가 진행 중이라 굴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유황굴은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명칭인데 엄밀하게 유황을 채굴했던 곳은 아니다. 화약의 원료인 유황을 보관했던 장소를 이렇게 부른 데 따른 것이다.

5. 의병 막사 터

의병 막사터는 쌍산의소 시절에 의병들이 머물렀던 이른바 ‘의병촌’의 일부다. 중동 마을도 이러한 의병촌의 일부였는데 그곳은 계곡이 끝나는 지점이라 유사시 포위당할 위험이 있으며 남쪽이 열려 노출되기 쉽고 터가 좁은 한계가 있었다. 이에 증등 마을 뒷산에 별도의 숙소 및 훈련장을 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터는 계당산 북쪽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12와 산13 일대이다. 이곳에 오르려면 산비탈과 임도를 1㎞ 가량 올라야 한다.

이곳은 일명 ‘막터’, 혹은 ‘진터’로 불린다. 자연석을 장방형으로 쌓은 흔적이 수십여 개 남아 있다. 상당한 고지임에도 근처에 개울이 있어 당시 의병들이 식수원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대한 제국 시절의 의병들은 주로 유격 전술에 의존했던 까닭에 자주 이동을 해야 했고 거점도 자주 옮겨야 하는 특성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들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은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반해 화순 쌍산 항일 의병 유적은 당시의 실상을 보여 주고 아주 드문 유적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