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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성화명도로수축시주목록암각기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600
한자 和順成化銘道路修築施主目錄岩刻記文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553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희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485년 - 화순성화명도로수축시주목록암각기문 조성
문화재 지정 일시 1995년 12월 26일연표보기 - 화순성화명도로수축시주목록암각기문 전라남도 기념물 제16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화순성화명도로수축시주목록암각기문 전라남도 기념물 재지정
현 소재지 화순성화명도로수축시주목록암각기문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553 지도보기
성격 금석문
양식 마애 암각
관련 인물 구용연(具龍淵) 외
크기(높이,길이,둘레) 150㎝[가로 ]|80㎝[세로]|5㎝[글자 크기]
면적 1.5m²
관리자 화순군청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기념물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조선 시대 초기의 도로 수축 기문.

[개설]

화순성화명도로수축시주목록암각기문은 조선 시대 초기인 1485년(성종 16)에 능성현(綾城縣)의 남쪽 오리정 앞 구질건연(仇叱健硯) 도로 수축 사업에 시주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 마애 암각 기문이다.

[건립 경위]

1485년(성종 16)에 능성현의 남쪽 오리정 앞 구질건연 도로를 수축하고 대시주(大施主)·대화주(大化主)·몽민 화주(蒙民化主) 등 시주한 사람과 각장을 음각하였다.

[위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에 있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능주면 소재지에서 국도 29호선을 따라 남동쪽으로 1.5㎞ 지점으로 지석강을 마주하고 있으며 뒤쪽으로 경전선 철도가 지난다. 바로 이웃하여 화순 능주 삼충각[전라남도 기념물 제77호]이 있다.

[형태]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전체 가로 150㎝, 세로 80㎝ 정도의 구획 속에 글자 크기는 5㎝쯤으로 25행 180여 자에 달하는 내용을 음각하였다. 이 기문은 각행의 글자수나 줄 등이 정제되어 있지 않고 매우 불균제한 형태로 새겨져 있다. 또 후반부의 윗부분[아래 기문 가운데 좌측 -- 부분]은 글자의 크기나 줄의 어긋나 있어 뒤에 추각한 것으로 보인다. 판독된 내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知□

成化二十一年乙巳四月初一日綾城

縣南距五里亭前仇叱健硯

道路修築施主目錄

大施主

將仕郞具龍淵妻佛□

曺錫命 大化主居士崔廷山

婢泉德 朴允護兩主

奴禾加 加中季

□□施主

金乾□ 金□□

��������������������������������

����主居士���� 崔□□ 金京和

����汝古里���� 朴京□ 金德□

����金泉伊���� 朴純 金衆伊

����金升老���� 曺宗極 汝古里 具□□

����朴中□���� 曺淑仁 蒙民化主 金侯生

����金德中����上□施主

�������������������������������� 姜孝文兩主 金无孝

姜□□兩主

具從生兩主 金□□

曺□兩主 刻匠

景□□ 李梁金

汝□□ 金□

□□□?

□□□?

대시주 구용연(具龍淵)[1450~1534]은 당시 36세로 본관은 능성, 자는 회견(會見), 호는 농포(農圃)이고 구득인(具得仁)의 아들이다. 효행이 뛰어났다 하며 문행(文行)이 있어 음직으로 장사랑(將仕郞)을 지냈다. 부인은 여산 송씨 중인(仲人)의 딸이었다. 인명이 모두 시주·화주·거사 등 불교적 용어로 표현되는 것으로 보아 불교 신앙 단체가 도로 수축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글씨체는 해서체로서 글씨를 쓴 사람은 확인되지는 않지만, 조선 시대 초기 민간에서의 통용되었던 서체로 보인다.

[현황]

화순성화명도로수축시주목록암각기문은 도로변 암벽면에 음각된 것으로 1995년 12월 26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6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나, 별다른 보호 시설은 없다. 관리 주체는 화순군청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초기 도로 수축 사업에 지방민과 불교 신앙 단체들의 경제적 도움을 얻었다는 구체적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점, 성화 21년이라는 절대 연대가 명기된 점, 오리정과 구질건연, 여고리와 같은 지명이나, 시주한 인물들의 이름 및 시주의 등급 등이 명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방사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평민들의 이름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부부가 함께 참여한 경우도 있어 조선 시대 초기 지방 사회 운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서예사적으로도 특정 지역의 토착 서풍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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