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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852
한자 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집필자 최성은

[정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개설]

성씨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토성(土姓)과 속성(續姓)이다. 이 가운데 토성은 각 지역에 오래전부터 토착하고 있으면서 고려 시대 지방 행정 실무를 담당하고 지배 세력을 배출하던 성씨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토성 출신의 인물은 지역의 읍사(邑司)를 중심으로 지역 사회를 운영하는 세력이 되었다. 속성도 또한 지역의 행정 실무를 맡았던 향리층의 성씨이다. 대체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성씨이다. 이들은 지역의 유력 성씨로 그 가운데 일부는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관리가 되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 토성과 속성]

『세종실록지리지』에 수록된 화순현 토성으로는 배씨(裵氏), 최씨(崔氏), 오씨(吳氏), 윤씨(尹氏), 하씨(河氏) 등 5개 성씨가 있다. 속성으로는 순천 박씨, 진주 김씨, 무진 김씨가 있다. 화순현은 고려 시대에 나주의 속현이었다. 화순현 토성 출신으로 진각국사 혜심의 최씨 집안과 그 모친인 배씨 집안이 있다.

능성현의 토성으로는 구씨(具氏), 정씨(鄭氏), 문씨(文氏), 조씨(曺氏), 채씨(蔡氏), 주씨(朱氏)의 6대 성씨가 있다. 속성으로는 진주 강씨, 김씨가 있다. 능성현은 현령이 파견된 주현이었다. 능성현 토성 집안으로는 고려 후기 상장군이었던 조저(曺著) 집안이 있다. 그의 조부와 증조부가 능성현의 호장을 역임하였다. 고려 고종 때 과거를 거쳐 관직에 오른 주열의 아버지 주여경은 능성의 현리(縣吏)로 능성의 토성이었다.

동복현의 토성은 오씨(吳氏), 성씨(成氏), 선씨(宣氏), 박씨(朴氏), 화씨(和氏) 등 5개 성씨가 있다. 고려 시대 동복현은 보성의 속현이었다. 감무(監務)가 파견되면서 토성 중심의 향리는 감무의 감독 아래 행정 사무를 처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동복현의 토성으로는 오대승이 있다. 그는 동복현의 향리였으며 그 후손들이 중앙에 진출하여 이름난 집안이다.

[조선 후기 토성과 속성]

『여지도서』에 실린 능주목 성씨는 능주 구씨, 하동 정씨, 남평 문씨, 능주 조씨, 능주 주씨, 제주 양씨, 여흥 민씨, 공주 이씨, 광주 이씨, 완산 이씨, 성주 이씨, 신평 송씨, 죽산 안씨, 의령 남씨, 순천 박씨, 함양 박씨, 충주 박씨, 청도 김씨, 남해 김씨, 광산 김씨, 영광 김씨, 대구 배씨, 흥덕 장씨, 보성 오씨, 강화 최씨, 경주 최씨, 영광 정씨, 이천 서씨, 나주 홍씨, 풍산 홍씨 등 30개 성씨가 있다.

동복현의 성씨는 동복 오씨, 창원 정씨, 진주 하씨, 광주 김씨, 광산 김씨, 김해 김씨, 경주 김씨, 창녕 조씨, 완산이씨, 함풍 이씨, 전의 이씨, 공주 이씨, 탐진 최씨, 금성 나씨, 함양 박씨, 함양 여씨, 고령 신씨, 죽산 안씨 등 18개 성씨가 있다.

화순현 성씨는 대구 배씨, 순창 임씨, 창녕 조씨, 해주 최씨, 문화 류씨, 창원 공씨, 문경전씨, 완산 이씨, 함양 박씨, 하동 정씨, 진주 장씨, 광산 이씨, 행주 기씨, 풍양 조씨, 영산 신씨, 반남 박씨, 나주 나씨 등 18개 성씨가 있다.

[1930년 화순군 집성촌]

1930년에 조사한 전라남도 화순군 지역 집성촌은 45개의 성씨가 조사·보고되었다. 광산 김씨[전라남도 화순군 화순면 신기리, 화순군 이양면 정장리, 화순군 사평면 절산리·주산리·장전리], 창녕 조씨[화순면 감도리, 화순군 한천면 한계리, 화순군 청풍면 대비리, 화순군 백아면 옥리·남치리·수리·용곡리, 화순군 동면 백용리·복암리·장동리·서성리·수만리·청궁리·운농리·대포리], 평택 임씨[화순면 대리, 화순군 동면 경치리·마산리·무포리·대포리], 전주 이씨[화순읍 세량리, 사평면 검산리, 동복면 유천리, 동면 오동리·청궁리·복암리·장동리·운농리], 하동 정씨[한천면 금전리,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청풍면 신리, 이양면 송정리·고암촌·성곡리·대덕동, 도암면 운월리], 함양 박씨[한천면 한계리, 사평면 복교리], 능성 구씨[한천면 정리, 춘양면 용계·통안], 의성 김씨[한천면 정리], 제주 양씨[한천면 가암리, 이양면 강성리·매정리·쌍봉리·봉하리,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효산리], 청도 김씨[춘양면 석정리·회화리·개천동·변동], 경주 김씨[춘양면 가봉리, 화순군 도곡면 쌍옥리], 남평 문씨[춘양면 화림리, 청풍면 풍암리·신리·대비리, 도곡면 천암리·원화리, 동면 마산리·무포리], 공주 이씨[청풍면 차리], 풍산 홍씨[춘양면 우봉리], 영양 천씨[청풍면 어리], 청주 한씨[청풍면 어리], 밀양 박씨[청풍면 신석리·정천리·벽지리·원천리, 화순군 이서면 서리, 백아면 이천리·다곡리·수리, 동복면 연둔리·한천리], 여흥 민씨[이양면 오류리, 사평면 사평리], 죽산 안씨[이양면 초방리·매정리], 남원 윤씨[화순군 능주면 천덕리], 장흥 고씨[능주면 원지리], 광산 이씨[도곡면 죽청리], 이천 서씨[도곡면 신성리, 동면 국동리·오동리], 순천 박씨[도곡면 대곡리], 진주 김씨[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진주 형씨[도암면 도장리] 경주 정씨[이서면 서리, 동면 경치리] 대구 서씨[이서면 보산리], 김해 김씨[이서면 월산리, 사평면 절산리·사수리, 동복면 신율리·가수리·안성리·연월리, 동면 복암리·천덕리], 동복 오씨[이서면 월산리, 북아면 이천리, 동복면 독상리·천변리·칠정리], 진주 하씨[이서면 야사리], 전주 이씨[백아면 외애리, 사평면 검산리, 동복면 유천리, 동면 국동리·오동리·청궁리·복암리·장동리·운농리], 진주 정씨[백아면 서유리], 한양 조씨[백아면 노기리], 금성 나씨[백아면 이천리·와천리], 경주 김씨[백아면 길성리], 흥덕 장씨[백아면 길성리], 광주 안씨[백아면 다곡리], 여산 송씨[사평면 사평리, 동면 옥호리], 초계 변씨[동복면 읍애리], 진주 강씨[동복면 구암리], 문화 유씨[동면 백용리·언도리·장동리·대포리], 해주 최씨[동면 오동리·백용리·서성리·경치리·운농리], 곡부 공씨[동면 천덕리], 목천 장씨[동면 운농리·옥호리] 등이다.

[지역별 집성촌과 세거 성씨]

1. 화순읍

화순읍에는 1597년경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전주 이씨 이정윤(李廷允)[1576~1645]이 화순현 동면 운산에서 화순현 서면 세량 마을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세량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창녕 조씨 조수성[1570~1644]은 화순 녹구리에서 출생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시 조카 구봉 조엽과 창의하였다가 청주에 이르러 강화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귀향하여 1637년경 하만골로 입향 은거하여 감도리 입향조가 되었다. 후손들은 화순읍 감도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2. 한천면

한천면에는 1500년경 하동 정씨 정원신(鄭元信)[1466~1535]이 남평현 관정동에서 금전 마을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은 한천면 금전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570년경 능성 구씨 구선(具善)[1550~1615]이 춘양면 용곡리 통안에서 정동으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한천면 정동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658년경 함양 박씨 박유(朴瀏)[1627~1675]가 보성군 미력면 반룡리에서 청도 김씨와 혼인 후 한천 마을에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한천면 한계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3. 춘양면

춘양면에는 1597년경 청도 김씨 김경문(金慶門)[1577~1654]이 임진왜란이 끝난 후 칠송 마을에서 춘양면 석정리로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석정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636년경 남평 문씨 문신극(文信克)[1617~1683]이 다라실에서 화곡 마을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춘양면 화림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665년경 풍산 홍씨 홍경고(洪景古)[1645~1699]가 도곡면 효산리에서 우봉리 잿등으로 입향하였다. 후손들은 춘양면 우봉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680년경 공주 이씨 이만방(李萬芳)[1661~1716]이 능주목 도장면 벽지리에서 칠송 마을로 입향하였다. 후손들은 춘양면 회송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4. 이양면

이양면에는 1519년 제주 양씨 학포 양팽손(梁彭孫)[1488~1546]이 능성현 다라실에서 쌍봉 마을로 입향하였다. 후손은 쌍봉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628년경 죽산 안씨 안익지(安益之)[1608~1678]가 보성군 보성읍 우산리에서 능주목 도림면 매정리로 입향하였다. 후손들은 이양면 매정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730년경 여흥 민씨 민정수(閔挺洙)[1712~1783]가 도암면 지월리에서 오류리 상촌으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이양면 오류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5. 능주면

능주면에는 1500년경 장흥 고씨 고익침(高益沈)[1472~1549]이 산불악에서 도르메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능주면 원지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597년경 남원 윤씨 윤만동(尹萬東)[1541~1604]이 남원에서 임진왜란 시 거병한 의병으로 이곳까지 왔다가 왜란 후 진주 정씨와 혼인 후 회덕리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능주면 천덕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6. 도곡면

도곡면에는 1570년경 이천 서씨 서의수(徐義壽)[1550~1632]가 화순현 읍내면 소곡에서 이문동으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도곡면 신성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589년경 광산 이씨 이대립(李大立)[1579~1636]이 기축사화를 피하여 남평에서 죽청리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도곡면 죽청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780년경 경주 김씨 김대현(金大賢)[1742~?]의 오형제가 모친과 함께 남평현 우산리에서 옥계 마을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도곡면 쌍옥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7. 도암면

도암면에는 1602년경 밀양 박씨 박위[1574-?]가 흥양현에서, 1603년경 밀양 박씨 박천주(朴天柱)[1578~?]가 벽지리 매산등에서 정천리로 각각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도암면 정천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636년경 진주 김씨 김철완(金鐵完)[1606~?]이 병자호란을 피하여 나주 왕곡 신포리에서 도장리 매산등으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은 도암 도장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8. 이서면

이서면에는 1600년경 진주 하씨 사간공파 하윤구(河潤九)[1570~?]가 영신에서 입향하여 금사정을 짓고 거주하면서 야사 마을 입향조가 되었다. 후손들은 야사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652년경 경주 정씨 정임형(鄭林亨)[1622~1688]이 순천부 주암에서, 1695년경 경주 정씨 정계수(鄭戒壽)[1674~1748]가 창평현 정곡에서 백아면 임곡리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은 이서면 서리에 거주하다가 동복댐 수몰지로 편입되어 대도시에 산거하고 있다.

9. 백아면

백아면에는 1661년경 전주 이씨 이지익(李之益)[1621~1694]의 삼형제가 1661년 영광 묘량에서 담양 무정 오봉리를 거쳐 동복현 외북면 외애리[임곡]으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백아면 임곡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진주 정씨 정덕하(鄭德夏)[1680~?]는 1734년에 나주 삼도 신동에서 자녀를 거느리고 동복현 외북면에 새로 마을을 이루어 서유 마을이라 하였다. 후손들은 백아면 서유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0. 동복면

동복면에는 고려 시대인 1220년경 동복 오씨 시조 오현좌[?~?]가 1216년 거란군을 토벌[오씨 3형제]한 공로로 동복군으로 봉해지면서 독상리로 입향하였는데 이 아들 오녕[?~?]이 또한 동복군으로 봉해졌다. 후손은 동복 독상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669년경 초계 변씨 변충렬(卞忠烈)[?~1716]이 흥덕현[고창]에서 동복 청단으로 입향하였다. 후손들은 동복면 읍애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구암리 입향조 압해 정씨 정치업(丁致業)[1691~1768]은 1728년 무신난에 개연히 의병에 참여하였고 진주 강씨 처가를 따라 동복현 내서면 창랑에서 읍내면 구암리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동복면 구암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1. 사평면

사평면에는 1600년경 광산 김씨 김종지(金宗智)[1581~?]가 동복현 외남면 삼거 마을에서 절동 마을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사평면 절산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802년경 김해 김씨 김덕희(金德喜)[1767~1827], 김낙희(金洛喜)[1782~1842] 형제가 능주목 세청면 어리에서 원진으로 입향 정착했다가 김덕희만 4남 김국성(金國星)[1802~1863]을 데리고 장선 마을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사평면 절산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2. 동면

동면에는 1450년경 곡부 공씨 공규(孔珪)[1432~?]가 여수에서 거주하다가 천동으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은 동면 천덕리 천동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625년경 목천 장씨 장구소(張九素)[?~1675]가 승주 쌍암에서 거주하다가 동면 호동 마을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동면 옥호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평택 임씨 경치리 입향조 임시민(林時敏)[1592~1672]은 병자호란평택 임씨 일곱 종형제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청과 화의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귀향하여 화순현 읍내면에서 동면 경현 마을로 입향 정착했다. 후손들은 동면 경치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637년경 창녕 조씨 조엽(曺熀)[1600~1665]이 화순현 읍내 녹구리에서 동면 찰동 마을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동면 장동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685년경 해주 최씨 최신헌(崔新憲)[1666~1731]이 화순현 읍내면 삼내에서 오곡 마을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동면 오동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1730년경 문화 유씨 유봉운(柳鳳運)[1713~1793]이 화순현 동면 하서 마을에서 오도미로 입향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동면 언도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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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제목 내용
2020.10.13 내용수정 "남면 → 사평면"으로 수정 "북면 → 백아면"으로 수정
이용자 의견
윤** 2020년 1월 1일부터 북면에서 백아면으로 변경 되었습니다. 수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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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에 따라 내용수정을 완료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24
윤** 2020년 1월 1일부터 남면에서 사평면으로 변경 되었습니다. 수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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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에 따라 내용수정을 완료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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