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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제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902
한자 閔濟章
이칭/별칭 회백(晦伯),삼금당(三錦堂),충장(忠莊)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권수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71년연표보기 - 민제장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05년 - 민제장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11년 - 민제장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감. 통제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22년 - 민제장 충청 병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23년 - 민제장의 송덕비 건립
활동 시기/일시 1728년 - 민제장 안성 군수 제수, 안성과 죽산 전투에서 공을 세움
몰년 시기/일시 1729년연표보기 - 민제장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69년 - 민제장 병조 판서 겸 지의금부 훈련원사 추증
묘소|단소 묘 - 전남 영광군 백수읍 구수리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여흥(驪興)
대표 관직 병조 판서

[정의]

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화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회백(晦伯), 호는 삼금당(三錦堂),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문경공(文景公) 민영모(閔令謨)민회삼(閔懷參)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민담령(閔聃齡)이며, 아버지는 민준경(閔俊慶)이고, 어머니는 함안 박씨(咸安朴氏)이다.

[활동 사항]

민제장(閔濟章)[1671~1729]은 민정중(閔鼎重)의 문인으로, 체모가 훌륭하였으며, 무예가 뛰어나서 1705년(숙종 31)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711년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들어가다가 대마도에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이때 풍랑이 크게 일어나 해상에 있는 배들이 표류하는 것을 보고 직접 바다로 들어가 노를 저어 배를 끌고 왔다. 혼자 일행을 구출하여 무사히 일본을 다녀온 뒤, 무산 부사(茂山府使)가 되었다. 1718년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 제주 목사(濟州牧使), 충청 병사, 전라 병사를 역임하였다. 1726년 북병사(北兵使), 회령 부사가 되었으나 파직당하고, 1728년(영조 4) 안성 군수가 되었다. 이때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곧 계문을 써서 방략을 올렸다. 도순무군(都巡撫軍)이 곧바로 직산으로 향하자, 사람을 모집하고 적세를 정탐하여 순무에게 알렸다. 또 보병을 거느리고 선봉이 되어 아우 민제만(閔濟萬)과 함께 몸을 떨쳐 출진하여 적들을 거의 섬멸하였다. 안성과 죽산의 전투에서 민제장 형제의 공이 가장 컸다.

[묘소]

묘는 전라남도 영광군 구수에 있다.

[상훈과 추모]

분무 원종일등훈(奮武原從一等勳)에 책록되었고, 고종 1869년에 특별히 자헌 대부 병조 판서 겸 지의금부 훈련원사에 증직되었다. 섬촌(蟾村) 민우수(閔遇洙)가 행장을 찬술하고 도암(陶庵) 이재(李縡)가 묘갈명을 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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