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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911
한자 金公喜
이칭/별칭 지명(之明),지천(芝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수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0년연표보기 - 김공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64년 - 김공희 진사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580년 - 김공희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89년 - 김공희 영광 군수 부임
몰년 시기/일시 1604년연표보기 - 김공희 사망
사당|배향지 기양사 - 전라남도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광산(光山)
대표 관직 영광 군수

[정의]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지명(之明)·지천(芝川). 김완(金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영석(金英碩), 아버지는 김윤(金胤)이고, 어머니는 정인걸(丁仁傑)의 딸이며 부인은 조신(曹信)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공희(金公喜)[1540~1604]는 1564년(명종 19) 진사시에 합격하고, 1580년(선조 13)에 문과에 급제하여, 종사관(從事官), 영광 군수를 거쳐 남원 부사를 지냈다.

기축년(1589) 10월에 전라도사(全羅道事) 조대중(曺大中)이 보성에 이르러 군적강(軍籍講)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영광 군수로서 담양 부사 김여물(金汝岉)과 함께 시험관으로 참석하였다. 이때 역적 정여립(鄭汝立)이 죽고 잔당을 토격하여 사면하라는 글이 이르자, 조대중은 이를 축하하는 말을 하고 즐기다가 헤어졌다. 그런데 조대중정여립의 죽음을 슬퍼하였다는 죄명으로 체포되자 김공희김여물을 증인으로 삼아서 김공희가 대궐 밖에서 3일 동안 명령을 기다렸으나, 심문한 대신들이 진상에 괸해 묻지 아니하니 탄식하길 마지않았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호조 참판에 추증되고, 남계(南溪) 김윤(金胤)·서곡(書谷) 임분(林賁)·죽곡(竹谷) 임회(林薈)·기봉(岐峰) 백광홍(白光弘)·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풍잠(風岑) 백광안(白光顔)·동계(東溪) 백광성(白光城)과 함께 기산 팔현(岐山八賢)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았다.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안양면(安良面)의 기양사(崎陽祠)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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