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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923
한자 具致寬
이칭/별칭 이율(而栗),충렬(忠烈)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수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06년연표보기 - 구치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29년 - 구치관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53년 - 구치관 좌승지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56년 - 구치관 이조 참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66년 - 구치관 능성군에 봉함
활동 시기/일시 1470년 - 구치관 능성 부원군에 봉함
몰년 시기/일시 1470년연표보기 - 구치관 사망
묘소|단소 구치관 묘소 - 경기도 광주시 실촌읍 열미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능성(綾城)
대표 관직 능성 부원군|영의정

[정의]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이자 청백리.

[개설]

세조 때 좌익공신(左翼功臣)으로 능성부원군(綾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청백리의 본보기가 되었다.

[가계]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이율(而栗)·경률(景栗). 시호는 충렬(忠烈). 구예(具藝)의 후손으로, 증조 할아버지는 구의(具褘), 할아버지는 구성로(具成老)이고, 아버지는 목사인 구양(具揚)이다. 어머니는 윤사영(尹思永)의 딸이며 부인은 이중부(李仲扶)의 딸이다.

[활동 사항]

구치관(具致寬)[1406~1470]은 1429년(세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었으나 성격이 정직하고 아첨하기를 싫어하여 10년이 지나도록 항상 낮은 벼슬에 있었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가담하고 재능을 인정받아 좌승지가 되었고, 1455년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추충 좌익공신(推忠佐翼功臣)에 책록되었다. 1456년(세조 2) 4월에 개성부(開城府)에 파견되어 사신을 영접하고, 7월에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 승진되었다.

1457년(세조 3) 11월에 구치관해양 대군(海陽大君)을 세자로 봉(封)하여 줄 것을 청하기 위해 주문사(奏聞使)로 한명회(韓明澮)와 같이 명(明)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윤2월에 돌아왔다. 같은 해 6월에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훈(策勳)하고 그 부모와 처에게도 봉작(封爵)하는 교서가 내려졌다. 1466년 능성군(綾城君)에 봉해지고, 1470년(성종 1) 2월에는 능성 부원군(綾城府院君)에 봉하여졌으며, 같은 해 6월에는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능성 부원군 겸 이조 판서가 되었다.

1470년에 65세로 죽자 좌리공신(佐理功臣) 1등에 추록되었다. 관직에 있을 때 산업을 장려하였고, 정직·청렴한 성품으로 청탁을 배격한 청백리의 본보기가 되었다.

[묘소]

묘는 경기도 광주시 실촌면 열미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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