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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031
한자 文自修
이칭/별칭 도숙(道肅),면수재(勉修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수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20년연표보기 - 문자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51년 - 문자수 함열 현감 제수
추모 시기/일시 1808년 - 문자수 삼현사 배향
사당|배향지 삼현사(三賢祠)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 지도보기
성격 문인|학자
성별
본관 남평(南平)
대표 관직|경력 현감

[정의]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도숙(道肅), 호는 면수재(勉修齋). 강성군(江城君)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경숙공(敬肅公) 문상행(文尙行)이고, 아버지는 문목(文穆)이며, 어머니는 여산 송씨(礪山宋氏) 송양승(宋良升)의 딸이다.

[활동 사항]

문자수(文自修)[1420~?]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6세에 효경에 능통하고, 문사(文詞)가 부섬(富贍)하였다. 정학(正學)을 창도하여 밝히니, 당시의 노성(老成)들이 소우(小友)로 추중하였다.

세종 때 생원시에 합격하고, 독학순효(篤學純孝)로 알려져서 1451년(문종 1)에는 함열 현감에 제수되고, 이어서 곡성 현감을 역임하였다. 자신을 바르게 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으로 정치를 함에 관리와 백성들이 기뻐하며 탄복하여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관리와 백성들이 길을 막고 수레를 당겼으며, 송덕비를 세웠다.

능주 향교에 사마재를 건립하여 한 고을의 자제들을 교도하였으며, 향사당(鄕射堂)과 삼등로(三等路)를 세워서 존비(尊卑)를 분별하였다. 향사례를 강습하니 예양(禮讓)이 빈빈해져서 추로(鄒魯)의 유풍이 있었다.

[상훈과 추모]

1808년(순조 8)에 월곡리에 사림들이 삼현사(三賢祠)를 건립하고 춘추로 제사를 지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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