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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필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143
한자 李炫弼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성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3년 1월 28일연표보기 - 이현필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934년 - 이현필 이세종에게 성경을 배움
활동 시기/일시 1964년 - 이현필 귀일 운동 전개
몰년 시기/일시 1964년 3월 17일연표보기 - 이현필 사망
출생지 이현필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원천리 790번지 지도보기
활동지 이현필 활동지 - 전라남도 화순|전라북도 남원|경기도 벽제
성격 개신교인|사회 사업가
성별
대표 경력 귀일원 창설|동광원 창설

[정의]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기독교 수도 공동체를 이끌던 종교인.

[개설]

자연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을 품은 이세종의 토착적 영성의 핵을 계승한 제자가 이현필이다. 이현필은 한국의 성 프란치스코, 맨발의 성자로 불리울 정도로 예수의 삶과 성경 말씀을 실천했던 신앙의 뿌리였다.

화순 화학산과 남원 지리산과 경기도 양주에서 수년씩 은거하며 금식, 명상, 기도생활을 하면서 기독교 수도 공동체 동광원을 시작했고 장애인들을 돌보는 귀일원을 창시하기도 했다.

[활동 사항]

이현필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서 태어났다. 10대부터 기독교를 접해 전도사 생활을 하다가 ‘도암의 성자’ 이세종을 만난 뒤 정절의 수도자가 되어 온몸으로 예수 사랑의 실천자의 길을 걸었다.

온몸으로 모범을 보인 삶을 살다 간 이현필은 13세 때 일본인 목사 관파(官波)에게 복음을 접한 후, 1928년 광주 농업 실습학교에 다닐 때 이세종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이현필 선생은 이세종 선생의 수제자가 되면서 거룩한 삶을 동경하며 몸소 실천했다. 이후 그는 제자들에게도 자주 독립 정신과 청빈을 가르쳤다. 특히 그는 예수의 정신을 본받는 경건 훈련에 매우 철저히 실천하였다.

이세종은 “나 같은 사람이 또 하나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가 바로 이현필이었다. 광주에서 600명의 고아들을 돌볼 때 그를 따르는 동광원 식구들은 자기 자식들을 고아들 속에 넣어 똑같이 길렀다. 걸인이나 창녀를 대할 때도 그는 천사처럼 귀히 대했다.

이현필은 철저한 ‘자기 비움’을 실천하면서 살았다. 그는 추운 겨울에도 맨발과 단벌옷으로 다녔으며, 불을 때지 않은 차가운 방에서 지냈다고 한다. 더구나 그는 ‘일식주의자’여서 하루에 한끼를 먹었으며, 금식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현필6·25전쟁 이후 가난에 허덕이는 민족의 아픔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며, 동광원이라는 수도 공동체를 만들게 되었다. 동광원에서 고아와 걸인, 나그네들을 위해 ‘하룻밤 재워주기 운동’과 ‘십시일반 운동’ 등을 펼쳤다.

이현필은 환난이 들이닥친 후 올데 갈데없는 사람들을 단 하룻밤이라도 함께 지내게 해줘야 하겠다는 뜻에서 ‘하룻밤 재워 보내기 운동’을 시작했고, 또 밥을 먹을 때 한 숟가락씩 덜어 굶주리는 사람을 돕자는 일작운동을 펼쳤다.

‘일작 운동’은 이현필이 1964년 세상 떠나던 해에 서울 계명산으로 가면서 제자들과 마지막 총회 때에 제안한 운동이다. 그것은 모두가 매일 밥 지을 때 자기 먹을 몫에서 한 숟가락씩 떠서 모으자는 운동이다. 이렇게 실시해서 30명이 밥 한상이 되고 300명, 3천명으로 늘어나면 학교도 되고 병원도 되고 비행기도 되며, 그렇게만 되면 자주 국가가 되고 세계는 평화가 온다는 커다란 취지를 품은 운동이다.

[묘소]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 보광로 266-23 동광원 벽제 분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2013년 3월 18일 이현필 선생 탄신 100돌 기념 헌신관[벽제 분원]이 준공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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