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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242
한자 金俊燮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세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3년연표보기 - 김준섭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5년 - 김준섭 조선 성악 연구회 입회
몰년 시기/일시 1968년연표보기 - 김준섭 사망
출생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성격 판소리 명창
성별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출신의 판소리 명창.

[활동 사항]

김준섭(金俊燮)[1913~1968]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출신으로 처음에는 공창식에게 소리를 배우면서 「심청가」 한 마당을 전공으로 수련했다. 그 후 김정문에게 「흥보가」,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를 차례로 배우고 난 뒤, 독학으로 계속 소리를 연마했다.

김준섭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난데다 소리를 배우려는 의지가 지극하여 오랜 노력 끝에 명창으로 일가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목은 수리성으로 성량이 좀 부족하고 상청이 약하여 무대에서 청중을 휘어잡지는 못했어도 차분한 분위기의 소리판에서는 복잡한 곡조와 다단한 기량으로 독판을 치는 대가였다. 특히 강산제 「심청가」의 더늠으로 좌중을 휘어잡고는 했다. 장기는 「심청가」이며 특장은 심봉사가 황성의 봉사 잔치에 참례하기 위해 뺑덕이네를 앞장세우고 가는 대목이다.

1935년 서울로 올라가 조선 성악 연구회에 들어가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등의 선배 대명창을 추종하면서 견문을 넓혀 기량을 완성했다. 그 이후에는 동일 창극단에 참가하여 「심청전」 창극의 심봉사 역할로 크게 이름을 떨쳤으며, 광복 후에는 한동안 국극사, 국악사에 참가하여 창극 정립에 기여하기도 했다.

1960년부터는 고향에 묻혀 살면서 오로지 판소리 예도에만 정진하다가, 1968년 5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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