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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245
한자 孔大一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자포실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세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공대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74년 - 공대일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판소리 예능 보유자로 지정
몰년 시기/일시 1989년연표보기 - 공대일 사망
출생지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거주|이주지 광주시 백운동
성격 판소리 명창
성별
대표 경력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판소리 예능 보유자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출신의 판소리 명창.

[개설]

「춘향가」가 장기인 판소리 명창이다.

[활동 사항]

공대일(孔大一)[1910~1989]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자포실에서 태어났다. 14살에 판소리에 뜻을 두어 능주에 사는 공창식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공창식공대일은 삼촌과 조카 사이이다. 공대일공창식에게 「춘향가」를 배웠고, 이후 장판개임방울에게서도 여러 바디와 창법을 전수 받았다.

처음에는 목을 티운 연습을 얼마동안 한 뒤에 단가 「만고 강산」, 「진국 명산」 등을 배우고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등을 차례로 다섯 바탕소리를 6년 동안 배운 뒤 혼자서 산세 좋은 절을 찾아다니며 독공으로 갈고 닦은 후 일가를 이루고, 당시 겨우 맥을 이어온 고사창을 공부하게 되었다.

공대일은 뒤에 장판개 명창에게 「흥보가」를 배우는데 그 중에서 박 타는 대목을 배워 동편제와 서편제 소리를 섞어 맛깔스럽게 잘 불렀다고 한다.

공대일은 소리를 배운 후 고향으로 돌아와 보성강 중류인 낙수천에서 낮, 밤 없이 소리를 다듬어 목을 얻어 스물아홉 살 때 창주 단에 들어가 공연도 하면서 소리도 가르치고 몇 년간 전국을 순회했다.

공대일은 지방에 묻혀 무대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공대일은 광주에서 수 십 년 동안 판소리의 후진 양성에 노력을 기울였기에 재물과 명성은 없었으나, 후대에 그의 가르침을 받은 문하생들이 국악계를 지켜주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았다.

1974년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판소리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고 1976년에 서울 공간 사랑 극장에서 춘향가와 고사창을 발표해 판소리 학회와 연구가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공대일의 제자로 송순섭 중요 무형 문화재 제5호 적벽가 예능 보유자와 김일구, 적벽가 보유자 후보가 활동하고 있다. 공대일의 딸은 판소리와 창무극의 제1인자인 공옥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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