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495
한자 圭峯寺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산 897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이영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수|중창 시기/일시 1729년연표보기 - 규봉사 중창
중수|중창 시기/일시 1959년 - 주지 이한규 규봉사 대웅전 등 3동 중창
중수|중창 시기/일시 1995년 - 주지 정인 규봉사 대웅전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996년 8월 21일 - 규봉사 대웅전을 관음전으로 보수·변경
현 소재지 규봉사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산 897 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의상
전화 061-225-4538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규봉사는 신라 시대 의상(義湘)이 창건하고 신라 애장왕 때 당나라에서 귀국한 순응 대사(順應大師)가 중창했다고 전해온다. 확인할 유물이나 사적은 없지만 조선 초인 1439년에 전라 감사(全羅監司)를 역임하던 권극화(權克和)가 지은 「서석 규봉기(瑞石圭峰記)」에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의상 창건설이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광주 읍지(光州邑誌)』에는 신라 말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이곳 은신대(隱身臺)에 앉아서 산세를 살펴 송광사(松廣寺) 터를 잡았다고 하는데, 절 주변에서 수습된 기와 편 중에는 통일 신라의 것으로 보이는 연화문 수막새 편이 있어서 통일 신라 시기에도 유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 시대의 기록으로는 명종(明宗) 때 시인 김극기(金克己)규봉암에 올라가 본 정취를 읊은 시가 『신증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광산현(光山縣) 불우조(佛宇條)에 실려 있다. 고려 후기에는 보조 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진각 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 나옹(懶翁) 혜근(惠懃) 등 고승들이 머물던 수행 도량이었다. 또한 『고려사』에 따르면 1381년(고려 우왕 7) 왜구들이 지리산에서 광주 무등산으로 도망쳐 왔는데 규봉사 인근의 암석에 목책을 세우고 저항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규봉사라고 기록되어 있어 상당한 사세를 갖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486년(성종 17) 규봉암에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潗別行錄節要幷入私記)』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보조 국사 지눌이 1209년에 저술한 것으로 당나라 종밀의 『법집별행록』을 간략하게 줄여서 수록하고 여러 경전과 조사(祖師)들의 어록(語錄)을 인용 비판하면서 참다운 수행자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책으로 수행 지침서이다. 이 규봉사본(圭峰寺本)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은 조선 시대에 가장 먼저 개판한 판본으로 알려져 있어 간행 당시 수행처로서 규봉사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조선 중기에 고경명(高敬命)이 지은 「유서석록(遊瑞石錄)」에 의하면 당시 신라의 명필 김생(金生)이 쓴 현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종 때 간행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는 규봉사가 나타나지 않아 폐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18세기 중반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역시 금폐(今廢)라고 기록하고 있어 17~18세기에는 폐사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폐허가 된 절을 다시 세운 것은 1729년(영조 15)으로 동복면 출신의 연경(演瓊)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1914년에 진응혜찬(震應慧燦)에 의해 「규봉사 사적기(圭峰寺事蹟記)」가 쓰였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또다시 방치되다가 1959년에 주지 이한규가 대웅전과 함께 당우 3동을 새로 지었다. 최근인 1995년에는 주지 정인(正因)에 의해 대웅전이 중건되었고, 1996년 8월 21일에는 대웅전을 관음전으로 보수·변경하여 낙성식 및 후불 탱화 점안식이 이루어졌다.

[활동 사항]

규봉사가 자리한 곳은 해발 870m의 무등산 동쪽으로 주변에 은신대(隱身臺)·삼존석(三尊石)·설법대(說法臺) 등 기암괴석이 솟아 있는 곳이다. 장시간 걸어서 사찰에 와야 하므로 신도들이 같은 시간에 사찰에 출입하는 것이 쉽지 않아 특별한 활동은 없다. 신도들과 등산객 등이 주말에 사찰을 찾는 경우가 많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규봉사는 2013년 현재 1명의 승려가 거주하고, 500여 명의 재가 신도가 출입하고 있다. 전각으로는 관음전(觀音殿)과 삼성각(三聖閣), 용왕각(龍王閣), 종각(鐘閣), 응향각(凝向閣) 등이 있다. 사찰 뒤쪽 약 100m 지점 암벽 아래에 건물지가 있는데, 산신각 터로 추정되고 있다.

관음전에는 1992년에 제작한 관음보살 독존이 모셔져 있고 아미타 후불탱화와 오백 불화,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삼성각에는 칠성 탱화, 산신 탱화, 독성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