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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도리 오도미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816
한자 彦道里吾道美堂山祭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언도리 오도미 마을
집필자 서해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마을 공동 제의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
신당/신체 팽나무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언도리 오도미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 자정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개설]

화순군 동면 언도리 오도미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14일 밤 9시경에 당산 할머니와 당산 할아버지 앞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지금까지 제일을 옮긴 적은 없으며 마을에 초상이 나더라도 그 집만 당산제에 참여하지 못하고 당산제는 그대로 진행된다. 제관은 정초에 마을 회의를 통해 세 명을 뽑으며 따로 부르는 이름은 없다. 마을 사람들의 생기 복덕을 따져서 정초에 결정한다. 따로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것은 아니고 자신이 뽑히면 누구든지 정성스럽게 당산제를 지낸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은 한 번씩은 제관을 하게 된다고 한다.

[연원 및 변천]

오도미 마을에서 언제부터 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마을 사람들은 예전부터 지내오던 것이기에 지금도 지내고 있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산제를 지내는 곳은 두 곳으로, 마을 입구 쪽에 위치한 나무를 ‘당산 할머니’라고 부르며 그 옆의 다른 나무를 ‘당산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당산 할머니와 당산 할아버지의 신체는 모두 팽나무이다. 그리고 당산 나무 앞에는 돌이 하나씩 세워져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따로 선돌이나 입석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다만 그 돌에 금줄을 두르고 ‘당산신’이라고 적힌 한지를 꽂아 놓는다.

[절차]

음력 정월 초순에 마을 회의를 통해 선정된 제관은 초상난 집에 가지 않고, 산고 든 집에도 가지 않으며 개고기도 먹지 않는 등 여러 가지를 근신한다. 그리고 당산제를 지내기 사흘 전에는 회관 입구와 당산 나무에 금줄을 치고 황토도 뿌리는데, 이는 외부 사람의 출입을 자제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마을 회관에는 그때부터 제관 세 명만 드나들 수 있다.

제비는 인구전으로 마을 사람 한 명당 1,000원씩 걷어서 충당한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당산제를 위해 걷는 돈은 자발적으로 낸다. 제비 관리는 이장이 하고, 그 돈으로 장을 보게 되는데 화순장에서 제일에 가장 가까운 장날에 제물과 마을 사람들이 나눠먹을 음식들을 사온다. 장에서 사온 제물은 마을 회관에 보관하며 당산제 당일에 마을 회관에서 제관 3명이 제물을 장만한다. 제물로는 미역국과 메, 명태포, 두부장국, 귤, 사과, 배, 삼실과를 준비하고 제주로는 막걸리를 받아 사용한다.

당산제를 지낼 시간이 되면 당산굿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당산제가 시작됨을 알린다. 먼저 당산 나무 앞에 자리를 펴고 진설을 시작하는데 제기는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마을에서 사용하는 접시에 음식을 담는다. 진설이 끝나면 축을 읽는다. 이어 축문을 태우고 나면 술을 올리고 제관 모두가 동시에 절을 한다. 그렇게 술을 세 번 올리고 나서 소지를 올린다. 당산제에 참석한 몇몇 마을 사람들도 마을의 안녕과 개인의 평안을 구축한다. 소지를 올리고 나면 헌식을 하는데 명태 머리를 창호지에 싸서 당산 옆에 묻는다. 예전에는 소다리를 헌식했지만 간소화되면서 명태 머리로 바뀌었다. 그리고 음복을 한다. 이렇게 제가 모두 끝나면 다시 한 번 굿을 하는데, 이때부터 마을사람들은 보름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한다.

[부대 행사]

당산제 지낼 때 소리만 내는 식으로 간단히 풍물을 치고 있다. 예전에는 줄다리기, 달집태우기를 했다고 하나, 6·25 전쟁 이후 전승이 끊겼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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