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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867
한자 巫俗信仰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집필자 이경엽

[정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무당을 중심으로 민간에 전승되는 민속 신앙.

[개설]

세시 풍속으로 자리 잡은 정월의 액막이 등의 세시 의례와 인간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삶의 전 영역에서 펼쳐지는 무속 의례들을 통칭해서 무속 신앙이라고 한다. 무속 의례를 주관하는 무당은 성격에 따라 조상 대대로 이어받은 세습무(世襲巫)와 신 내림을 받은 강신무(降神巫)로 구분한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세습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에 비해 강신무[점쟁이]의 경우 점을 치거나 간단한 비손을 하는 정도의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세습무가 급감하면서 강신 계열 점쟁이의 활동 영역이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화순 지역의 세습무]

화순 지역의 세습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적 지지 기반을 폭넓게 갖고 있었다. 남도 무속의 한 특징이기도 한 당골판이 엄존해 있었던 까닭에 활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세습무들은 당골제라는 내규에 의해 자신의 구역에서는 자신만이 종교적 의례를 전담할 수 있었고, 봄과 가을이면 신도들로부터 경제적 부양을 받을 수 있었다. 신분적인 천대가 없지 않았으나 당골판이라는 무권(巫權)이 있고, 또 사람들이 그것을 지지해 주었기 때문에 세습무들의 활동은 크게 흔들림 없이 유지될 수 있었다. 이러한 당골판은 1970~1980년대까지도 있었으나 지금은 관념만 남아 있을 뿐이어서 무속 환경의 변화를 잘 말해 주고 있다.

한편,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은 전통적으로 세습무 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다. 조씨, 공씨, 안씨 무계를 비롯해 여러 성씨들이 지역 기반을 갖고 무업(巫業)에 종사해왔다. 얼마 전까지도 조계남, 조도화, 조양금, 임장업 등 많은 세습무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무녀 박정녀와 그의 아들 박웅석, 그리고 소수의 능주면 출신 인사들이 전통을 잇고 있다.

[세습무들의 조직체, 신청]

세습무들의 조직체였던 신청(神廳)은 무속의 예능성을 확대 재생산하던 공간으로, 가야금·거문고·대금·피리와 같은 기악과 삼현육각(三絃六角), 창악 등을 학습하고 전승하는 기관이었다.

능주면에도 이런 신청이 있었다. 신청 사람들은 민간의 굿이나 잔치, 놀이판 등에 기예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관에서 주도하던 문묘나 기우제, 성황제, 여제 등에 나아가 음악을 연주하였다. 능주면 인근의 무속인들은 능주 신청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민간과 관의 각종 굿, 제사, 놀이에 참여함으로써 공공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능주 신청은 본래 지금의 능주 정류소 근처에 있다가 나중에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로 이전하였는데,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해체되었다.

[무속 신앙 현황]

화순군의 무속 신앙은 예전과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사회·경제적 배경의 변화 속에서 무당들은 예전의 사회적 기반과 공공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무계(巫系)의 자손들은 자신들이 세습 무계 출신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부모들이 무업을 계속하는 것을 막고 있다. '무당 자식'이라는 신분적인 차별 대우를 피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일반인들이 무(巫)를 천대시하고 그 위상을 하대하는데 그것을 감수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속의 전승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를 봉건 시대의 신분 기준으로 대하는 사회적 통념이다. 그리고 급증해 가는 외래 종교의 영향력도 무속 문화의 약화를 불러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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