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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골 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2027
한자 彌勒-由來
이칭/별칭 알맷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집필자 한미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2년 - 「미륵골 유래」 『화순의 전설』 수록
관련 지명 미륵골[알맷등]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성격 전설|지명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조담 선사|도깨비|마을 사람들
모티프 유형 사찰 창건과 폐사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도로변에 있는 미륵불과 미륵골이라는 들판에 얽힌 이야기.

[개설]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미륵골이라는 곳에 조담 선사라는 분이 미륵불을 모셨는데, 이 미륵불이 내려다보는 마을에 역병이 돌고 부녀자들이 음탕해진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이 미륵불을 무너뜨렸는데, 그 후로 절에 빈대가 끓고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상하게 해서 결국 절이 폐사됐다는 사찰 폐사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미륵골 유래」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화순군 동면 도로변에 미륵골이라는 들이 있다. 이곳은 속칭 ‘알맷등[卵山]’으로 산 아래가 원래 돌부처가 서있던 곳인데, 지금은 돌부처는 흔적도 없고 이름만 전하고 있다. 옛날 조담 선사(祖淡禪師)가 미륵님을 모시기 위해 전국을 헤매다가 이곳의 풍수를 보고 도량으로 택하여 절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륵 부처님을 조성할 석재를 구하러 다니다가 무등산 상봉 서석산의 돌을 도력으로 깎고 다듬어 하룻밤에 미륵골로 옮겨 놓았다. 지금의 입석과 서석은 그때 조담 선사가 고르다 버린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조성한 미륵 부처는 무등산의 입석과 서석보다 더 크고 높은 돌로 이루어져,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과 전라남도 영암군에서도 보였다고 한다.

한편 그때 세운 절은 연곡사였는데,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기도 도량이 되어 신통한 영험을 보였다. 시간이 흘러 전국에 괴질이 돌고 흉년이 들어 도적떼가 들끓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유언비어까지 돌았다. 내용은 이 미륵불이 보이는 마을에는 역귀가 찾아들어 전염병으로 마을을 망치고, 부녀자는 음탕하여 가문에 망신살이 떨어진다는 소문이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이 미륵불을 무너뜨리기로 모의를 하였고, 마침내 장정들이 미륵 좌대의 밑을 파고 큰 새끼줄로 미륵불 몸을 걸쳐서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때 부처가 누우면서 천둥소리가 났는데 당시 역군들은 모두 벌을 받아 귀머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미륵불이 누워 버린 뒤부터 절간에는 빈대가 들끓고, 범이 나타나 사람들을 상하게 하였다. 결국 절은 폐사가 되었고, 밤이면 도깨비들이 횃불을 들고 장난을 하더니 종내에는 불타 버렸다. 연곡사는 그렇게 해서 없어지고 미륵불만 남아서 누워있는데, 시간이 흘러 이 와불 마저도 석공들이 조각을 내어 각종 석물과 절구통, 주춧돌 등을 만들어 팔아 없애버렸다. 지금은 돌부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미륵골이란 이름만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전하고 있다.

[모티프 분석]

「미륵골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사찰 창건과 폐사’, ‘빈대 절터’ 그리고 ‘지명 유래’라고 할 수 있다. 미륵불을 모셔 사찰을 창건하고, 훗날 유언비어로 인해 사찰이 폐하게 되는 점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동인이다. 또한 여기에 ‘빈대 절터’ 모티프가 삽입되어, 사찰이 폐망하게 된 원인을 다양하게 갖춰놓아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만들고 있다. ‘빈대 절터’ 유형의 설화는 ‘사찰이 빈대 때문에 망했다’는 줄거리로 되어 있으면서 전국적으로 광포하고 있는 이야기로, 이때 빈대는 조선 후기에 급증한 승려들과 사찰에서 유리걸식하는 승려들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는 미륵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내력담이므로 지명 유래담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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