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2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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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萬淵寺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진각로 367[동구리 179]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미선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에 있는 만연사에 대해 혜심, 유일, 조엽 등이 읊은 한시.
시의 배경인 만연사는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 만연산에 있는 절로, 1208년(고려 희종 4)에 창건되었다. 화순군에 있는 대표적인 사찰의 하나로 진각 국사 혜심(慧諶)[1178~1234], 연담 선사 유일(有一)[1720~1799], 조엽(曺熀) 등이 만연사에 대해 읊은 시가 남아 있다. 혜심과 유일은 모두 화순 지역 출신의 승려인데, 그 중 혜심이 만연사를 창건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조엽은 조선 인조 때에 진사에 합격하였던 화순 출신 인물로, 병자호란 때 창의하였다가 인조가 청 태조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혜심의 시 「만연사(萬淵寺)」는 칠언 절구의 짧은 시로, 만연사 터의 과거 역사를 추억하고 있다. 유일의 시 「만연사에 머물러 감회를 적다」는 칠언시로 30년 만에 고향 화순에 와서 변한 것을 보고 느끼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조엽의 시 「만연사 홍한림 운을 빌려」는 칠언 절구로 만연사에서 보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만연사(萬淵寺)」 / 혜심
초창하인점차기(草創何人占此基)[맨 처음 그 뉘가 이 터를 잡았던고]
기회성괴기흥쇠(幾回成壞幾興衰)[흥망성쇠인들 그 몇 번이더뇨]
유유천만년래사(悠悠千萬年來事)[유유히 흘러간 천년의 사연들이여]
유유문전고회지(惟有門前古檜知)[오직 문전의 옛 회나무만 알고 있으리]
「주만연사감회(住萬淵寺感懷)」[만연사에 머물러 감회를 적다] / 유일
삼십년래반고향(三十年來返故鄕)[삼십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안중무처불비상(眼中無處不悲傷)[눈앞의 모든 것이 슬픔뿐일세]
상마구택수위주(桑麻舊宅誰爲主)[뽕과 삼을 심던 옛집은 누가 사는지]
죽마붕주반이망(竹馬朋儔半已亡)[죽마 타던 옛 친구 반이나 가버렸네]
기아언음유건눌(記我言音猶謇訥)[내 말소리 더듬더듬 기억에서 찾고]
악린수발정창랑(愕隣鬚髮政愴浪)[옛 이웃은 백발 되어 붙들고 우네]
독희오방문헌족(獨喜吾邦文獻足)[그러나 즐겁게도 학문하는 이 많아]
승간제자비성장(勝看諸子斐成章)[후배들이 이룬 일들 흐뭇하더라]
「만연사차홍한림운(萬淵寺次洪翰林韻)」[만연사 홍한림 운을 빌려] / 조엽
답파태암금수봉(踏破苔巖錦繡縫)[푸른 이끼 비단 수놓은 바위를 밟고 서니]
의연풍안구시종(依然楓岸舊時鍾)[단풍 숲 언덕에 옛 종소리 은은하다]
연하십리음난진(烟霞十里吟難盡)[십리길 산수 경치 어찌 다 읊어내랴]
도의고루대석봉(徒倚高樓對石峯)[높은 누각에 기대어 봉우리만 바라보네]
혜심의 시는 쇠(衰)와 지(知)의 운자를 사용하였고, 유일의 시는 상(傷), 망(亡), 낭(浪), 장(章)의 운자를 사용하였다. 조엽의 시는 종(鍾)과 봉(峯)의 운자를 사용하였다.
화순 지역 출신 인물들이 만연사에 대해 시를 남겨 고향 절에 대한 관심을 알 수가 있다. 여러 명의 시가 남아 있어 과거 역사부터 당대의 풍경까지 만연사에 관한 다양한 면모를 시로 볼 수가 있다. 특히 혜심의 시는 창건 초기의 시이지만 시의 내용을 통해 절터의 과거 역사까지 회고할 수가 있다. 만연사는 1208년에 창건되었지만, 유래를 보면 이미 그 전에 암자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