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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과 삶을 함께 하는 화순 이서 우체국장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A010304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별정우체국 제도 도서·산간·벽지에서 시작 1961년 - 별정 우체국은 1961년부터 주민의 편의를 위해 도서·산간벽지에서 시작된 제도이다. 화순이서우체국은 1962년에 개국한 별정우체국이다.
‘화순이서우체국’ 도석리에서 개국 1962년 5월 16일 - ‘화순이서우체국’은 도석리 473-3에서 문을 열었다.
광주광역시의 상수도 수원용 동복댐 공사 1968년~1970년 - 광주광역시는 인구가 50만명이 넘자, 상수도 수원용 동복댐의 1차 공사를 한다.
동복댐 2차 확장 공사 1981년 10월 - 동복댐의 수원 부족으로, 1981년에 670만톤의 담수 능력 댐으로 2차 확장 공사를 한다.
동복댐 3차 확장 공사 1984년~1985년 - 1984년부터1985년까지 동복댐이 9,200만톤의 댐으로 3차 확장 공사가 진행되면서, 수몰면적은 6.6㎢에 달하게 된다. 도석리가 침수 되면서 우체국이 야사 마을로 이전된다.
‘화순이서우체국’ 도석리 석림마을에서 야사리로 이전 1985년 5월 1일 - 화순이서우체국이 도석리 석림마을에서 야사리 180-2번지로 이전되었다.
마을지 야사제1교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마을
마을지 화순이서우체국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180-2번지

[19년째 우체국을 지켜온 최병하 우체국장]

야사 제1교를 건너 야사 마을로 들어서면 왼편에 단층의 산뜻한 건물이 눈에 띈다. 빨강색 바탕에 ‘화순 이서 우체국’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이서면 유일의 우체국으로, 우체국 문 앞에는 앙증맞은 빨간 우체통이 있다. 우체국은 야사 마을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상징물이다. 시골에서 우체국은 중심부에만 들어설 수 있는 주요 기관이기 때문이다. 야사 마을 우체국은 일제 강점기에는 주재소가 있던 자리였다. 광복 후 이서지서로 변경되었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건물이 전소된 후 주민이 개인 주거지로 사용하다가 1985년 지금의 우체국이 들어섰다.

야사 마을은 특산물인 뽕엿, 뽕가루 전화 택배 주문 판매가 대세다. 그러니 화순 이서 우체국은 배송, 입금, 보험으로 주민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공공 기관이지만, 직원들이 마을 어르신들과 허물이 없다.

“우체국 직원과 어떻게 지내냐고? 그 전부터 셋이 있었는데 직원이 참 좋아. 친하게 가까이 지내지. 물어 볼 것도 없고. 마을에 있응께 주민들은 기관이라고 보기 보담은, 분위기도 좋지. 잘 하고 있지요. 커피 같은 것도 통으로 사다 놓고. 커피 먹으러도 가제. 아무라도 가시면 타주고. 아프면 같이 아플 사람들이야.” (서복순, 최생학)

마을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직원들의 중심에는 화순 이서 우체국 최병하 우체국장이 있다. 최병하 우체국장은 제4대 국장으로 1995년에 부임되었다. 2013년 현재 19년째 야사 마을과 함께 하고 있다. 일반 우체국이라면 2년마다 국장이 바뀌지만 화순 이서 우체국은 별정 우체국으로 야사 마을에 20년 가까이 있다 보니 고향이 되었다. 누구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친숙하단다.

[마을 어르신과 해외여행으로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

최병하 우체국장의 최대 자랑거리이자 업적은 어르신들과의 해외여행이다. 독거노인도 계시고, 심심해하기에 2004년부터 해외여행을 시작하였다. 다른 우체국도 권유하지만 노인 분들이라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연세가 높으니 국내여행은 쉬워도, 해외여행은 힘들어 위험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가족끼리 가면 비용도 많이 들고, 자녀들이 시간 내기도 힘들다는 사정을 알고 우체국장님의 야심 찬 기획은 실행에 옮겨지게 된 것이다. 인터넷으로 저렴한 비용의 여행상품을 찾았고 중국 북경 여행이 그 시작이었다.

70세 이상 드신 어르신 50여 명이 움직이니 에피소드도 많다. 그 넓은 인천공항에서 화장실 가신 분이 반대 방향으로 한 없이 가서 애를 먹기도 했다. 온천장에서는 탕에 들어갔다 나와서는 누워 버리시는 바람에 큰 일 치를까 걱정도 했었다. 그러나 다행히 야사 마을 어르신들의 첫 해외여행은 무사귀환으로 마무리되었고 이는 마을의 즐거운 에피소드로 회자되고 있다.

연세가 높다 보니, 다음 여행을 함께 못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다녀오신 분들은 “어이, 국장, 어디 안 갈란가?” 하며 매년 새로운 어르신들만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옛날에는 쌀 가마니 짊어지고 광주역까지 나갔잖아요. 지금은 택배가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시골에서 제일 필요한 게 우체국이예요. 노인들만 계시니, 물류 담당 직원이 마을을 싹 돌아서 가져와요.”(최병하)

야사 마을에서 우체국 이용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누에가루 택배이다. 주문도 들어오지만, 알음알음으로 자녀들이 소개도 많이 한다고 한다.

농촌에서는 제일 편리한 게 우체국 보험이란다. 한 번은 시외버스가 눈길에 미끄러져 마을 어르신이 다치셨다가 마침 우체국 보험에 들어 있어서 큰 혜택을 보셨다고 한다. 이제는 모두들 좋은지 아시고 보험을 들어달라고 하신단다.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다. 명절 때 들르는 자식 이야기다. 좋은 직장 잡으면 용돈을 드리고 간다. 가끔은 명절 다음 날이 애써 모은 통장 가벼워지는 날이다. 노인들이라 돈만 생기면 쓰지 않고 우체국 통장에 넣는다. 어렵게 한푼 두푼 모으신 돈. 자녀들의 힘든 사연에 바로 큰 몫이 빠져나간다. 어르신들은 “그게 사람 사는 것이지요.”라고 말하고 넘기시지만, 어렵게 모으신 돈이니 자식들은 꼭 다시 부모님께 보내주셨으면 한다는 최병하 국장의 부탁이다.

농촌 우체국은 피폐되어 있는 농촌과 맞닿아 있다. 기관이라고 자기 일만 할 수 없다. 가족같이 함께 움직이니 신뢰도 쌓인다. 소통하며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억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화순 이서 우체국의 최병하 우체국장은 마을 사람과 새로운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가고 있다.

[정보제공]

  • •  서복순(여, 1948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주민)
  • •  최병하(남, 1960년생, 화순 이서 우체국장)
  • •  최생학(여, 1932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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