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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를 키우는 노부부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A030101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미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근대 1929년 - 하태호 출생
근대 1948년 - 하태호씨, 광주의 전남방직회사에 입사
근대 1952년 - 하태호와 라정숙씨 혼인
근대 1955년 - 하태호와 라정숙씨 야사 마을로 귀향하다
마을지 하태호 라정숙 부부의 잠실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162번지

[광주로 피난 갔다가 다시 야사 마을로 들어오다]

야사 마을 사람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누에를 치면서 살아왔다. 2013년 85세가 되신 하태호·라정숙 부부도 누에를 치며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하태호 씨는 야사 마을 토박이로 1929년에 출생했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근대식 교육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광주에 있는 전남 방직 회사에 입사해서 그 뒤로 9년 6개월을 방직 회사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방직 회사에 있는 동안에 6·25 전쟁이 발발하자, 야사 마을 가족들이 모두 그가 살고 있는 광주로 피난을 왔다. 그러던 중 역시 6·25 전쟁을 피해 화순군 북면에서 광주로 나와 있던 라정숙 씨와 중매로 혼인하였다. 그때가 하태호 씨는 25세, 라정숙 씨는 21살 때였다.

처음에는 하태호 씨의 직장 생활 때문에 광주에서 살다가, 이후 할머니가 25세 되던 해에 야사 마을로 들어왔다. 당시 마을에는 시어머니 혼자 살면서 농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태호 씨 집안은 야사 마을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먹고 사는 집이었다고 한다. 라정숙 씨가 시어머니와 함께 살 당시에 누에를 치지 않았고, 시어머니만 조금씩 치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시어머니가 광주에 사는 큰아들네 집으로 가면서부터 라정숙 씨가 맡아서 누에를 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마을에서도 누에 많이 키운 사람들은 겁나게들 키워]

“여기는 (자원이) 없응께 인자 누에라도 키워서 먹고 살아. 인자 토지가 적잖아, 주위가 모두 산이고. 그러니까 모두들 뽕나무를 산 밭에다 심어서 누에를 많이 키웠어.”

누에는 뽕나무 이파리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는 커야 키우기 시작한다. 4월 말부터 5월 5일까지 ‘누에 알’을 받아서 시작하는데, 장성에 있는 축산 시험장에서 ‘알’로 받거나 부화된 새끼 누에로 받아서 키운다. 알을 받으면 온도가 28℃ 정도 되는 따뜻한 방안에서 부화시킨다. 누에가 알에서 부화가 다 되면 석 잠을 재운다고 한다. 한 잠이 5일씩이니 총 15일 정도를 재우는 것인데, 그 동안 뽕잎을 아주 잘게 썰어서 주어야 한단다. 보통 뽕잎은 방안에 있을 때는 하루에 4번 정도를 주고, 잠실에 있을 때는 세 번씩 준다. 석 잠을 재우고 나면 드디어 누에를 잠실로 옮겨 다시 4일을 먹이고 3일 정도를 재우면 다 커서, 그 상태로 건조해서 가루를 내거나 환으로 내다 팔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누에가 알에서부터 상품이 되기까지는 빠르면 20일, 늦어도 22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기간이 얼마 안걸린다고 해서 일년 내내 누에농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봄과 여름 딱 두 번만 칠 수 있다고 한다. 봄에 이십일 동안 키우고 나면 뽕나무의 잎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시 뽕잎이 나서 자라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2차 누에농사는 8월에나 가능하단다. 하태호 라정숙 부부는 매년 누에 20매를 세 군데의 잠실에 나눠서 키운다. 누에 한 매에 2만 마리라고 하니, 야사 마을에서도 누에 농사를 크게 하는 집에 속한다고 한다.

“인력만 좋고 기운만 있으면 누에는 키울만 해요. 그래서 많이 키운 사람들은 겁나게들 키워, 젊은 사람들은. 누에 키우면 돈을 많이 벌거든. 누에 키워갖고 애들 다 가르치고.”

대개의 농촌 마을이 과거에 소를 팔아서 자식들 등록금 마련했다면, 야사 마을 사람들은 누에를 키워서 등록금을 마련했던 것이다.

누에는 가루나 환으로 가공돼서 판매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생누에로도 가져가기도 하지만, 환이 먹기에 편해서인지 반응이 더 좋다고 한다. 대개 환을 만들때는 밀가루를 사용해서 만들지만, 하태호 씨 부부는 반드시 누에가루에 찹쌀죽을 써서 환을 만든다고 한다. 그런 뒤에 다시 둥글게 만든 환의 겉에 다시 누에 가루를 묻혀서 만드는데, 이것을 먹어본 사람들은 속이 편하다고 하면서 꼭 이곳에서만 주문을 해서 먹는다고 한다.

[늙고 힘없어서 올해는 누에를 안키워]

이처럼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온 누에농사를 하태호 라정숙 부부는 올해[2013년]는 못하게 됐다고 한다. 하태호 씨가 2012년 11월부터 노환을 얻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간호하던 라정숙 씨도 극도로 쇠약해진 탓이다.

“힘이 없어서. 둘 다 아파서 이렇게 있는데 어떻게 누에를 키워.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뽕나무 밭을 맽겨 부렀어. 다른 사람이 밭을 달라고 해서 줘부렀어.”

누에를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뽕 밭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야사 마을 논 여기저기에는 벼 대신 뽕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제 따뜻한 봄이 오고 뽕 밭의 뽕 이파리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자라면 마을에서는 누에를 친다고 바빠질 것이다. 그러는 동안 할아버지의 건강도 좋아져서 예전처럼 할머니와 함께 누에를 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정보제공]

  • •  라정숙(여, 1933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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