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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창하던 탄광 마을 흔적을 담은 지명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B010104
한자 繁昌-炭鑛-痕跡-地名-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복암리 구암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흑토재 검은 흙이 유용한 석탄임을 인식 1904년 - 화순지역의 토호인 박현경은 화순 흑토재 의 검은 흙이 석탄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1905년 4월 5일에는 그 일대의 채광권을 얻어 낸다. 문헌 기록은 없지만 궁 내부의 허가를 얻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록에 는 1908년에 야마구치 츄사부로(山口忠三浪)가 최초로 흑토재 일대 광업권을 설정한 다.
화순광업소 영빈관인 천운장 건립 1957년 - 1957년에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 소장의 관사이면서 본사 고위급 손님을 접대할 수 있는 영빈관인 천운장이 건립된다.
탄광 마을인 천운 마을 탄생 1958년 1월 1일 - 탄광 개발과 함께 오곡마을 규모가 커지자, 영빈관, 사택, 상가 등이 들어선 지역이 분리되어, 1958년에 천운장(또는 천운)마을이라는 탄광 마을이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마을지 거북바위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천운장 터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흑토재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넘은골[너멍골]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복암리

[탄광 마을의 흔적이 어린 천운 마을 지명]

화순읍에서 국도 22호선을 타고 가다가 충의로로 접어들어야 탄광 마을에 이르게 된다. 호남정맥 길목답게 충의로 주변의 산세는 높다. 도로 오른편으로는 화순천이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푸른산, 맑은 물, 논밭이라는 농촌 경관과는 사뭇 다르다. 도로변 주택들도 빛바랜 회색으로 활기를 찾아볼 수 없다. 천운 마을에 다다르니 아파트까지 눈에 들어온다. 일련의 경관들이 탄광 마을임을 전해 준다. 천운 마을은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탄광 마을이다.

“동암이 제일 큰 마을이었는데, 싹 철거해서 다 나갔제. 이제 탄광촌 하면 천운장마을과 구암마을이제, 종사자들은 요 인근서 다 살았지만, 남면서부터 화순읍까지도 살았제. 통근차가 다니면서 출근시키고 하니까.”(윤대림)

먼저 천운이라는 지명을 통해서, 탄광 마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천운 마을은 현재, 행정적으로 오곡 마을, 동림 마을과 함께 오동리(梧桐里)에 속한다. 따라서 오동리 지명은 오곡(梧谷) 마을의 오(梧)자와 동림(桐林) 마을의 동(桐)을 의미한다. 오동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지명을 공평하게 한 자씩 취한 것이다. 당시에 천운 마을은 오곡 마을의 일부였다. 오곡 마을은 원래 먹굴로 불렸다고 한다. 오곡 마을 동쪽인 흑토재 일대에 분포하는 검은 흙 때문이다. 지명의 목적은 다른 지역과의 구분이다. 그렇기에 잘 지어진 지명에는 차별화 되는 특성이 담겨 있다. 지명의 차별화 특성 요소로는 자연의 형상, 자원, 독특한 삶의 방식, 역사적 사건 등이 있다.

오곡 마을 일대에 보이는 검은 흙이 석탄으로 밝혀지면서 산골은 활기를 띠게 된다. 특히 광복 이후에는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가 오곡 마을[지금의 천운 마을]에 영빈관인 천운장과 사택을 건립한다. 충의로를 따라서 상가들도 번창하게 된다. 마을이 커지자, 천운장, 사택, 충의로가 포함되는 남쪽 일부가 오곡 마을에서 분리 된다. 1958년 영빈관인 천운장의 이름에서 천운장 마을[天雲莊, 또는 천운 마을]이 된다. 새로운 탄광 마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천운 마을 지명은, 지역 성장의 원동력인 석탄 산업의 흔적을 오롯이 담고 있다.

[지역 형상에서 유래한 구암 마을 지명]

또 다른 대표적인 탄광 마을은 천운 마을 동편에 위치한 구암 마을이다. 구암 마을이라는 지명은 화순 광업소 인근의 거북 바위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구암 마을은 복림 마을과 함께 복암리에 속한다. 복암리(福巖里) 지명은 복림(福林) 마을의 ‘복’자와 구암(龜岩) 마을의 ‘암’자를 각각 1글자씩 취한 것이다. 단순히 행정 구역에 포함되는 자연 마을의 범위를 나타낼 뿐이다. 한편, 구암 마을의 원 마을은 광산에서 나온 경석더미 때문에 폐촌이 되었다고 한다. 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인근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원 마을이라고 삼거리에서 동복으로 가는 길 도로 좌측에 있어. 시방 도로변에만 몇 집이 살고 있어. 정자나무도 있고. 안쪽 넓은 터는 탄광에서 나온 경석으로 묻어 버렸어. 오래 산 사람만 알제. 지금은 원 마을은 모르고, 삼거리만 알제.”(김종래)

지명의 범위와 위치가 번창하던 탄광 마을의 역사를 알려준다. 탄광 채굴로 원 마을은 폐촌되고, 대신에 탄광 주변부로 마을이 확대된 것이다. 구암이라는 지명 자체로는 탄광 마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구암 마을과 복림 마을의 세부 지명은 탄광 마을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구암 마을은 국도 제15호선을 중심으로 구암1구와 구암2구로 구분된다.

“요 길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조 짝으로는 1구, 요 짝으로는 2구 그래. 마을이 크다 보니, 그때 전성기 때 여거가 면 인구 맞먹는다고 했거든. 그래서 분구를 했어 1구, 2구로 나누었제.”(윤대림)

구암1구에는 삼거리, 너멍굴, 서당굴, 등안, 구봉산, 새주택 등이 포함된다. 구암 삼거리는 북쪽의 복림 방면, 동남쪽의 서밧재 방면, 그리고 서쪽의 흑토재 방면으로 갈리는 삼거리이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다. 교통의 요지임을 알 수 있다. 흑토재 인근의 너멍굴 지명은, 원 마을 너머에 있다는 뜻이다. 원 마을을 중심에 두고 위치 관계를 설명하는 지명이다. 서당굴은 이전에 서당이 있어서 유래된 지명이다. 서당이 지금은 없어졌더라도 마을의 중심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역시 지명을 통해 과거를 복원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등안은 구암 삼거리 가까이에 위치한 구암 교회 방향 즉, 산등 안쪽에 위치하여 얻게 된 지명이다. 상대적인 위치 관계로 지역을 표현한 지명이다. 구봉산은 등안 너머에 있는데, 9개 봉우리가 있는 구봉산 아래에 위치하므로 얻은 지명이다. 산지가 많은 지역인 만큼 인문적, 역사적 사실보다는 지형이나 위치에 관련된 지명이 많다. 새주택은 등안 동남쪽에 위치한 서밧재[섶밧재] 쪽으로 새로 형성된 주택 단지를 말한다. 산골 지역에 새로운 주택 단지가 형성된 것은 바로 탄광의 발달을 의미한다.

[탄광 마을의 특성이 담긴 지명의 미래]

자연과 달리, 행정 관련 사항은 사회와 함께 변화되기 쉽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의 의미 부여와 지역 주민과의 상호 작용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탄광 마을은 토지가 척박하여 자연환경과의 상호 작용에 관한 지명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한 탄광 마을은 시간적인 측면에서 흥망성쇠가 빠르게 전개된다. 그리고 현지인보다는 타지에서 전입해 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 지역의 문화, 역사, 전통과 관련된 지명이 상대적으로 적다.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해도, 탄광 산업은 탄광 마을의 중요한 역사, 문화, 경제 요소이다. 이런 관점에서 천운 마을, 흑토재, 먹굴 같은 탄광 관련 지명은, 지역의 특성을 담은 소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탄광이 잊혀지고 사라지더라도, 지명에는 화석처럼 남아서 탄광 마을을 재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민과 공감할 수 있는 바람직한 지역 개발 전략 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천운 마을과 구암 마을이, 탄광 마을의 특성이 담겨 있는 지명과 함께, 지역의 특성을 되살리는 새로운 마을로 부활하기를 기대해 본다.

[정보제공]

  • •  김종래(남, 1944년생, 동면 복암리 구암 마을 주민)
  • •  윤대림(남, 1933년생, 동면 복암리 구암 마을 주민, 보성 상회 운영)
  • •  최병철(남, 1953년생,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이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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