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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광업소 영빈관, 천운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B010201
한자 和順鑛業所迎賓館天雲莊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복암리 구암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경숙, 양라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화순 광업소 영빈관인 천운장 건립 1956년 - 1956년에 화순 광업소장의 관사이면서 본사 고급 손님을 접대할 수 있는 영빈관인 천운장이 건립된다.
천운 마을 탄생 1958년 - 1958년에는 오곡마을에서, 영빈관과 간부 사택이 들어선 지역을 분리하여, 천운장(또는 천운)마을이라 명명한다.
화순 광업소 절정기 1989년 - 화순 광업소와 탄광 마을은 1989년에 최절정기를 구가한다. 석탄산업합리화정책 시행으로 이후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화순 광업소 영빈관인 천운장 폐쇄와 구암장 건립 1990년 - 1990년에는 천운 마을에 위치한 영빈관 천운장이 폐쇄되고 구암2구에 내빈 접대와 숙소를 겸한 새로운 영빈관인 구암장이 건립된다.
마을지 천운 마을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천운장터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천운산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구암장(화순 광업소 복지관)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복암리 구암 마을

[지금은 구암장이라 불리는 화순 광업소 객관]

구암 삼거리를 지나 구암 마을 언덕길을 오르면 ‘대한 석탄 공사 복지관’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표지판을 따라 간 길 끝에는 깔끔하게 정비된 3층 건물이 서있는데, 이곳이 바로 화순 광업소 객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대한 석탄 공사 복지관’ 또는 ‘구암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대한 석탄 공사 직원들이 업무상 출장을 오거나 감사를 나올 때면 이곳 객관에서 묵으며 식사 등 서비스를 제공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화순 광업소 객관인 ‘대한 석탄 공사 복지관’은 광업소 직원들이나 주민들에게는 구암장으로 더 잘 불린다. 그 이유는 예전에 천운 마을에 있던 천운장이 폐쇄되고 지금의 구암 마을에 객관이 신축되면서 자연스럽게 구암장이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이다.

대한 석탄 공사 복지관[구암장] 안으로 들어가 보면 깔끔한 내부와 정면에 보이는 식당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식당 문을 열면 가운데 객관 사용자들이 모여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넓은 식탁이 준비되어 있고, 왼쪽으로는 주방이 오른쪽으로는 영접실이라는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각각의 공간이 깔끔하고 편리하게 정돈되어 있다. 1층은 이용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고, 계단을 올라 2층부터는 객실이 마련되어 있다. 2013년 현재 대한 석탄 공사 복지관[구암장]에는 7개의 객실이 있다.

[천운장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천운 마을]

발길을 돌려 원래 화순 광업소 객관이 있던 자리를 찾아가 보았다. 천운 마을 입구에서부터 천운 마을 회관이 위치한 맞은편의 공터까지가 과거 천운장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현재는 이름 모를 잡초와 풀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서 예전 모습을 상상할 수 없지만, 객관이 구암 마을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천운장은 천운 마을을 대표하는 시설이었다.

천운장은 1956년 석탄 산업의 성장과 함께 건설되었다. 화순 광업소의 관사이자 귀한 손님을 모시기 위한 영빈관(迎賓館)으로 객실을 짓고, 남쪽으로 보이는 천운산의 이름을 따서 천운장이라 했다. 천운장은 목조 건물로 지어졌는데, 스무 명이 넘는 간부들이 객관을 이용할 정도로 넓은 공간을 갖춘 시설이었다고 한다. 이후 천운장 주변으로 다른 시설물이 들어섰고 직원 사택까지 건설되면서 천운장 일대가 화순 탄광의 중심지가 된다. 1958년에는 이 일대가 오곡 마을에서 새롭게 분리되어 천운 마을[또는 천운장 마을]이라 불리게 된다.

1970년대 석탄 산업의 부흥기와 함께 천운장 주변에는 현대식 병원과 극장, 테니스 코트와 직원 전용 운동장[화순 광업소 대운동장] 등 복지 시설이 들어선다. 그래서 이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찌감치 전기, 상수도 등 새로운 문명의 혜택을 누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천운길을 따라 상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면서 화순 탄광의 번화가로 자리 잡는다.

[천운장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아]

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석탄 산업은 사양화되기 시작한다. 탄광 노동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났고, 번화했던 상점 거리도 하나둘씩 문 닫는 곳이 많아졌다. 한때는 스무 명이 넘는 간부들이 생활하던 천운장에도 이용객 수가 절반 이상 줄었다. 극장이 있던 복지관 건물과 현대식 병원도 사라졌다. 결국 1990년 화순 광업소 객관이었던 천운장을 폐쇄하고 화순 광업소에서 가까운 구암 마을에 객관을 신축하게 된다. 그렇게 천운장은 천운 마을이라는 이름을 남기고 그곳에서 사라졌다.

구암 마을에 신축된 화순 광업소 객관은 지역 이름을 따라 구암장이라 불린다. 대한 석탄 공사 복지관[구암장]은 깔끔한 현대식 건물과 편리한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객관 이용객 수는 몇이 되지 않는다. 1970년대부터 40년 넘게 객관을 운영해오고 있는 박점덕 씨는, 당시에는 폐목을 주워 불을 때서 밥을 하고, 긴 방에서 한꺼번에 식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천운장의 객관은 사람들로 붐벼 활기찼다고 한다. 이제는 넓은 공간과 편리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찾는 사람이 적어 안타까울 뿐이다.

[정보제공]

  • •  박점덕(여, 1941년생, 대한 석탄 공사 복지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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