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석탄을 실어 나르는 화순선과 복암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B020102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지리/인문 지리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복암리 구암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라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광업권 등록 1905년 - 박현경이 광업권 등록
화순탄광 본격 채탄시작 1920년대 후반 - 박현경이 흑토재의 매장량과 상업성을 확인 후 본격적인 채탄작업을 시작
복암역 개업 1942년 10월 1일 - 복암역이 일반역으로 개업
복암역 이용량의 최대 전성기 1960년대 - 복암역 이용승객과 화물이용량이 최대치를 보였던 시기
복암역 여객 취급 중지 1974년 1월 - 복암역의 여객 취급이 중지되고 탄을 수송하는 주 업무만 담당하게 됨
복암역 배치간이역으로 격하 1982년 9월 - 복암역이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됨
복암역 폐역 1984년 11월 - 복암역이 폐역 됨
화순 광업소 전용선화 1986년 - 화순선이 대한석탄공사 전용선로가 되어 석탄공사에서 독점적으로 사용하게 됨
마을지 복암역사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천덕리 1
마을지 복암 연락소 사무실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천덕리 1

[복암역이 어디 있지?]

화순 광업소 방향으로 충의로를 따라 달리면 바로 옆에 화차가 달리는 화순선이 있다. 1960~70년대 화순 광업소에서 생산된 석탄이 모두 이곳을 통해 운반되었다고 한다. 과거 석탄 개발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석탄을 수송할 철도 시설의 미비였다. 그래서 석탄을 증산하기 위해 철도 부설은 중요한 것이었고, 화순선이 그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다.

화순 광업소 석탄 생산과 증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화순선의 종착지 복암역을 찾아 나서는 길. 충의로를 따라 보이던 화순선이 시야에서 이내 곧 사라졌다. 화순선이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일까? 화순 광업소에 도착해 안내소에서 복암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묻자, 광업소를 통해서 복암역으로 가기는 힘들다고 한다. 오는 길에 복암역을 보지 못했는데, 그럼 복암역을 어떻게 갈 수 있냐고 묻자 광업소로 오는 길에 쌓여있던 갱목들 뒤편으로 복암역이 있다고 알려준다. 다시 차를 돌려 되돌아 가보니 갱목들이 쌓여있는 제재소 뒤편으로 복암역으로 통하는 철로가 다시 보였다. 그리고 그 철길 끝에 세월의 흔적을 담고 서 있는 복암역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복암역으로 통하는 인도(人道)가 없다. 복암역을 가려면 200m 정도를 철길을 따라 걸어야만 한다. 할 수 없이 철길 위를 걸어 복암역으로 향했다. 철길 양쪽으로는 산이 가로막혀 있어서 철길 위로 거센 바람이 통한다. 복암역으로 향하는 길 위에 바람이 매섭다. 아직은 2월 말이라 날씨가 쌀쌀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곳 기온은 다른 데에 비해 3℃ 정도 낮다고 한다. 복암역에 도착했는데, 폐쇄된 낡은 역사(驛舍)와 창고 건물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한때는 화순 광업소의 석탄들을 쉼 없이 실어 나르던 활기는 오간데 없다. 석탄 합리화 정책 이후 침체된 석탄 산업의 현실이 느껴진다.

[화순선의 종착지 복암역]

화순 광업소는 1905년 광업권을 등록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1920년대 본격적으로 채탄이 이루어졌지만 석탄 운반이 큰 난제였다고 한다. 석탄 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생산도 중요하지만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있는 탄광에서 석탄을 수송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1942년 화순선이 개통되고, 1942년 10월 1일 복암역이 일반역으로 개업하게 된다. 동면 복암리에 위치한 복암역의 역명(驛名)은 역이 위치한 지역을 토대로 지어진 것이다. 복암역화순역은 11.1㎞ 구간으로 화순 광업소에서 생산한 탄을 수송하는 것이 주 업무이다.

[먹바람 날리던 그 시절]

화순 광업소복암역의 전성기는 국가의 탄광 개발 사업이 본격화되고 탄광 산업이 전성기였던 1960년대다. 복암역 통계 자료[1965년~1984년]에 따르면 1966년 복암역 이용 승객 수는 최대 인원인 6,367명이 승차하고, 6,093명이 하차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화물 발송량 역시 535,501톤, 화물 도착량 13,293톤으로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탄광 산업이 호시절이던 그때 복암역에서는 석탄 가득한 탄차와 사람들을 싣고 먹바람을 날리며 기차가 하루에도 서너 차례 운행되었다고 한다.

연도별 복암역 이용 현황(출처: http://www.stationdb.x-y.net)

하지만 1974년 1월 복암역은 여객 취급이 중지되고 탄을 수송하는 주 업무만 맡게 된다. 그러다가 1982년 9월 복암역은 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년 뒤인 1984년 11월 폐역(閉驛)이 된다. 1986년에는 화순선[복암선]이 대한 석탄 공사 전용 선로가 되어 대한 석탄 공사가 독점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젠 주문량에 따라 화차 운행]

과거에 비해 석탄 생산량이 현저하게 줄었기 때문에 석탄 하역과 운송 작업도 오전 중에 업무가 끝난다고 한다. 그래서 복암 연락소에서 근무하는 분들을 만나고 싶으면 오전 11시 이전에 와야 만나볼 수가 있다. 그리고 현재 철도 운행도 연탄 수요량에 따라서 하루에 1회 내지 2회 밖에 운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연탄 공장의 수요량과 주문량에 따라 작업량이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복암역 석탄하역 작업은 연탄 공장에서 화순 광업소에 석탄을 주문하면 그 주문량에 따라 화순 광업소에서 철도공사로 석탄을 실을 화차량을 주문하고, 주문한 화차가 오면 복암 연락소에서 화차 입환 작업을 하여 석탄을 실은 화차를 화순역까지 이송하는 방식으로 석탄 배송이 이뤄진다고 한다. 예전에는 화순 광업소에서 생산된 석탄들을 화차로 100% 운반을 했으나, 지금은 70%까지 줄었다고 한다. 또한 석탄생산량과 작업량이 줄어든 만큼 복암 연락소에서 2013년 현재 근무하고 있는 직원은 총 6명뿐이다. 기관사 1명, 전호를 하는 구내조차원 1명, 하역 작업을 하는 작업원 4명은 항운노조 소속이다. 그런데 기관사와 조차원은 하청 업체와 계약해 월급을 받지만, 항운노조 작업원 4명은 탄차 수송 톤량에 따라 하루 금액이 산정되고 네 명이서 분배하여 월 봉급이 수령한다고 한다. 또한 폐역된 복암역사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작업 환경도 열악한 편이다. 복암 연락소는 컨테이너 건물을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고, 직원들을 위한 복지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다. 예전 역사와 건물들을 둘러보는데, 여기저기 검은 분진이 묻어난다.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복암역을 뒤로 하고 철길을 따라 되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정보제공]

  • •  정한종(남, 1947년생, 화순 광업소 복암역 입환 기관사)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