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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마을의 살림을 꾸려가는 야무진 부녀회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B030103
분야 생활·민속/생활,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복암리 구암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미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효순씨 출생 1953년 - 1953년 조효순 씨가 출생하였다.
조효순과 최병철 결혼 1976년 - 1976년 조효순과 최병철이 결혼하였다.
조효순씨 천운 마을 부녀회장이 되다 2005년 - 조효순 씨가 2005년 천운 마을 부녀회장이 되었다.
마을지 조효순의 집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94-4번지
마을지 천운 마을회관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천운길 12

[살림밑천이었던 큰딸]

천운 마을 조효순 부녀회장은 1953년 화순군 동면 서석리에서 2남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친정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지만, 어머니가 ‘가슴앓이’를 앓고 있어서 아홉 살 때부터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밭 매고 물 길어서 밥도 해서 식구들 저녁도 차려야 했다. 어느 때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자신을 불러내서 기어코 일을 시키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고 한다.

열아홉 살에 광주에서 친구 다섯 명과 작은 방 하나를 얻어서 함께 살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번 돈으로 가족들 생활비에 동생들 학비도 마련됐으니 조효순 씨는 ‘큰딸은 살림밑천이란 말’이 딱 맞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스물두 살에 함께 자취하던 친구가 공주에 연고가 있어서 그곳으로 같이 가서 일을 했다. 한약방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지금의 천운 마을 이장 남편 최병철 씨를 만나서 결혼까지 했다.

[조효순 씨의 ‘지상의 방 한 칸’]

신혼살림은 몹시 힘들었다. 서울에 가서 포장마차도 하고, 공주로 다시 내려와 식당을 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짐 싸들고 화순으로 내려와 친정살이를 하면서 남편이 탄광에 취직되기만을 기다렸다. 당시의 어려웠던 생활에 대해 조효순 씨는 ‘방’이야기를 통해 풀어내주었다. 조효순 씨 부부는 귀향한 첫해 추수가 끝나고 난 뒤에 화순읍으로 작은 방 하나를 사글세로 얻어서 친정에서 나갔단다. 그때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집이었는데, 아이 둘과 부부가 함께 살기에는 턱없이 작은 방이 었다. 그러나 불편함보다도 주인집의 괄시가 더 서러웠다고 한다. 얼마 되지 않아서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 하청 직원이 된 덕분에 천운 마을에 있는 ‘천운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허름하지만 아파트로 이사 와서 사니 너무 좋았단다.

“요리 와서 사는데, 요 아파트 방 두 개에 부엌 하난디. 오~매 뭔 대궐보다 더 좋은 거 있지요? ‘내집이다’고 산께 맘이 그렇게 편한거여. 밤에 어디를 가다가 불이 환하게 이렇게 켜지잖아요? 저 오막살이집이 사는 사람들도 자기 집이라고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맘으로 살다가 여기를 오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물론 그 뒤로 두 번의 이사를 더 하고서야 지금의 집을 샀지만, 조효순 씨에게 있어서 ‘천운 마을의 집’은 그녀가 그간 겪었던 고생을 씻어내는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라고 하겠다.

[부녀회장직은 봉사하는 일이다]

그렇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곳 천운 마을에서 그녀가 부녀회장을 맡은 지 벌써 7년이 흘렀다. 부녀회에서 하는 일은 많다. 마을 공동제사로 일년의 가장 큰 행사인 ‘굴암제’의 음식 준비에서부터, 군면단위의 행사에 참여하여 봉사하고, 소소하게는 마을의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모두 부녀회의 손을 거쳐야만 하는 일이라고 한다. 특히 굴암제를 지낼 때면, 부녀회원들의 도움이 있기는 하지만, 장보기부터 음식 장만까지 거의 모두 혼자서 해야만 하기에 몹시 힘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단다. 부녀회의 일 중 가장 큰 일은 역시 마을 어르신들의 식사 대접이라고 한다. 마을에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으니 그분들 끼니를 마을 회관에 모셔놓고 한꺼번에 대접하는 것인데, 마을 사람들은 마을 노인들의 식사를 도맡아서 해결해주는 부녀회장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조효순 씨는 부녀회장직은 봉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마을 이장인 남편과 함께 새벽이라도 아픈 노인이 있으면 차를 끌고 병원을 다녀오고는 한다는 그녀는, “내가 심장이 안좋아서 10년 동안 약을 먹고 고생하고 있는데,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아프면 이장님과 함께 병원에 모시고 가고 한다.”고 말한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는 부부이고 부창부수(夫唱婦隨)의 부부다.

조효순 씨는 남편이 이장되기 일 년 전에 먼저 마을일을 시작했다. 그 뒤에 남편이 이장일을 맡게 되었다고 했을 때 내심 잘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집안일에 무심한 남편이 더 바빠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컸다고 한다. 그런데 내외간에 마을일을 하다 보니 평소에는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든 남편과 오히려 일 때문에라도 자주 보게 되니 장점이 더 많단다. 천운 마을의 이장 남편 최병철 씨와 부녀회장 부인 조효순 씨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신망이 매우 두텁다. 매번 어려운 사람을 돕고, 또 무엇이든지 주려고 하는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점심 먹고 내 놀고 부녀회장님이 욕봐[고생해]`. 이녁 것 다 갖다가 주고. 닭 키우고 오리 키워서 다 해서 먹이는 사람이 누가 있다요? 무엇이든지 여기다가(마을 회관에다) 주고. 둘이는 잘 만났어.”(김정록)

[정보제공]

  • •  김정록(여, 1943년생,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주민)
  • •  조효순(여, 1953년생,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부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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