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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때 마을 사람들을 살린 아주머니 영웅 나순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C030102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도장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미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대 1950년 - 마을사람 18명이 경찰에게 총살당함
현대 1977년 - 양외순이 나순례의 며느리가 되다
현대 2003년 - 나순례 사망
마을지 고 나순례의 생전 집터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아내미길 38
마을지 도포배미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도포배미

[열다섯 살 소년 형재환의 기억 속에 각인된 그날의 총성]

낮에는 낮사람들이[군인, 경찰들], 밤에는 밤사람들[빨치산들]이 번갈아가며 마을을 흔들던 1951년 어느 날 새벽 낮사람들이 들이닥쳐 마을 사람 열여덟 명을 총살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날 밤에 인자 반란군들 대장들이나 뭐어니 와가꼬 싹 회의를 했거든. 큰 집이서. 집도 크고 일반 집인디 마당도 넓고 커요. 우리집만이로 마당도 넓고 컸어. 그래갖고 그냥 공산당들 노래 부르고... 근디 공산당들이 내려와 가꼬 저런 회의하는 것을 군인들이 알어 부렀어. 글로 인해서 적극적으로 이 마을은 공산당이다 지정을 받았던 모양이여. 그 이튿날 담박에 그냥 주민들을 소집시켜갖고 총살시켜 부렀어.”(형재환)

공산당의 지령을 받은 마을이라는 헛소문에 도장 마을의 생대 같은 목숨 열여덟이 죽던 날, 형재환 씨는 열다섯 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새벽 네 시 무렵 ‘도포배미’[집 앞 논배미]에서 여러 차례 총성이 들리고, 어린 소년은 방안에서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이고 있을 때 방안으로 여러 발의 총알이 날아 들어왔다. 다행이도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솜이불은 소년 형재환 씨의 목숨을 지켜주었다. 그때였다. 소년 형재환 씨의 작은어머니가 세 살 먹은 조카 ‘시문’이를 업고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언덕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가서 군인의 총부리를 부여잡고 “죄 없는 우리 마을사람을 왜 다 죽이냐!”며 절규하였다.

이제 갓 스물 두세 살의 젊은 아낙의 목숨을 건 절규와 호소가 학살을 자행하던 군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다행이도 총성은 이후 들리지 않았고 더 이상의 희생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아이를 업고 총부리를 잡아 내리던 젊은 아낙이 바로 나순례 씨다. 나순례 씨는 형재환 씨의 작은 어머니다. 열다섯 소년이 이제 일흔일곱 살의 할아버지가 되어서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자니 다시금 가슴이 울컥해진단다.

[강단 있으면서도 속 깊은 시어머니]

며느리 양외순 씨는 시어머니인 나순례 씨가 평소 성품이 대범하면서도 속이 깊은 분이었다고 회고한다. 돌아가신 지 올해로 딱 9년이 흘렀지만, 평생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기에 나순례 씨에 대한 기억은 누구보다도 생생하다. 시어머니는 2남 4녀를 낳았고, 그중 남편 형시문 씨는 나순례 씨의 장남이다.

양외순 씨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다. 그래서인지 스무 살에 처음 시집왔을 때 마주쳤던 시어머니의 호탕한 성격은 무섭기조차 했다고 한다.

“인자 나이 어려서 시집을 왔는디, 시어머니가 그렇게 일밖에 모르시고. 그놈을 따라갈랑께 힘들었지. 그놈에 맞춰서 사느라고 힘들었지.”(양외순)

그러나 남자 같은 대찬 성격에도 누구보다도 정이 깊었던 시어머니 덕분에 양외순 씨는 얼굴도 보지 못하고 살았던 동생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양외순 씨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가 외가에 맡겨놓은 채 찾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시집와서도 생사를 모르고 살았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너는 왜 그렇게 외롭냐, 형제간도 하나 없이?”라고 하시면서 마침 시댁에 오신 친정아버지에게 동생을 찾아주라고 부탁을 하셨단다. 덕분에 여동생을 찾게 된 양외순 씨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감사하고 고맙단다.

[도장리 밭노래 소리꾼 나순례]

술도 못하고 담배도 못피는 시어머니였지만, 호탕한 성격 덕분에 마을에 행사가 있거나 하면 늘 앞장서곤 했다. 또 옛날 사람이지만 머리도 좋아서 마을에 누군가가 아프다고 하면 단방약을 알려주어 낫게 하기도 했단다. 그런 시어머니 나순례 씨는 또한 흥도 많아서 생전에 도장리 밭노래 소리꾼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것을 이제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대신해서 며느리 양외순 씨가 하고 있다.

“이 노래가 뭔 박자가 있다든지 어디 뭐 곡이 있다든지 그런 것이 없어. 옛날에 우리 어머니들이 밭매면서 목화밭 매면서 그렇고 부르시고 시집살이 하면서 부르시고 그런 노래였는갑서. 근디 그놈을 이어 받으란디 이어 받을 사람도 없고…”(양외순)

마을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한 영웅 나순례 씨도 밭 매면서 소리를 흥얼거리는 평범한 우리네 아낙이었던 것이다.

[정보제공]

  • •  양외순(여, 1957년생,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주민)
  • •  형재환(남, 1936년생,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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